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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Oct 04. 2022

[고구마 세 개] #9

인연의 무게 2

지수 아버지가 구속된 건 지수가 열다섯 살 되던 해 봄이었습니다.


술 취한 아버지를 피해 제 방으로 들어간 지수는 방문을 잠갔습니다. 방문을 발로 차며 소동을 벌이던 아버지는 결국 집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놓았습니다. 이웃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과 소방관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르다가 바로 구속된 것입니다.

이날의 사건은 지수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버렸습니다. ‘정말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과 ‘마음 병 때문에 어쩌지 못해 벌어진 일일 거야’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엎치락뒤치락 교차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혼자가 더 편한 열다섯 살


가족이라고는 부녀뿐이었던지라 교도소 면회는 고스란히 지수 몫이었습니다. 면회 때마다 아버지는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으니 책임지라’며 재판에 필요한 서류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4개월 남짓 수감 생활을 하고 나온 아버지는 전보다 더 자주 술을 마셨고, 지수로서는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비난하며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또다시 이웃 아주머니가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지수는 가정폭력 청소년 보호 쉼터로 가게 되었습니다.


쉼터에서 지낸 다섯 달 동안 지수가 결심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쉼터에는 다시 오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좋은 분들이에요. 저라면 그렇게까지 못해요. 그 샘들 덕분에 그래도 제가 거기서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제가 힘들었던 것은, 잘 모르는 다른 애들과 함께 지내는 거예요. 저는 쭉 혼자 살았어요. 친구도 없었고 집에서도 아버지 눈에 띄지 않으려고 방에서 숨만 쉬고 조용히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방안에 누군가와 같이 있는 걸 견딜 수가 없었어요.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다른 애들도 저를 부담스러워하고, 또 유난 떤다고, 재수 없다고 욕을 하고... 맞기도 했어요. 쉼터를 찾아온 모든 아이에게 따로 방을 줄 수 없다는 건 저도 알아요. 쉼터도 돈이 없으니까. 또 수시로 아이들이 바뀌고 어떤 때는 정말 진상이다 싶은 언니들이 오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꼭 내 힘으로 돈을 벌고 방을 구해서 독립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아빠 마음 병이 낫기 전에는 집에 갈 수도 없으니까요.”


분리 보호 조치로 실현된 지수의 첫 독립


열여섯 살이 된 지수가 그래서 결정한 진로가 ‘미용사’입니다. 졸업장이 없어도 당장 큰돈을 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기술이고, 큰돈을 벌지는 못할지언정 자기만 열심히 하면 가장 빨리 독립할 수 있는 길이라고 누가 일러준 적도 없는데 스스로 알아서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자신과 딸이 행복하게 살 기회를 망친다며 관계기관에 주장하고 다닌 아버지의 민원이 받아들여져 지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지수 또한 긴 쉼터 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쳤고, 아버지도 다시 폭력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마음에 든 병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망상 장애로 인한 의심증만 더 커져서 지수에 대한 폭력도 드세졌습니다. 극단적인 언어폭력과 폭행, 간섭과 통제, 멸시가 이어지자 지수는 다시 집을 나와야만 했습니다. 가족에게 ‘창녀’라는 소리를 듣는 집에서는 누구든 한시라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이때 만난 이들이 여자 1과 여자 2, 바로 은수와 지은이였습니다. 은수와 지은이는 그동안 만난 또래들과 달리 착해 보였고, 무엇보다 쓰는 말 중에 욕설이 많지 않았으며, 자기를 정말 걱정해 주는 것 같아서 그들의 가출팸에 끼어 함께 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지수는 정말 처음으로 마음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행복을 느꼈다고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기 전에 집에 들어오라는 협박 전화를 수시로 해댔습니다. 하지만 집에 들어가면 금세 다시 아동학대로 신고되어서 아버지는 교도소로 가고 자신은 쉼터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바로 그때, 그나마 맏언니였던 열아홉 은수가 밥차를 떠올리고 도움을 요청하자며 지수를 데리고 온 것이었습니다. 줄곧 보호시설에서 자란 은수는 솔직히 때리는 아버지라도 있는 지수가 그때는 부럽기도 했다고, 나중에야 말해주었습니다.


활동가들의 개입으로 지수 아버지는 다시 조사받게 되었고, 결국 아동학대 정황이 인정되어 분리 보호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지수는 오피스텔에 마련한 비상 숙소에 입주했습니다. 쉼터에서의 단체 생활을 힘들어했던 지수의 입장이 처음으로 반영된 일이었습니다.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으고, 미용 기술을 배우던 지수는 아버지가 다시 구속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술에 취해 이웃과 거친 드잡이가 일어났는데 집행유예 기간 중이라 바로 구속된 것입니다. 지수와의 분리 보호 조치를 받아들일  없었던 아버지는 지수 명의의 통장과 핸드폰을 수시로 정지시키면서 집으로 들어오면 풀어주겠다고도 했다가 자신이 죽든 살든 신경 쓰지 말고 혼자  먹고 잘살라고도 했다가 온갖 모진 말을 하며 위협하던 중이었습니다.


미성년자인 지수는 아버지의 동의 없이는 통장 개설과 핸드폰 개통이 불가능합니다. 통장과 핸드폰 없이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한국 사회에서 복지기관에서 인정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는 미성년에게도 핸드폰과 통장의 개통/개설권이 인정되어야 마땅합니다. 결국 아버지는 지수 핸드폰 개통을 취소해 버렸고, 지수는 활동가 명의로 개설한 핸드폰을 비상 연락용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청소년에게 핸드폰은 유일한 SOS 타전기라는 것을 부디 관계기관이 인지해주길 바랍니다.


미용사가 되고 싶은 지수의 진짜 꿈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수는 그 상황을 혼자서 감당하느라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습니다. 아버지를 돌보지 않고 혼자 두었다는 죄책감과 자기만 너무 가혹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 현실에 대한 절망으로 몸살과 두통, 무기력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급기야 응급실을 찾았더니 우울증과 영양실조, 급성빈혈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빈혈 수치는 긴급 수혈이 요구되는 바로 전 단계인 7.5였습니다.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하고 잘 먹기라도 하자며 지수를 다독였습니다.  소뼈를 우린 곰탕 파우치를 사고, 혈색이 돌아오는 데는 소간만 한 것이 없다고 해서 급한 대로 소간을 함께 내주는 곱창집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혈색을 찾은 지수는 다시 아버지 면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폭언과 위협에 시달리는 중에도 지수는 아버지가 술을 먹지 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자신을 돌보아 주던 시절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기타 연주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지수에게도 기타를 사주며 같이 연주하는 날을 꿈 꾸었고, 교도소에 있을 때도 정신이 돌아오면 통장에서 돈을 찾아 밥 굶지 말고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당부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끊고 치료를 받는다면 다시 자신에게 따뜻했던 아버지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지수는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용 기술을 배워서 돈을 벌게 되면 아버지를 제대로 치료받게 해서 같이 살고 싶다는 희망을 말한 건 지수가 응급실에서 퇴원하던 어느 새벽이었습니다.

미용사 자격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고졸 검정고시 공부도 시작하려고 마음먹을 즈음 아버지가 출소했습니다. 오랜만에 사회로 나오는 아버지에게 밥이라도 해 주고 싶고, 이런저런 돌봄도 필요하지 싶어 지수는 자신이 살던 집에서 아버지의 출소를 맞았습니다.


다시 폭력과 학대가 벌어질 것을 우려하는 활동가들에게 지수는 아버지도 변했을 수 있으니 딱 일주일만 함께 지내보고 나서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채 안 되어서 지수는 다시 SOS를 요청했고, 즉시 아버지가 알지 못하는 곳에 새 거처를 마련해 피신했습니다.


너는 원래 내 자식이 아니다.


망상 장애를 앓던 아버지가 마지막 남아 있던 인연의 끈을 잘라내듯 지수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아동학대로 신고 당할 것이 두려웠던지 순순히 지수와의 분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들(활동가들) 때문에 내 딸과 행복하게 살 기회가 날아갔다’는 원망 어린 말도 남겼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자기 딸을 납치해 갔다면서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미 관련기관에 상황이 다 공유된 터라 더는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이 되어서야 지수는 비로소 ‘가족관계 해체에 대한 수급자 사유서’를 시청에 제출하고 독립 수급자로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지수 씨의 봄날


지독한 독립의 과정을 겪는 동안 다시 몸의 위기가 시작되어 수시로 응급실을 드나들어야 했던 지수는 그 와중에도 운전면허에 합격하고, 미용 실기학원에 등록하면서 남은 꿈을 채워갔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날을 살고 싶다던 지수는 그해 여름, 아픈 기억이 곳곳에 널려 있는 살던 곳을 떠나 바다가 있는 도시로 삶의 터를 옮겼습니다.


십 년 가까이 지수와 동행해 주었던 보호기관에서는 지수에 대한 각종 지원과 보호를 종결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고, 지수는 그들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연락이 없어서 서로 안심하고 지낸 지 열 달, 고향으로 돌아가 살던 지수 아버지의 고독한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부고를 전하는 지수의 깊고 긴 울음은 아마도 자신을 아프게 한 아버지보다도, 아픈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지수에게는 아프게 한 아버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아픈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었습니다.


지수가 만 스물이 되던 봄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 통장에 돈이 좀 남아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생전에 빚이 얼마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돈을 찾으면 아버지의 빚까지 상속하게 되는 게 법이라서 ‘상속포기’라는 제도를 알려 주었고, 지수도 동의해서 상속포기를 완성했습니다.


법무사의 도움으로 상속포기 절차를 마무리 하고 돌아서는 지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젠 정말 새 날개가 돋길 기도해봅니다.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고마워, 스무 살 지수 씨!


* 청소년 SOS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나 다시배움 교육원(02-332-2692)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뉴스 필진 라다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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