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수세미 같았던 날
남편은 본격적으로 뜨개질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식탁 의자에 앉아서 하나둘 숫자만을 세는 남편. 조용한 거실. 햇빛이 창문을 비추고 그 옆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 내가 십 년 동안 바라온 평온한 일상이었다. 남편이 자기가 뜨개질만 해서 심심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난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그에게 지어 보였다. 잘 풀리지 않았던 글도 한치의 막힘없이 써 내려갔다.
남편이 만드는 소음이 없는 일상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래서 커피가 생각났나 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머신으로 향했다.
지나가다가 내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을 힐끗 쳐다봤다.
무언가 평온했던 방금 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제일 먼저 떨리는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색 실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일곱 가닥으로 갈라진 채, 흔들리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간은 그 실을 곧 엄벌이라도 할 듯 종이처럼 구겨져 있었고, 입은 굳게 일자로 다물고 있었다.
얼핏 봐도 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곧 터질 폭탄처럼 그의 얼굴은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커피를 마시려면 남편 앞을 지나가야 했다. 그러나 만약 지나간다면 엄한 불똥이 나에게 튈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마치 처음부터 움직이지 않았던 사람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음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역시 셋을 세기도 전에 그의 입에서 다소 격양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안 되는 거야? 분명 장모님은 이렇게 했는데!!"
남편은 뜨고 있던 수세미를 식탁에 쿵 하고 내려놓았다. 쉬울 거로 생각했나 보다. 남편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일곱 가닥으로 갈라진 실을 째려보며 말했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니야. 분명 이 실이 문제야. 다른 실로 해야지."
딱 봐도 실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일정한 힘을 주어 검지로 실을 당기거나 풀면서 사슬을 일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수세미에는 울퉁불퉁한 사슬이 가득 떠져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풀었다 뜬 것인지 갈라진 사슬에 잔실이 잔머리처럼 삐쭉삐쭉 나와 있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고 말았다.
"내가 봤을 때, 네가 검지에 실을 바짝 감고 뜨는 것 같아. 조금 느슨하게 해 봐.“
"알아! 그런데 잘 안된다고…."
남편은 입을 삐쭉 내밀며 나를 째려봤다. 그리곤 네가 뭘 알아? 그렇게 잘 알면 네가 해봐.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또 화장실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동굴. 아마 몇 분 동안은 저 동굴에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이상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었다. 서둘러 남편이 던지고 간 수세미를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몇 분 뒤 화장실에서 나온 남편에게 나는 달려갔다. 서둘러 엄마가 보낸 메시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엄마가 그…. 구멍을 가득 차게 뜨래. 그래서 잘 안 되는 거래."
"…."
"그렇게 한번 다시 해봐. 이제 될 거야."
"나는…. 조언보다 위로가 필요해."
"뭐라고?"
"나는 해결보다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 필요하다고."
"그게 무슨…."
내가 한 말이 오히려 화가 난 그를 더 자극한 것 같았다. 이번엔 아예 안방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 버렸다. 왜 사람들이 뜨개질은 화가 없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잘 안된다고 해서 해결책을 알려준 것뿐인데.
우리의 뜨개질 여정이 시작부터 꼬이다니.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수세미를 만들다가 남편이 수세미가 되는 한이 있어도, 나는 수세미를 완성하고 글을 써야 했다. 나는 고민했다.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돌려놔야 했기에. 글 공장장은 기술자가 없으면 돌아갈 수 없었다.
남편에게 그때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날. 그 이야기를 하면 왜 남편이 나를 이렇게 혼자 두면 안 되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 너머로 분명 내 이야기를 듣고 있을 남편에게 나는 말을 걸었다.
우리 이러면 안 되잖아.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4화
<내 마음이 수세미라도>
내 마음이 수세미라도
당신의 눈물에 잠길래요
당신 안의 흐르는 슬픔까지
고요히 내가 안을 수 있도록
마음이 수세미가 되어버린 날
신혼 초, 우리는 아직 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력만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살을 빼고, 남편은 술과 담배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