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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alawinter Aug 12. 2023

새로운 세상의 문은 언제나 무겁다.

아일랜드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다시 말해 저녁노을을 보고 잠시 멈추어 서서 호흡을 가다듬을 여유가 생겼을 때 불현듯 대학교 신입생 때의기억이 지는 해와 함께 떠올랐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문득 지금 나는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이 나도 모르게 과거로 넘어간 것이었다.


대학교 입학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대책 없이 부어라 마셔라 했던 술도 아니었고,

부모님 눈치 보며 귀가했던 통금이 풀린 것도 아니었고

그것은 바로 수학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민방위로 넘어오면서 군복을 정리하듯이,

대학교 합격증을 받는 동시에 집에 있는 정석과 개념원리에 안녕을 고하며 분리수거 종이통으로 3-points를 던진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유일하게 음악을 들으며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이 수학이고, 답이 정해져 있어 그 답으로 가는 과정을 즐긴다고 나로선 납득할 수 없는 동기부여를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 지금까지 그 친구와 멀어지게 된 것에 대해 일말의 안타까운 마음 없이 지금까지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가끔 어른이 되고 나서 취미로 수학문제집을 푸는 사람들을 종종 본 적이 있지만, 만약 나라면 그 시간에 열린 X들, 민X사에서 출간한 세계문학전집을 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수학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같은 강도로 나를 괴롭힌 녀석은 수학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친구는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바로 영.어.다.

지긋지긋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일이면 다시 교실에 앉아 이곳 아일랜드에서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

누군가는 팔자 좋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인지라 어느 한 길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깨우친 자는 내게 말했다.


같은 영화를 100번 보면, 귀가 열리고 말문이 트일 거라고.. 그래서 어느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가 슈퍼스타를 만나 인생이 바뀌는 90년대 최고의 로맨스

노팅힐을 13번까지 참고 열심히 보다가 포기했다.

나의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냐면 깨우친 자는 한 편의 영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 10편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 아일랜드에서의 영어연수는 출발점부터가 실수였다.  우연히 찍은 몇 개의 문법 문제가 맞았는지 처음부터가 Advanced반이었다.

그리고 우리 반은 IELTS 실전반이라 나를 제외한 모두가 예민하게 날이 서있고 그만큼 열심히 한다.

(하지만 Alaska로 가는 내게 있어 IELTS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심지어 그곳은 내게 TOEFL도 필요로 하진 않는다.)


여하튼 우리 반은 영어기본을 전제로 하고 문제풀이 위주의 반이다.

문제는 답을 필요로 하고, 답은 정답과 오답으로 확실히 구분되기에 우리 사이에 묘하게 경쟁심을 부추긴다.

과제는 엄청나게 많고, 다음 날 그 과제의 정답을 돌아가며 말하면서 확인하는 반이다.


지문은 지문대로 꼬여있고 답을 맞히려는 자의 의도를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출제자는 함정을 곳곳에 설치해두는 미로의 연속이다. 또한 쓰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매일 250자 이내로 작문해서 제출해야 한다.






반면 옆반 Biginner 반에선 언제나 밝은 분위기와 환호성이 가득하다. 영어에 친숙하고자 이곳에 온 사람들을배려해 주고 지치지 않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가득하다


물론 나도 그런 위로를 받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우리 반 분위기는 서로가 경쟁심도 많고 시험준비반이라 때론 초조한 분위기가 흐르기도 한다.

수업은 Bite the bullet(하기 싫지만 억지로 참고서 견딤)이고, 과제를 마치다 보면 하루가 다 끝나 있기에 여기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라는 자괴감도 든다.






그러던 어느 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Timeout’

(작전타임)의 시간을 갖고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진지하게 마음을 다 잡았다.


과연 ‘영어’란 내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나는 이 친구와 함께하는 순간을 과연 즐길 수 있을까? 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 했다.


하루빨리 성능이 뛰어난 AI가 옆에서 실시간으로 동시통역을 해주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다음의 이야기들이 정말 영어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분들에게 약간이나마 위로이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1. 영어는 우선 ‘소통의 도구’였다.



갇혀 있는 내게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도구였으며,
다른 누군가를 이어주는 다리였다.



중고등학교 때 무조건 외우는 영어가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언어적 감각을 필요로 하는 섬세한 친구였지만, 이 ‘인싸’ 친구랑 친해지면 전 세계 친구들과 친해질수 있었다.


적어도 이곳에선 내가 한국의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얼마나 영어를 잘하는지가 평가의척도였다. 그리고 그 영어로 지구촌 곳곳에서 온 친구들과 소통을 한다는 건 그 어려움을 뛰어넘는 가치를 보여주고 가끔(?) 동기부여도 되어준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2. 영어가 지구촌에서 가장 많이 쓰이게 된 이유에 대한 생각이었다. 라틴어는 5 격을 바탕으로 하고, 대부분의 유럽 언어도 명사의 성별이 나뉘어 있는데,

영어는 고작 동사변화와 불규칙 정도이다.


우리 모두는 한국어를 정말 잘하는 외국인들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대다수의 고등교육을 받은 우리 모두는 최소 알파벳은 알지만, 외국인들이 접하는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은 그림부터 시작했기에 방송에 나오기까지 인내하고 노력한 그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국어는 노란색을 다른 말로 46개로 표현할 수 있는 반면, 영어는 단순하게 ‘Yellow’이며, 존대어법도 국어처럼 복잡하진 않다. 반대로 그만큼 한국어는 섬세한 언어이자 노력을 요하는 언어이다.


누군가는 영국을 침략한 바이킹 족이 이전의 언어체계가 너무 복잡해서 간단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오늘의 영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은 바이킹에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자리를 빌려 “바이킹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3. 영어공부는 일종의 퍼즐게임과도 같다.

의도 없이 글을 쓰거나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글을 구성하고 말하는 사람이 전하는 의도와 뉘앙스를 잘 살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Systematically(체계적으로) 문법의 바탕 위에서 풀어나가며 해석하는 Rule(규칙)과 탄탄함 이 요구되기에 너무 귀찮고 짜증 나지만, If(만약) 한 번 바탕이 깔리면 그다음부턴 유채화처럼 덧칠해지고 덧칠 해지는 반복의 과정이다.



4. 끝으로 언어공부는 돈이 별로 안 드는 취미생활이다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는 취침 전 누워서 보는 원서시리즈이다.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번역을 통해 오해 없이 전달되는 깔끔한 맛도 있지만, 원문을 통해 비록 유려하진 않더라도 감각으로 우려 지는 깊은 맛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그래서 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책을 보고 또 보고 기꺼이 그 책에 침을 흘리고 만다.








영어는 수학과는 다르게 끝을 고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 안고 가야 할 벗이자 원수이다.

가로막는 타성과 두려움에 출항을 고민할 수 있지만, 한 번 출항해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면 신선한 의미로 내가 깨어지는 체험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시대의동시성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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