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에서 들은 노래와 함께
간사이 공항에서 바로 고베로 향하는 리무진을 탔다. 한참을 달리고 나니 창 밖에 Mercedes Benz KOBE, Audi KOBE가 적힌 간판을 보는데 실소가 나왔다. 나 진짜 고베에 왔구나! 너무나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실제로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는 것이 피부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고베에선 행복했다. 현실감이 없었고 여전히 약간 꿈같다. 뜨거웠던 열기도 생각보다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던 바람도, 흐릿한 듯 깔끔한 맛의 필터 커피 라테도, 등지고 앉았던 파도도, 오렌지빛 노을도.
Vaundy - 恋風邪にのせて
리무진에서 내린 곳이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다. 그 틈을 뚫고 호텔로 향해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기 위해 로컬 라멘집에 갔다. 외국인이 혼자 오니까 다들 의아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일본에 가면 로컬 라멘집에 가는 게 재밌다. 라멘은 딱 짭조름한 일본 라멘 맛! 양이 많았고 맛있었다.
사실 밥보단 커피가 너무 생각났다. 미리 찾아놓은 카페에 가는데 고베는 역시나 언덕의 동네.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나도 챙겨 간 우산을 썼을 정도로 해가 강렬했다.
'동물의 숲' 카페라는 별명이 있는 카페 '상파울루'에 도착. 사장님께서 외국인인 날 위해 영어를 하셨는데 난 머리를 한영일 바꿔가면서 말하려니까 빠릿빠릿하게 안 되었다. 그래서 더 헷갈리게 한 것 같다. 아무튼 폰에 짧게 짧게 적어둔 생각을 다이어리에 옮겨 적고 땀을 식혔다.
바로 카페 근처의 키타노이진칸에 갔다. 여기서 소극적인 일본 이미지와 달리 박물관마다 호객 행위가 많았던 점이 가장 신기했다. 유럽 느낌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그래서일까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눈이 심심할 틈이 없었다. 난 박물관을 방문하지는 않고 그냥 거리를 둘러보다가 고베의 수평선이 보인다는 기타노텐만 신사에 갔다.
신사의 한쪽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맞은 바람과 풍경 소리가 생각난다. 한국은 계속 비가 왔다 안 왔다 해서 한창 습할 때였는데 그래도 내가 여행할 때 일본은 그늘 아래선 시원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후기처럼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보이던 신사! 날씨가 좋았지만 그래도 수평선은 너무 멀었다. 원랜 바로 바다에 가려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호텔로 갔다.
저녁에 오사카에 가서 친구를 만날 예정이었어서 충분히 쉬고 바다는 포기할까 했다. 그래도 언제 다시 고베에 올지 모른다는 마음에 조금 일찍 나가 모토마치역에 내렸다. 아쉬움을 남기면 안 된다는 마음이 컸다.
모토마치 역에서 내려 바다 쪽으로 걸었다. 찾아놨던 카페 'voice of coffee'가 보였다. 원래 오후엔 커피를 잘 안 마시는데 오후 4시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니까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기로 결정했다.
들어가니까 다양한 원두가 있었고 사장님께서 취향을 물어보셨다. 나는 사장님과 대화하며 산미 없는 원두로 코스타리카를 추천받았고, 라테로 주문했다.
라테를 테이크아웃해서 Vaundy의 恋風邪にのせて를 들으며 바다로 걸어갔다. 커피 한 잔에 800엔이라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한 입 마시니까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너무 깔끔하고 가볍게 맛있었다. 그리고 기분도 좋았다. 바람 덕에 시원했고 노래도 좋아서 여기서부터 엄청 신났다. 걸어가면서 본 표지판에 Can't stop the dance라는 말이 쓰여 있었는데 딱 내 상황이었다. 신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메리켄 파크 도착!
바다 쪽으로 걸어가는데 로컬들이 잔디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가방에서 장바구니를 꺼내 펼쳤다. 나무 그늘 아래 깔고 앉아서 듣던 노래를 한 곡 반복으로 듣는데 너무 행복했다. 30분? 한 시간가량 누워 있었을까? 사실 더 있을 수 있었는데 친구랑 약속 시간이 다가와서 아쉽지만 일어났다.
지는 햇빛이 비치는 바다를 가볍게 둘러보고
오사카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역으로 향하기 위해 바다를 등지니 큰 산이 보였다. 이때 처음 이 장면을 보고 뒤로는 산이 감싸주고, 앞으로는 바다가 품어주는 고베는 따뜻한 도시라는 생각을 했다.
Sabrina Carpenter - Please Please Please
고베는 2일 차였지만 여행은 4일 차였다. 고시엔 구장도 갔다가 오사카에서 또 다른 친구를 만나고 다시 고베로 향했다. 지하철에서는 한신 타이거즈 투수 '사이키'의 광고를 보았다. 고시엔 구장 다녀온 당일에 호텔 TV로 경기를 봤는데 그날 선발이었어서 이름을 외운 선수다.
고베에 도착해서 본 고시엔구장 100주년 광고! 직접 봐서 좋았다.
고베 2일 차에 잡은 호텔은 산노미야역이랑 모토마치역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모토마치역 근처가 확실히 산노미야역보다 느낌이 좋았다. 아마 두 번째 호텔도 산노미야역 근처로 잡았다면 이런 거리를 못 걸어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호텔 근처 분위기 때문에 완전 만족이었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Sabrina Carpenter의 Please Please Please를 들으면서 쉬다가 다시 나왔다.
또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서 카페에 가서 대화했다. 친구들을 만나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 건 언제나 재밌는 것 같다. 나와 다른 형태의 삶을 사는 친구들과의 연결. 그 순간이 좋다. 그리고 국내 어디를 가도, 어느 나라를 가도 친구가 있는 건 내 자랑 중 하나이다. (사실 그렇게 많진 않음. 허풍임 ㅎㅎ)
고베는 바다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또 다시 메리켄 파크에 왔다. 메리켄 파크에 걸어가면서 했던 어이없는 대화도 웃겼다. 친구들을 만나서는 이런 사소한 대화나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혼자 온 여행이라 사진을 많이 못 찍었는데 오사카에서도, 고베에서도 이런 기념물 앞에서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들이 남아 있어서 너무 좋다.
바다 앞에서 노을도 보고 사진도 찍고 편의점에서 산 미니 불꽃놀이도 하고 놀았다. 오른쪽 사진을 보면 산에 KOBE라는 글씨 대로 불이 켜진 것도 보인다. 친구가 산에 KOBE 있다고 말해줘서 보았다.
친구를 지하철역에서 보내주고 나는 혼자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냥 호텔 가는 길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메뉴도 대충 골랐는데 정말 맛있었다. 식당에서 사와 마시고 마지막 밤이라 아쉬워서 맥주 하나 사서 다시 메리켄 파크에 가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다른 친구들이랑 전화하고 호텔로 가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Official髭男dism - TATTOO
전날 전화로 친구들이랑 대화하느라 새벽 1시 넘어서 잔 거 같은데도 6시가 되기 전에 눈이 떠졌다. 그래서 준비하고 8시 블루보틀 오픈에 맞춰서 다녀왔다. 마지막날 아침 하늘이 너무 맑고 좋아서 더더욱 아쉬웠다.
블루보틀 오픈하고 5분 정도 지나서 도착한 거 같은데 이미 사람이 꽤 있었다. 달달한 커피를 추천받아서 뉴올리언스를 골랐고 마시면서 여행의 마지막 느낌을 내며 영수증 정리를 했다.
동네가 진짜 너무 예뻤다. 그냥 길거리일 뿐인데도 사진을 자꾸 찍게 만들었다.
이대로 호텔에 들어가서 쉬기엔 너무 아쉬워서 다시 바다로 향했다. 아무래도 메리켄 파크가 너무 좋았나 보다. 바다 앞에 앉아서 히게단의 타투를 계~속 들었다. 원래 아는 노래였는데 이때 왜 이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이때의 이 날씨와 분위기에 딱 맞는 노래였다. そっけないくらいで僕らは丁度良いんじゃない?
다시 호텔에 가서 체크아웃을 하고 다른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더 마시고 공항 가는 리무진을 타러 갔다. 처음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마지막 날 아침까지 고베는 꿈같았다.
고베. 아무것도 모르고 온 도시치고 너무 매력적이라 마음이 홀렸다. 키타노이진칸에서의 호객 행위도, 고베 사람들의 무단횡단도 그저 인간적인 냄새가 가득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また会お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