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주 전(11월 23일) 아일랜드의 수도 Dublin(더블린)에선 세계가 주목하는 폭력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나도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바로 다음 날 사그라졌다.
이렇게 폭력적인 시위가 벌어진 건 11년 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을 앞두고 벌어진 이후, 처음 일어난 일이라 현지 매체는 전했다.
그동안 아일랜드에 지내면서 더블린 Talbot Street(탈봇 거리)를 비롯해 소수의 몇몇 거리만 제외하면 서울과 비슷할 정도로 치안이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사건 당일 더블린 도심 학교밖 거리에서 정신이상자의 흉기난동으로 하교하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30대 여성과 어린이 1명이 중상에 빠졌고, 나머지 3명은 경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가해자가 무슬림이라는 소식이 SNS를 통해 더블린 전역으로 펴졌고, 아일랜드 극우시민자 200명이 모여 이민자 추방을 위치며 폭동을 벌인 것이다.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Luas(트램)과 Decker(2층버스) 3대와 13대의 경찰(Garda-현지에선 평화수호대라고 칭함) 차를 파손했다. 이어 상점을 불 지르고 약탈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이에 Leo Varadkar(바라드카) 아일랜드 총리는 이날을 더블린 수치의 날로 정의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위 묻지마 범죄가 발생했을 때, 대다수의 아일랜드 시민들은 모른 척 지나갔다는 점이다.
그런데 택배운송을 하는 브라질 출신의 이민자가 쓰고 있던 자신의 헬맷으로 피의자를 내리치고 칼을 빼앗아 범인을 Garda(경찰)에 인계함으로써 사건이 종결되었다는 점이다.
여하튼 이 사건으로 평화로웠던 더블린 생활이 잠시나마 불타는 폭동현장으로 변했던 점은 내게 당혹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다음 주 미정으로 취소가 되었으면 좋았을 법한 시험은 3일 전 정상으로 진행된다고 안내메일을 보내왔다.
이 시험은 IELTS(아이엘츠)란 시험으로 미국을 제외한 영미권계에 입학이나 체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어시험이었다. 다른 시험으론 Cambridge(케임브리지)란 시험이 있는데, 나는 아이엘츠를 신청했다. 시험비가 € 200(286,000원)이며, 영어 문제풀이를 통해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모든 분야를 체크하는 나름 까다로운 시험이었다.
솔직하게 내년 미국 알래스카 지점으로 파견받는 나로서는 이 시험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지만, 아일랜드 체류연장을 받기 위해선 현지 통장에 700만원 이상의 잔고 확인과 이 어학시험을 신청하고 난 이후에 신청서를 이민국에 제출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신청했다. 그리고 취소해도 상관없었겠지만, 한번 체험해보고 싶어서 그대로 놔두었다. 2008년 사법시험 1차를 앞두고 영어면제를 위한 토익시험을 본 이후 15년 만의 영어시험이었다.
시험은 오전 9시부터 시작으로 8시까지 도착해서 신상확인을 마쳐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공지사항에는 연필과 지우개를 준비하라고 했는데, 2023년에 연필과 지우개로 시험을 본다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토요일 8시까지 더블린에 도착하려면 최소 6시에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Maynooth(메이누스)에서 출발해야만 했다. 5시에 일어나 라면을 끓여 먹고, 첫 기차를 타고 더블린 Conolly(코널리) 역에 도착해 7시 50분에 시험장소에 도착했다.
그날의 시련은 바로 이 지점부터 시작되었다. 그래도 약 30만원 가까이의 비용을 내고 시험을 보러 왔는데, 공지한 시간 10분 전까지 수험생만 있고 담당자는 아무도 도착을 안 한 것이다.
1시간 30분 가까이 1층 로비에서 기다린 끝에 9시 30분이 되어서야 담당자들이 나타나, 한 교실로 안내해 자리에 앉아서 신원 확인을 진행했다. 신원 확인도 제법 특이한데, 곧 신청했을 당시에 여권번호와 똑같은 여권을 가져와야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중간에 여권을 재발급받았다면 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다.
이 시험성적이 필요 없는 나로서는 계속해서 짜증이 밀려왔다. 신원 확인을 진행하기까지 또 1시간 가까이 걸려 10시 30분이 돼서야 첫 시험인 듣기 평가를 시작했다. 시험을 안내한 시간보다 1시간 30분을 넘어서 해당 작원들이 부랴부랴 준비했고, 심지어 시험도 30분 늦게 시작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점은 다른 학생들은 별로 이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아니면 혹시나 Speaking(말하기 면접) 시험에 담당자가 감독관으로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 말하지 못하는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인내심이 부족한 나로서는 그냥 집에 가고 싶었으나, 이날 오후 8시에 Bord Gáis Energy Theatre 극장에서 Carpenters Tribute 공연이 있어서 더블린에 남아있어야만 했다.
다행히 Listening(듣기) 시험이 시작되고부터는 집중해서인지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영어를 고급 퍼즐게임이자 큐브를 맞추는 것으로 받아들인 이후에는 스트레스가 전보다 높지 않았다.
그렇게 읽기와 쓰기 각각 1시간이 지나서 남은 건 면접으로 말하기 시간인데, 여기서 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험을 했다. 면접관이 3명도 아니고 1명이서 이 모든 학생들을 상대로 시험을 치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시험 시간이 Delay(연기)되었기에, 뒷 순번은 내일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이 시험성적이 필요한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순응했겠지만, 나는 짜증과 분노의 게이지가 계속 누적되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나마 아이엘츠는 하루에 모든 과목을 보지만, 케임브리지 시험은 아예 처음부터 이틀에 나누어서 시험을 본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떤 시험이든지 간에 시험이 끝나고 수험장을 나오면 내 마음의 상태를 통해 어떤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시험을 잘 본 것 같으면 자신감이 들고, 망쳤다면 안타까움과 미련이 남고 또는 끝까지 마쳤다는 다행과 안도감이 든다. 나는 이번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데 후련한 마음보다는 씁쓸할 마음이 들어서 기분이 조금 안 좋았다.
시작부터 수험생을 배려해 주기보단, 시험을 주관하는 입장에서 아쉬운 건 너네니깐 너네가 우리한테 맞추렴이란 갑의 자세가 두드러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험편성 대비반을 운영하는 학교에 대한 회의 역시도 더욱 짙게 드리워졌다.
내가 지금 있는 학교에서 처음 반편성 Test를 본 직후 들어간 반이 지금의 Advanced 반이었지만, 내가 수업시간에 의욕 없고 지루했던 이유가 바로 문제풀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원어민도 정답을 헷갈리는 문제를 비언어권 학생들이 풀며 맞고 틀리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동료들과 경쟁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나로선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정규시간 이후에 은퇴한 신부님과 한 시간 동안 프리토킹 하는 시간이 내게 정말 값진 시간으로 다가왔다. 오히려 방에서 독학으로 집중하고 몰두하는 방식이 내겐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만약 누군가 한국어를 배우는데 문제집을 던져주고 푸는 방식은, 네이티브인 나로서도 하기 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브리핑하고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영어와 표현을 배우며 사고를 넓히고 확장하는 방법으로의 언어 공부가 내겐 더 맞는 것 같다.
물론 시험의 일정 점수를 반드시 획득해야만 하는 그 누군가에게 있어 최적의 방법은 기출문제를 풀고 계속 시험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는 문제풀이가 최적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그 일정 점수가 필요 없는 내 처지가 너무 감사했고, 바로 시험이 끝난 후에 콘서트를 즐길 수가 있었다.
이 영어 시험이 내 인생 끝에서 두 번째 시험이었다면, 마지막 시험은 반대로 꼭 붙어야 하는 시험이어서 가히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지에 있는 선배님은 친절하게 이미 기출문제를 내게 보내주셨는데 바로 알래스카 운전면허 시험이다.
운전면허 시험을 빨리 붙어야 여권을 대신할 신분증으로 사용할 수 있고, 대중교통이 열악하기에 반드시 차를 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내게 시험은 남아있고, 또 이렇게 한 고비를 무사히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콘서트가 끝나고 막차를 타고 메이누스에 도착했다. 하루에 첫차와 막차를 타고 그 사이에 시험을 보고, 콘서트를 관람하고 나름 열심한 하루의 끝을 무사히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