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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Feb 08. 2024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는 참 오랜만이야.

[순간예또] 첫 번째 편지. ‘처음’에 대한 이야기.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어. '내 생각을, 마음을, 느낌을, 감정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아마 잘 알고 있겠지만) 무대에서 연기를 했고, 사람들에게 정신과 신체의 건강함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을 했어.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나의 모든 도전을 응원해 주었고, 운이 좋게 인정도 많이 받을 수 있었어. '적성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기분도 들었으니 내 도전들이 꽤 성공한 셈이었지.


 그런데 뭐랄까. 이런 외부에서 오는 인정과 격려와는 반대로 안에서 채워지지 못하는 공허함이 있더라. 나는 그게 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공들여야 했어. 그러고 나서 이윽고 깨달은 거지.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아, 내 소개를 다시 정식으로 할게. 나는 예또(a.k.a 체성이)야. 예또라는 별명은 유튜버와 BJ, 배우 등 다양한 활동을 모색하던 2019년의 어느 날 내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단어였어. 다섯 글자를 줄여서 만든 말인데 나를 잘 알고 있다면 아마 쉽게 예측이 가능할지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수식어는 없는 것 같아서 아직까지도 꽤 만족하고 있어. 아버지가 지어주신 '송이'라는 이름도 좋지만, 내가 직접 지은 '예또'라는 별명도 못지않게 애정해. 나는 그저 늙어가는 내 모습도 예또스럽게 늙어갈 수 있길 바랄 뿐이야.


 이 편지에 대한 소개도 정식으로 하자면, 바야흐로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어... 당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공유하지 않을 시 당신의 가족이....ㅋㅋㅋㅋ미안! 장난 한 번 쳐봤어. 우연의 일치지만 하필 내 편지도 (진짜) 영국에서 시작되고 있고 행운을 가득 담아 보내는 건 사실이잖아? 기존의 행운의 편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시해도 불행 같은 건 당연히 없고) 오로지 잘 되길 바라는 마음만 담아 보낸다는 것 정도? 그리고 이 편지는 나름의 체계도 가지고 있어. 매달 끝자리가 9로 끝나는 날마다 발송이 될 거고, 매 편지마다 하나의 단어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적을 거야.


 이 편지는 첫 시작인만큼 키워드를 '처음'으로 잡아봤어. 어때? '처음'이라... 뭔가 듣기만 해도 설레는 감정이 들지 않아? 첫 편지로 담기에 아주 좋은 단어인 것 같아. 처음. 어렸을 때 너의 처음 꿈은 뭐였어?


 사실 난 고등학생 때까지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었어. (아니, 사실은 여전히 되고 싶어.) 그래서 부모님 몰래 학원도 알아봤었는데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남양주는 연기학원이 많지도 않거니와 학원비도 우리 집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더라고. 물론 내가 정말 출중한 배우가 될 재목이었다면 여기서 알바를 하든 배짱 좋게 학원에 대출신청(?)을 하든 어떻게든 학원을 다닐 방법을 마련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때의 나는 그런 수준의 열정까진 없었어. 내가 또 꽤나 현실적인 사람인지라 대충 나의 외모와 재능을 봤을 때 투자한 인풋대비 만족할만한 아웃풋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이 있었던 거지. 그쪽 업계야말로 외모와 재능을 모두 갖췄어도 운과 타이밍이 워낙 크게 작용하는 업계이니까.


 저런 고민을 했던 때가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어느새 내가 대학을 졸업한 지도 이제 곧 5년이 되네. 와 진짜 실감 안 난다. 중국에서 대학 다니면서 이것저것 너무 고생을 해서 그런가 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쯤이 되니까 이상한 보상심리가 생기더라? '내가 이렇게 열심히 개고생 해서 대학교도 무사히 졸업했는데 그럼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일 좀 해봐도 되지 않나?' 하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중국어랑도 경제전공이랑도 무관한 일들을 해왔어. 속으로는 언제든 실패하면 다시 내 학위 살려서 취직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런데 신기한 게 내가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해도 살아는 지더라. 엄청 잘 살지는 못해도 말이야, 살아남는데 지장은 없더라고.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선언한 후로 다짐한 일이 하나가 있어. 그건 바로 적어도 부모님께 손 벌리면서까지 내 이기적인 고집만 부리지는 않겠다는 거였어.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에 코로나가 세계를 강타했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많은 사람들이 힘든 때를 보냈어. 그래도 나는 부러지지 않았어. 꺾였을지언정 다시 일어나서 새 살 길을 찾았고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에게 경제적인 이유로 아쉬운 소리도 한 번 해 본 적 없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누군가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내가 나는 스스로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작년에(벌써 작년이라니!) 아버지가 집을 지으셨어. 짐을 옮기다 보니 어렸을 때 받았던 상장들이랑 친구들이랑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나오는 거야. 나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로 그렇게 많은 상을 받았었는지 몰랐었어. 물론 잊을 수밖에 없는 오래된 기억들이긴 하지만.


 멀고 먼 길을 돌아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야.  험난하고 거친 길 끝에 드디어 내가 맘껏 뛰놀고 뒹굴 수 있는 잔디밭을 마주한 느낌이야. 무대에서 관중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을 때에도, 헬스장에서 회원님께 예상 못한 선물을 받았을 때에도, 여행유튜브를 하며 구독자의 정성 담긴 댓글을 받았을 때에도 난 정말 행복했지만 지금 나는 그 직업들보다도 더 내게 잘 맞는 옷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야.


 글을 쓰는 거. 내 이야기를 하는 거. 그게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가장 잘했던 거고 하고 싶었던 거였어. 먼 길을 돌아 결국 다시 나를 찾게 된 거야.


 너는 어때?

 너의 어렸을 때 꿈은 뭐였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어?

 지금은?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

 네가 어렸을 때 타인의 개입 없이 순수한 너의 선호만으로 즐겁게 했던 일이 무엇인지 떠올려 봐.

 어쩌면 너는 그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지 몰라.


 아, 참고로 내 편지에 대한 답장은 따로 해주지 않아도 돼. 읽었다는 인증을 할 필요도 없어. 사는 게 바쁘다면 그냥 새로 사서 책장 구석에 박아놓은 책처럼 뒀다가 어느 날 시간이 여유로울 때 꺼내서 몰아서 읽어봐도 돼. 그냥 나는 항상 여기에 있을 거고 너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대와 내가 우연으로 만났지만 인연으로 오래 남을 수 있도록 말이야.



순간예또; 매월 9일, 19일, 29일 세 통의 편지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아주 솔직한 근황 이야기와 더불어 꿈과 커리어, 연애와 사랑, 그리고 대인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적어요. 
글로 먹고사는 미래를 꿈꾸며 새롭게 시작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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