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를 따뜻하게 지켜주는 선배
뜨개질하면서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내 검지가 이상해.’
‘내가 몇 코까지 뜬 줄 모르겠어.’
뜨개질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의 뜨개질 정체기가 시작된 것 같았다.
남편의 마음은 어떻게든 완성해 아내에게 칭찬받고 싶은데, 손가락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점점 그의 등은 꼽등이처럼 굽어갔다.
그래서 남편을 위해 커피를 타주기로 했다. 호텔에서 자주 마시던 커피. 커피 가루가 1이라면 물이 3인 한강 커피였다. 남편은 내가 탄 커피를 힐끗 보고는 안 마신다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나는 실에 메여있던 그의 손을 억지로 끌어당겨 내가 탄 커피를 잡게 했다.
"마셔야 할 거야. 기억나? 당신이 일이 힘들다고, 나한테 도와달라고 했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취직했었지. 그때, 내가 자주 마셨던 커피야."
그윽하게 그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벌써 칠 년 전 이야기다. 난 호텔을 그만 둔지 일 년이 지났고, 남편은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했다. 그런데 새로 이직한 회사가 맞지 않는지 유난히 힘들어했다. 전화할 때마다 매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근무지도 서울이 아닌 이천이었다. 그래서 주말만 만날 수 있었는데, 남편은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이대로 가면 정말 남편이 모든 걸 내려놓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힘들면 그냥 다시 서울로 오라고 말했다. 내가 다시 호텔에 취직해 보겠노라고.
물론 다시 호텔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얼굴도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한없이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곳이었다. 출근하면 맞이하는 건 반가운 직원들의 인사가 아니라, 하룻밤 사이에 까맣게 적힌 콜백 리스트였다.
솔직히 다시 이력서를 쓴다 해도, 면접을 볼 자신도 없었다. 누가 나를 뽑겠어?라는 짙은 안개가 내 안에 깊이 퍼져있었다.
그래도 억지로 이력서를 쓰고 호텔 면접 준비를 했다. 그런데 영어를 다시 쓰려니 끼익 끼익 체인이 헛돌았다. 나는 이미 녹슬어 버린 자전거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내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나는 그에게 '간다고' 말했고,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출발' 밖에 없었다.
안갯속에서 낡은 자전거가 휘청이며 면접을 보러 다녔다. 다행히 먼지처럼 날아다니던 이력서 한 장이 간신히 호텔 모서리 끝에 걸렸다. 그런데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이 또다시 나의 발목을 잡았다. 십 년 차 어리바리한 팀장이 필요한 회사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회사에 적응해야 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익히려면 물도 마실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물 마실 시간을 줄이자고. 커피와 물을 같이 마시기로 했다. 그때부터 마시게 된 게 이른바 한강 커피였다.
그렇게 수 없이 마신 한강커피 때문에 문신이 되어버린 녹을 벗겨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일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친한 동료도 생겼고 그만큼 술자리가 많아졌다. 일도 많은데, 사람 관계도 신경 써야 하니 집에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들었다.
하루에 남편을 보는 시간은 고작 2시간. 매일 어둠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어둠 속에서 퇴근했다. 집에서 말은 줄어들고 남편에게 신경질을 내기 일 수였다. 그러다가 능력에 맞지 않는 직책까지 주어졌다.
쉬는 날에도 집에서 티브이를 보며 밥을 먹다가도 전화벨이 울리면 화장실로 뛰어갔다. "네, 총지배인님. 그렇죠.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전화를 끊자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전화를 끊고 마주한 화장실 거울 속 나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던 것 같다. 나 왜 이렇게 살지?라는 물음표 안에서.
"여보, 열심히 했다. 이젠 네가 쉬어. 내가 뛰어 볼게."
어느새 남편은 내 뒤에 서 있었다. 이제는 자기 차례라는 듯 내 등뒤에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렇게 녹이 슨 자전거가 온몸이 부서져라 달리다, 고장 나 버린 후에 멈출 수 있었다.
그때 그 한강 커피라고 말한 뒤, 나는 남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가로 방향으로 주름이 가득 진 그의 미간에 세로 주름이 지어졌다. 입술도 어색하게 위아래로 씰룩였다. 그리고 대뜸 이게 그 유명한 한강 커피냐며? 황급히 커피를 마셔버렸다.
남편은 뜨거운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다가 혀를 댄 것처럼 보였다.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어쩌면 그의 마음 한쪽에 자리 잡았던 죄책감에 그의 혀를 제물로 바친 것처럼 보였다. 뜨겁다며 펄쩍 뛰는 남편을 나는 웃으며 바라보았다.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의 등을 토닥였다. 그 기억들도 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재료가 되었어. 라며 웃어 보였다.
너도 뜨개질이 잘 안 되면 일단 잠시 쉬라며 그의 손에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들려주었다.
그는 알겠다며, 내가 준 책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불도 켜지 않은 채. 몇 분 후,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숨이 나왔다. 식탁에는 남편이 풀어놓아 얼기설기 얽혀있는 실타래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