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3박 4일 여름 여행기 - 페이페이돔 야구 직관, 바다의 날
올해 7월 동생과 사촌동생 셋이서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어른이 된 기념으로 일본 여행을 같이 다녀오자! 했던 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걸 해냄! 대신 여행을 2주 후 일정으로 급하게 정하게 되면서 가장 가고 싶었던 오사카 대신 비교적 저렴한 후쿠오카로 다녀오게 되었다.
올해 2월에 도쿄에 다녀오고, 일본어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면서 후쿠오카 시내로 들어가며 마주치는 길들이 엄청 새롭진 않았다. 가타카나를 읽고 현수막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신기했다. 사진 속 내용은 '이지메 제로 프로젝트'이다. 학교 폭력과 관련된 듯하다.
비대면으로 운영하고 있는 '레지던스 호텔 하카타 8'에 체크인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미리 안내된 비밀번호를 입력했음에도 잘 안 돼서 애를 먹고 있었는데, 같이 헤매던 다른 일본인 숙박객들이 전화를 걸어주셨다. 전화와 완전한 언어가 안 되는 외국에서는 나도 바보가 된다..(ㅜㅜ) 교통이 좀 불편했던 걸 제외하고 시설적으로 문제없이 잘 묵었던 곳이다. 짐을 놔두고 조금 쉰 후에 바로 나왔다.
강하게 내리쬐는 해를 피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Niyol Coffee'이다. 정말 작은 카페였는데 운이 좋게 자리가 있어서 세 명인 우리도 앉을 수 있었다. 커피를 마셔보고 싶었는데 오후 시간대였기 때문에 초코 음료를 시켰다. 밖의 테라스 자리에서 사장님과 지인들이 수다를 떠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바로 오꼬노미야끼를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오픈 시간인데도 현지인들이 엄청 줄을 서있었다. 대기를 걸어놨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포기하고 근처의 킷사텐으로 향했다. 나는 킷사텐이 참 좋다. 킷사텐에서는 파르페를 먹었는데 딸기철이 아니었던 게 아쉬웠다.
저녁에는 하카타역에서 이것저것 덕질도 하고, 호텔에 돌아와서 TV도 봤다.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오타니 얘기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사진 속 그는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이제 그는 다저스 인간인 걸...
이날은 오꼬노미야끼 웨이팅을 실패하고, 너무 지쳐서 호텔에서 우버이츠로 야끼소바를 시켜 먹었다.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첫 번째로 먹는 끼니가 배달음식이라니 조금 슬플 뻔했지만 너무 맛있었다. 올해를 결산하면서 올해의 음식에 꼽기도 했을 정도다. 야끼소바 중에서 제일 위에 뜨는 가게에서 시켜 먹었는데 먹고 나서 검색해 보니 히타식 야끼소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히타 야끼소바는 면을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철판에 볶은 게 특징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 식감이 더 좋았던 듯하다. 일본인 친구 Y가 아사히 슈퍼 드라이보다 맛있다며 추천해 준 마루에프와 함께 먹었다. 다만 아직 맥주 맛은 모르겠다 ㅋㅋㅋ
둘째 날은 혼자 다녔다. 동생들은 유후인 + 벳푸 투어에 가고 나는 소프트뱅크 야구 직관을 하러 가는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탔는데 유니폼을 입고 계신 분들이 정말 많았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곳에서 따라 내렸더니 거기가 야구장이었다 ㅋㅋㅋ
나는 티켓을 '디스커버리 규슈'라는 사이트에서 구매했다. 공식 대행 사이트이고 티켓 발권을 하는 줄이 일본인들 줄과 달라서 생각보다 짧았다. 한국 야구와 다르게 일본 야구는 외야 좌석 가격이 3만 원부터 시작했다. 작년에 4개월 동안 전국 5개 구장으로 직관을 15번 정도 갔는데... 일본에선 불가능한 일 같다. (미국은 얼마나 더 비쌀까.)
또한 내가 갔던 날은 일본 바다의 날인 7월 17일이었다. 그리고 행운스럽게도 '매의 제전'이라는 정말 큰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입장객에게 유니폼을 나눠줬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모두 청록색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올해가 페이페이돔의 30주년, 호크스의 85주년인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역사가 길어서일까 올해 만난 일본인 친구들 중에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는데 소프트뱅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직원 분께 짧은 일본어로 경기 전후 이벤트도 여쭤봤는데 경기 전 이벤트가 있어서 조금 일찍 입장했다. (맨 오른쪽은 보여주신 정보를 허락받고 찍은 사진!)
메이저리그, 타구단 굿즈도 구경하고 나도 박수 쳐주는 굿즈를 사서 입장했다. 소프트뱅크 굿즈샵이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게 컸다. 라인프렌즈 콜라보도 있고, 리락쿠마 콜라보도 있었다. 엄청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샀을 텐데 캐릭터 굿즈 중에는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잠실 구장을 가다가 고척돔에 가면 와! 진짜 시원하다. 이게 돔구장의 맛이구나 느끼는데 생각보다 페이페이돔은 더웠다. 기다리면서 구장 사진도 찍고 상대 팀인 오릭스 버팔로스가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아마 이 사진 속에 야마자키 소이치로가 찍힌 것 같은데 확신할 수가 없다.
또, 비어걸 언니한테 생맥주를 사 먹었다. 다 같은 가격인 줄 알았는데 브랜드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그냥 눈에 보이는 분한테 사 마셨는데 제일 비싼 950엔인가 그랬다... 가격 듣고 뻥인 줄.
경기 시작 전에 이벤트를 했다. 아쉽게도 진격의 거인 ost에 맞춰서 춤춘 것만 기억난다...
또 내가 갔을 때 소프트뱅크의 선발투수는 카터 스튜어트라는 선수였다. 초구를 던졌는데 157km인가 나와서 뒤에 한국인들이랑 다 같이 '???' 상태 됨 ㅋㅋㅋ 초구가 157? 그리고 이 선수였나 등장곡이 되게 좋았다. 메트로 부민의 space cadet이었던 걸로 기억...
아쉽게도 이 날 경기는 진짜 진짜 재미없었다.. 원래 페이페이돔은 경기가 이기면 개폐형 돔 뚜껑을 열고 폭죽놀이를 해주는데 져서 못 봤다. 심지어 너무 재미없어서 가라아게 사러 나간 사이에 오릭스가 쓰리런 쳐서 그 장면도 못 봄... (이게 뭔) 오릭스 필승조인 소이치로가 등판하나 싶었는데 소이치로도 안 올라왔다. 그냥 매의 제전이라 유니폼 받고, 풍선 날린 것이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의의를 두고 있다.
내년엔 한신 고시엔 구장이 100주년이라는데 오사카에 가볼 수 있을까! 고시엔 구장 100주년 흙 키링을 사고 싶다.
경기가 끝나고 동생들이 하카타 역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기 때문에 모모치 시사이트 파크에 갔다. 진짜 35도의 땡볕에 죽는 줄 알았다. 바다의 날에 바다를 본 건 좋았다.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카타역 쪽으로 돌아와서 동생들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심지어 '바다의 날'이라 영업을 안 하는 가게가 많아서 근처에 열어 있는 라멘집에 들어갔는데 진짜 맛있었다. 특히 저 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사촌동생 거 두 장이나 뺏어먹었다. 또 숙소로 돌아가는데 이대로는 아쉬워서 AIMAI라는 카페에 갔다. 음료가 색다른 느낌은 없었지만 후쿠오카 MZ세대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생들은 캐릭터를 너무 좋아해서 캐릭터 쇼핑을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캐릭터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고 너무 지쳐 있었어서 혼자 카페에 갔다가 쇼핑 끝나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미리 찾아둔 카페인 마누 커피에 갔다. 뜨거운 밖과 달리 내부는 시원해서 따뜻한 라테를 시킬 수 있었다.
바깥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사장님의 선곡 센스도 좋아서 좋은 노래들을 검색해서 플레이리스트에 넣었다. 여기서 처음 들은 노래 중에 A lesser man이라는 노래는 7월 내내 들었을 정도이다.
생각보다 동생들이 캐릭터 쇼핑을 오래 해서 나는 BBB포터스라는 접시와 주방 용품을 파는 편집샵에 다녀왔다. 아이디어 상품이 되게 많았는데 엄청 딱 마음에 드는 건 없어서 구매하진 않았지만 가게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셋째 날은 쇼핑을 하고 카페도 갔다가 저녁에 뭘 먹을까 했는데 오며 가며 본 호텔 앞 작은 식당에 가기로 했다. 밖에서 볼 때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였다.
가격도 괜찮아 보여서 들어갔는데 사장님이 한 분이 하는 가게였다. 바 테이블인 점도 너무 좋았다. 여행 가기 전에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드라마 <그랑메종도쿄>를 보고 갔는데 사장님을 보니 주인공 '오바나'가 떠올랐다.
나는 드라마 <퍼스트 러브>가 떠오르는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시켰고 글라스 와인도 한 잔 주문했다. 어쩌다 들어간 식당인 것이라기엔 정말 만족했다. 사장님이 요리하는 걸 보는 것도, 짧은 대화를 일본어로 나눈 것도 이제 막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나에겐 너무나 좋은 자극이었다.
사실 2주 전에 급하게 예약한 호텔이 시내와 너무 멀어서 힘들기도 했다. 도쿄보다 교통도 편하지 않았고, 공휴일이 있어서 시간 변경도 있었다. 그런데 호텔 앞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가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 점을 다 잊게 해 주었다. 야구는 후쿠오카 오기 전부터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없었지만, 호텔은 어쩌다 발견한 가게 하나가 단점을 모두 상쇄시켜 주었다. 여행이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아서 더 재밌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동생들과 셋의 조합으로 처음 떠났던 성공적인 여행! 다들 미친 더위 속에서 계속 웃었던 걸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