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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alawinter Sep 08. 2023

삶은 아일랜드 날씨와 같아

영화 Love Actually(러브 액츄얼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공항은 우리에게 익숙한 곳으로부터의 멀어짐을 선사한다. 새로운 장소의 공간적 이동을 의미하기도 하고, 기다렸던 누군가를 만나는 기쁨의 장소이다.


겨우 아일랜드에 정착한 지 4개월이지만, 벌써 공항은 6번째 방문이다. 누군가를 마중하는 기쁨과 떠나보내는 아쉬움의 교차도 좋지만, 그래도 공항은 내가 주체가 되어 어디론가 떠나게 될 때, 비로소 생생한 장소로 다가온다. 공항에 오니 문득 지난번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일랜드는 EU회원국으로 대한민국과 3개월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내년 3월까지 있기 위해선 당연히 체류연장이 필요했고, 머물고 있는 학교 측에서 비자 연장을 위한 서류를 준비했다.


담당자는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일랜드에서 연장 체류 비용은 300유로(약 45만 원)인데 최대 8개월이니, 내 여행비자가 만료(3개월 후)되는 시점에서 이민국 체류연장 서류를 제출하 자고 말이다. 그러면 굳이 2번 연장하지 않고 11개월을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였는데, 나로선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고마웠다.

그러나 삶은 아일랜드 날씨와 같아서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Irish Residence Permit(IRP아일랜드 체류허가) 카드를 발급받는 과정은 Student Leap Card(학생용 교통카드) 보다 훨씬 복잡하고 인내심을 요했다.

여기서 잠깐 학생용 교통카드에 대해 말하자면, 학교재학증명서를 통해 교통카드를 발급받게 되면 모든 교통금액은 나이와 상관없이 할인된다. 그리고 국제학생증 이 필요 없이 학생임을 증명해 주기에 영국에서도 요긴하게 사용했다.

여하튼 IRP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선 학교추천서와 재학증명서, 보험 관련서류와 은행계좌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최소 5,000유로(약 700만 원)는 통장에 들어가 있어야 IRP 신청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평생 쓰지 않을 아일랜드 은행에 계좌를 만들고돈을 입금해 잔고 증명서까지 프린트 했다.


은행계좌를 만들고 5,000유로 입금은 필수이다.


4월 24일에 입국한 나는 별도의 서류 없이 7월 23일까지 여행비자로 합법적으로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거였다. 그리고 비자체류연장은 7월 초에 했고, Immigration Office(이민국)에선 8월 6일에 출석해 관련서류 검토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그럼 7월 24일부터 8월 5일까진 내가 불법체류자가 되는 건가라는 고민에 학교 측에 문의를 했더니, 이미 이민국으로부터 확답 메일을 받았기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대답을 받았다. 그래서 마음 놓고 편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7월의 평범했던 날, 옆나라 York(영국, 요크)에 갈 일이 생겼다. Manchester(맨체스터) 공항에서 출발해 더블린 공항으로 입국심사를 하던 그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여권에 남아있는 여행비자가 하루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학교 측에선 나의 신분을 보장해 주고 확인해 주는 문서를 제공해 주었지만, 입국심사 줄에 서서 기다리는 내 마음은 초조했다.  지금도 그 순간이 기억에 선명하다. 솔직하게 말할까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을까의고민이었다.


어느 줄에 설까 잠시 고민하다 비교적 인상이 차분한 담당자여서 마음이 놓였고, 있는사실 그대로 말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그냥 가만히 있을걸!)

별 대수롭지 않게 입국 도장을 들었던 담당자는 내 말을 듣고 다시 여권의 앞장을 들춰보더니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차분하게 보이던 인상은 점점 냉정해졌고 대화가 길어지자 내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최악을 상정하고 현실을 마주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여기서 최악은 아일랜드 입국이 거절당하고 대한민국으로 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아직 마흔이 지나서도 사람 보는 눈이 없는 자신을 탓하고 순조로운 대처를 못한 자신에 한심했다.

그냥 가만히 있을걸이라는 후회가 내내 들었다.






담당자가 문제 삼은 부분은 당연히 하루밖에 남지 않은EU비자 문제였다. 학교에서 내 신분을 보장하고 입국심사 때 제출하라고 준비했던 서류를 들이밀었다.

유감스럽게도 담당자는 그 문서를 보지도 않았다.


이미 아일랜드 곳곳에 있는 가짜 학교들은 돈을 받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비자 문제를 처리했고 적발되었던 적이 많았던 것이다.


다음 카드로 들이밀었던 것은 이민국에서 보내온 체류연장 심사 확인 이메일이었다. 그랬더니 담당자는 왜 아일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체류연장 신청을 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학교 측 의견을 따라서 문제없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담당자는 나의 불법체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무한반복 패턴이 이루어졌다. 10여분의 실랑이가 지나서 담당자는 다시 3개월 여행비자를 내 여권에 찍어주며 볼펜으로 무엇인가 적었다.

꼭 그 날짜에 가서 체류연장을 하라는 것이었고, 난 그 사이 불법체류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더 이야기했다.


일단 아일랜드 입국을 하게 돼서 다행이었고 불가능하게 보였던 입국이 어떻게 되었을까 고민해 보니,

바로 내가 다녀온 곳이 영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국이 EU에서 브렉시트 되었기에 다시 3개월 도장을 받았던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학교 측에 가서 이 사실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학교 측에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았다.






불법체류자가 아닌 합법체류자로 8월 6일 Maynooth 근처인 Leixlip 경찰서에 가서 체류연장 면접과 서류를 심사 후 통과했다.

체류 연장에 45만 원을 받아가는 사악함에 경악했지만3주 후 도착한 IRP카드는 이제 유럽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자유를 주었다.


드디어 IRP 카드를 받았고, 유럽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있을 땐 자국민이어서 당연했던 권리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체험을 비로소 늦은 나이에 했다.불편함을 넘어서서 권리를 얻기까지 절차와 과정은 늘 귀찮음과 복잡함을 동반하지만, 그래서 얻게 된 권리는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권리를 가지고 독일 뮌헨으로 향하는 게이트 앞에서기쁜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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