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뉴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Nov 19. 2022

[고구마 세 개] #10

교도소에 다녀왔습니다

바다가 있는 P시까지 가는 길은 남은 가을을 누리려는 차들로 가득했습니다. 넉넉히 시간을 잡고 길을 나섰음에도 간신히 면회 예약 시간에 맞춰 닿을 수 있었습니다.

십중팔구 좁고 길게 난 도로 끝에 자리 잡은 같은 용도의 이 건물들에는 좀처럼 전체 윤곽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낮은 건물, 높은 담장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지 같고, 키가 큰 나무와 이끼는 아주 오래전부터 터 잡고 왔음을 드러내려는 무대장치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누군가의 일상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곳, 교도소에 가는 날은 생각도 못 한 생각들이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날이기도 합니다.


도로 위에서의 시간이 길어지자 ‘밥차 덕에 전국 순례를 다 다니게 되었다’고 동행에게 너스레를 떨어봅니다.


교도소에도 급수가 있다고요?


“전국에 쉰두 곳이나 있다는데, 우리가 가 본 곳은 고작 예닐곱 개뿐입니다. 좀 더 분발해야 할 걸요”

“이런 일로 분발하기 싫은데요. 면회 한번 다녀오면 이삼일은 애들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어, 그런데 요즘 들어 이동 거리가 늘었어요. 지난달에는 서해로 가고, 이번 달엔 동해로 가고... 그동안에는 다 한두 시간 거리였는데 말이죠. 왜 이렇게 멀찍이 이감되는 걸까요?”

“잘은 모르겠는데, 거기도 급수라는 게 있데요. 아이들이 어떤 등급을 받는가에 따라 일급지 이급지 나누어지는 것 같아요. 아이들 입소 기록이 누적돼서 그럴 수도 있고요.”

“그럼 제이가 있는 곳은 몇 급인 걸까요?”


별 의미도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어린 청춘들에게 이 격리의 시공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짐작해 보려고 하지만, 강제 격리는 군 훈련소 경험과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밖에 없다 보니 공감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있다던데 그거라도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제이는 몇 달 전에 우리나라에 한 곳밖에 없다는 여자 교도소로 이감되었습니다. 두 건 이상의 전화사기에 연루되면서 재판받는 기간이 길어졌는데 지난봄에야 확정판결을 받고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구치소로 면회하러 갔을 때 제이는 도무지 수감 중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또 면회를 오마고 약속했기에 이감 위로 차 오전 이른 시간에 면회를 예약하고 출발했는데 그만 교통 체증에 걸려 면회가 불발되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크게 실망할 제이의 모습이 떠올라 줄곧 마음이 편치 않던 날들이었습니다.


지적장애 혼자살이 성년의 삶


제이가 처음 밥차를 찾은 날은 나뭇잎이 다 떨어진 초겨울이었습니다. 다른 지역 경찰서에서 느닷없이 날아온 ‘출석 요구서’에 어떻게 대응하는 건지 몰라서 끙끙 앓다가 경찰이 잡으러 올 수도 있다는 소문에 겁이 나서 은수에게 상의했고, 밥차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제이와 은수는 아동보호 시설 동기로 몇 년을 함께 산 인연이 있습니다.


활동가가 출석요구서에 있는 담당 경찰과 통화하고 직접 제이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제이는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의 SNS에 들어갔다가 ‘돈 벌 수 있으니 D시에 있는 어느 모텔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에 무턱대고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온 적이 있었 고, 그 일이 ‘미성년 성매매’로 사건화 되면서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 사건이 ‘보호관찰’ 처분으로 종결되고 난 다음부터 제이는 자주 밥차를 찾았습니다.


제이의 고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을입니다. 연락이 끊어진 아버지,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살고 싶지만 어린 두 딸을 돌보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어머니 때문에 제이는 성장 과정의 대부분을 보호시설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시설의 도움으로 지적장애 판정을 받은 제이는 특성화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졸업까지는 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시설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다행히 시설을 먼저 나와 독립해 살고 있던 은수의 도움을 받아 당장 비 피할 곳은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 봄 어느 날, 밥차가 끝난 시간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던 은수와 제이, 지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뭐 필요한 게 있으신 건가? 말만 해. 없는 것 빼고는 다 줄 수 있어.”

“그건 아니고요...”

‘니가 얘기해’, ‘싫어, 니가 더 친하잖아! 니가 해’라고 쑥덕대며 은수와 제이가 서로 미루기를 하는 중에 제일 어린 지수가 나섭니다.

“저... 우리 일주일째 집에 못 들어갔어요.”

“왜 집주인이 들어오지 말래? 방세 못 냈어?”

“그게 아니라 너무 무서워요. 집에 가는 게...”

“집 앞에 깡패라도 진 치고 있는겨?”

“벌레가, 까만... 불 켜면 순식간에 도망가는 작고 납작한... ”


안 봐도 비디오. 누수에 난방도 잘 안 되는 그 방은 결국 점령군들에게 넘겨주고, 셋은 거처를 옮겨야 했습니다. 삼 년 전 일입니다.


가족의 의미 또는 가족의 무게


장애인의 자활을 돕는 회사에 취직한 제이는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돈을 모으는 이유는 딱 하나. 엄마 동생과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월급을 처음 받아 본 제이는 이 돈 정도면 식구가 모여서 살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역시나 장애 판정을 받은 동생과 엄마가 왔고, 엄마도 검사비를 지원받아 지적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몇 가정에서 장애 판정 검사를 받지 못해서 장애 등록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삼십만 원 정도 되는 비용이 큰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제이의 엄마도 그런 경우입니다. 이 비용은 ‘장애’로 결과가 나오면 극히 일부나마 되돌려 받을 수 있지만, 검사 결과가 ‘장애아님’으로 나올 경우에는 오롯이 본인 부담이 됩니다. 여기저기 잘 찾아보면 검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곳도 있다지만 이런 제도를 알 길이 없는 가정에서는 여전히 검사비가 무서워서 검사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생에 걸쳐 받게 될지 모를 보호와 지원보다 당장의 삼십만 원이 더 궁한 처지라서입니다.  


자신의 월급과 지원금을 기반으로 처음으로 세 모녀가 함께 살게 된 것이 제이는 행복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모두 지적장애가 있는 세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수 없이 날아오는 고지서와 우편물, 관리비와 임대료를 관리하는 일은 모두 제이의 몫이 되었고, 장애 판정을 받은 엄마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잔소리가 늘어 제이의 스트레스만 쌓이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시설에서 자란 제이와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오랫동안 같이 지낸 동생만 챙기는 엄마를 보다 못한 제이는 분가를 선언했습니다.

다시 혼자살이를 하게 된 제이는 씀씀이가 커졌고, 돈 빌려달라는 친구들 요청에도 거절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버는 돈 보다 갚아야 할 돈이 더 많아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제이는 회사까지 그만두고 연락두절 상태가 되었습니다. 은수의 걱정에 여기저기 알아보니 제이는 ‘수배 중’이었고 일 년 전에 ‘긴급체포’되어 구치소에 가게 된 것입니다.


법정은 제이가 반복해서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을 한 것으로 보아 충분히 범죄라는 것을 알고도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인정했지만, 장애와 가족 회복을 위한 노력이 반영되어 구형보다 짧은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제이는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엄마는 여전히 ‘학교’까지 갔다 온 제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동생 또한 함께 자라지 못한 거리감을 쉽게 좁히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묶인 처지이면서도 면회 간 활동가들을 그렇게 천진하게 반겨줄 수 있는 마음이 있고, 또 제이를 기다리고 있는 연인이 있기에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다시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 비지트 활동가들의 교도소 순례 후기가 이어집니다.


* 청소년 SOS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나 다시배움 교육원(02-332-2692)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뉴스 필진 라다키안


매거진의 이전글 [고구마 세 개] #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