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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Apr 20. 2024

[기록 1] 일본에서 안정을 찾다.

2024.04.20 일본에서 바라본 '나'


2024년 1월 첫해의 주말이 시작하기도 전,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적지 않은 나이에 일본으로 이주했다. 처음엔 일본에 여행을 온 것 같아서 항상 신나서 좋았고, 지금은 어느새 스스로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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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 26살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일찍 하면 좋다는 아버지의 의견이 나에게 영향을 미쳐서 그런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줄곧 결혼을 일찍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대로 결혼을 일찍이 할 수 있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비용까지도 양가의 부모님께서 아낌없는 지원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꿈만 같은 결혼식이 끝나고 이제는 혼자가 아닌 둘이서 인생을 함께 그려간다는 사실에 매우 들떠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 삶은 화려하고 웅장했던 결혼식과 달리 너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 내 인생은 180도 변화가 되었다.

아니,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모든 것에서 끊임없이 받고 자랐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선 말이다. 부모님의 경제적인 지원이 꼭 내 능력 같았고, 내가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결혼 후, 경제적인 지원이 부모님께 귀속되었고 나의 백마 탄 왕자 행세는 강제로 종료되었다. 연애할 때 보여준 백마와 화려한 시간에 대여기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만 26살인 아무런 능력이 없는 남성이 된 것이다. (아니 원래 그랬는데 나만 착각한 것이다.)


한동안 본래의 내 모습이 인정이 되지 않았다. 먼저 나의 큰 씀씀이가 강제로 줄어드는 것도 적응이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내에게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 아무런 지원을 못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큰 스트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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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영향으로 결혼을 일찍 한 것도 있지만, 실은 내 아내 같은 사람을 다시 못 만날 것이라는 확신에 일찍 결혼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아내의 인생을 돕고 같이 성장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아내에게 해주고 싶은 거의 모든 것은 경제적인 힘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못해주는 나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지고 힘들었다.


아내 입장엔 '이건 뭐 사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결혼 전후가 달라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경제적인 능력만 갖추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시간을 아끼지 않고 요즘 유튜브에서 나오는 돈 버는 방법들을 찾아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았지만 이것들이 내 마음을 울리지 못했다. 나에겐 마치 거짓으로 돈을 버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결과, 나는 두 번째 충격에 빠졌다.


돈을 벌어서 경제적인 능력을 키워, 아내와 가족들에게 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그 수단조차 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기업은 취업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작은 회사에 입사하자 하니 적은 벌이보다 나의 미래에 어떠한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생각을 하니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 나를 찾아주는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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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준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그 회사들에 기여를 하여 여러 발전을 일으켰고, 인생의 꽤 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점점 없어지는 게 느껴졌고 꺼져있던 나의 불안감의 불씨가 점화를 하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 불씨는 나를 또다시 미치게 만들었다.


극도로 예민해지고 불안해진 나의 상태는 아내를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까지 힘들게 만든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내 겉모습에선 티가 안 났지만, 나의 속은 타고 엉망진창의 시간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내가 일본으로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을 선택을 했고, 아무것도 못해주는 내가 아내의 선택이라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에 쿨하게 받아주었다. 그리고 아내의 엄청난 노력 끝에 일본으로 가게 되었고 우린 1년간 떨어져 살게 되었다.



1년간 떨어져 있는 동안, 나는 당연히 일본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모든 선택을 가로막았던 ‘돈’과 일본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다는 ‘나의 두려움’이 일본으로 가는 것을 쉽게 선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두려움과 여러 장애물들이 끊임없이 나의 머릿속에서 일본으로 가는 것을 막았지만,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심각하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이때 결혼해서 아내와 떨어지면 좋아하는 콘텐츠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튼 한국에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본으로 넘어가기로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진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에서 다시 시작을 하게 되었다.



처음 일본에 도착해서 살기 시작했을 때, '일본에서 무엇을 하려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농담으로 '타코야끼라도 만들어야 하나?라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곤 했지만, 이것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일본에서 약 4개월째 살아가고 있던 도중, 어느 순간 내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음 느끼게 되었다. 약 30년간 나 스스로를 착각해서 생각하고 정의했던 모습들이 잘못되었음을 서서히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내 환상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제는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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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의 경제적인 상황과 살아가는 모습은 변화한 게 없을 수 있다. 내 개인적인 능력은 조금 향상했다고 볼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마음이 참 홀가분했다.


처음엔 너무 초라했다. 아내에게 아무것도 못 해주는 '나'

아무 능력이 없어 눈치 보고 욕을 먹으며 손을 벌리는 '나'

그리고 결혼 전 큰소리 뻥뻥 쳤지만 그렇지 못하는 장인장모님 앞에서의 '나'


이 모든 것들이 다 모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 자체가 모순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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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끊임없이 인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은 달라진 게 없다.

이제는 그저 내가 만들어 놓은 부담을 내려놓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이다.


일본에서의 나의 어떤 모습이 기대되거나 두근거리는 것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 보내는 것뿐이다.


오늘도 그 하루 중 일부인 것이다.

2024년 4월 20일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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