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뉴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Dec 06. 2022

[그때 그 노래] #12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 My Favorite Things

마음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우울하다. 슬프다. 그럴 때는 무엇을 하면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오늘 들어볼 노래의 주인공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기분이 나아진다고 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삽입곡 ‘My Favorite Things’이다. 원래는 동명의 뮤지컬 넘버였는데, 후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 삽입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에서는 세찬 비가 내리는 밤에 천둥소리가 무서워 마리아의 방으로 모여든 아이들을 안심시키려고 마리아(줄리 앤드루스(Dame Julie Andrews) 扮)가 신나게 불러준다.


https://youtu.be/2G6dd7ikrXs


장미꽃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아기 고양이들의 수염(Raindrops on roses and whiskers on kittens)
밝은 색 구리 주전자들과 따뜻한 양모 벙어리장갑(Bright copper kettles and warm woolen mittens)
갈색 종이로 싸서 끈으로 묶은 꾸러미(Brown paper packages tied up with strings)
이것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이야(These are a few of my favorite things)


가사는 노래의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 아름답고 귀엽고 따뜻하고,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그래서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것들을 나열할 뿐, 구구절절한 설명은 거의 없이 짧고 간단한 편이다. 그런데도 눈앞에 선명한 영상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매우 생생한 묘사를 이룬다.  

 

오래전 문법 공부의 기억을 소환해 보자. 마지막 줄의 ‘a few’는 ‘셀 수 있는 명사’ 앞에서 ‘몇 개의, 약간의’라는 의미가 되는데 뒤에 ‘of’가 붙어 ‘~ 중 몇 가지’라는 뜻이 되었다. 즉 노래의 주인공이 좋아하는 것들은 더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이런 것들이라는 뜻. 


크림색 조랑말들과 바삭한 사과 슈트루델(Cream-colored ponies and crisp apple strudels
초인종과 썰매의 방울, 면을 곁들인 슈니첼(Doorbells and sleigh bells and schnitzel with noodles)
날개 위에 달을 싣고 날아가는 기러기 떼(Wild geese that fly with the moon on their wings)
이것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이야(These are a few of my favorite things)


오스트리아의 음식 이름이 두 가지 나온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의 오스트리아이니 당연한 일이겠다. 슈트루델은 얇은 페이스트리를 겹겹이 쌓고 그 사이에 과일이나 치즈 같은 것을 넣어 굽는 오스트리아의 디저트인데 여기서는 사과 슈트루델이라고 했으니 사과를 넣어 구운 것이다. 행사나 축제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고 한다. 

사과 슈트루델

앞의 형용사 crisp에 주목. 과자가 바삭하고, 야채나 과일이 아삭한 것, 공기가 상쾌하다고 할 때도, 천이 주름 없이 빳빳한 상태도 crisp로 표현할 수 있다. 슈니첼은 ‘송아지 커틀릿’이다. 돼지고기로 만들었다는 사실만 빼면 우리가 익히 아는 ‘돈가스’와 비슷한 생김새다.


푸른색 새틴 띠를 두른 흰 드레스를 입은 소녀들(Girls in white dresses with blue satin sashes)
내 코와 눈썹에 앉아 있는 눈송이들(Snowflakes that stay on my nose and eyelashes)
봄으로 녹아드는 은백색 겨울들(Silver-white winters that melt into springs)
이것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이야(These are a few of my favorite things)


시적인 표현들이 아름답다. 앞의 ‘날개 위에 달을 싣고 날아가는 기러기 떼’도 그렇고, ‘내 코와 눈썹에 앉아 있는 눈송이들’, ‘봄으로 녹아드는 은백색 겨울들’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개에게 물렸을 때(When the dog bites)
벌에 쏘였을 때(When the bee stings)
슬픔을 느낄 때(When I’m feeling sad)
난 그냥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해(I simply remember my favorite things)
그러면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And then I don’t feel so bad)


앞에 나온 것들과 정반대의, 주인공을 언짢게 하고 힘들게 하는 상황이 나온다. 개에게 물리고, 벌에 쏘이고, 슬픔을 느낄 때. 그럴 때는 앞에 언급했던, 주인공이 좋아하는 것들을 그냥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곡 안에 딱히 크리스마스라는 언급이 있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나 몇몇 단어들(warm woolen mittens, brown paper packages, sleigh bells, snowflakes, silver-white winters 등)이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해서인지 캐럴로 듣는 경우도 많다.


워낙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노래라 여러 가수가 다시 불렀다.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인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는 이 곡의 멜로디를 샘플링 해 새롭게 만든 ‘7 Rings’라는 노래를 불렀다. 재즈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은 생전에 이 노래를 멋진 연주곡으로 남겨 놓았다.


여러 가수의 커버 버전 가운데, 배우이자 가수인 레슬리 오덤 주니어(Leslie Odom Jr.)의 재즈풍 노래와, 재능 넘치는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Pentatonix)의 노래가 퍽 인상적이다. 같은 노래지만 원곡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매력을 뿜어낸다.


레슬리 오덤 주니어의 My Favorite Things

https://youtu.be/8Gx6abDwM5g

펜타토닉스의 My Favorite Things

https://youtu.be/EGOz9f78IjI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줄리 앤드루스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멋진 가사 덕분에 노래를 부르다 보면 갈색 종이에 싸인 꾸러미와 장미꽃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등이 그림으로 그려지는 느낌이었다고.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것들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리라. 줄리는 69세 생일 기념행사에서 이 노래를 했는데, 가사를 아래와 같이 바꾸어 불렀다.


캐딜락(미국산 고급 승용차 브랜드)과 폭포(백내장)와 보청기와 안경 (Cadillacs and cataracts and hearing aids and glasses)
폴리덴트(틀니 세정제)와 픽소덴트(틀니 접착제)와 유리잔에 담긴 틀니 (Polident and Fixodent and false teeth in glasses)
페이스메이커(심장박동 조절기), 골프 카트, 그네가 있는 현관 (Pacemakers, golf carts and porches with swings)
이것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이야 (These are a few of my favorite things).


아, 줄리 여사! 과장된 유머려니 하고 웃어 넘기기엔 너무나 현실적인 가사여서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미리 말해주는 것 같아 슬쩍 겁이 날 정도다. 문화예술에 이바지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에게 여성 기사 작위이며 남자의 ‘Sir’에 해당하는 ‘Dame’ 존칭까지 받은 그도 세월 앞에는 별다르지 않구나 싶다.


‘cataract’는 ‘폭포’란 뜻도 되지만 ‘백내장’이란 뜻도 있다. 셋째 줄의 ‘pacemaker’는 경주의 선두에서 달리면서 전체 대열의 속도를 조절하는 페이스메이커를 뜻하기도 하지만 부정맥 환자가 가슴속에 부착하는 심장박동 조절기라는 의미도 된다. 그녀가 실제로 심장박동 조절기를 달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건강했으면 좋겠다. 87세인 지금은 무엇을 좋아하고 있을까?


믿을 수 없게도 벌써 올해의 마지막 달이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세월이 심란하고 우울하다면, 지금 이 노래에 자신만의 가사를 붙여서 불러 보는 것은 어떨까?


작성자: 최주연

매거진의 이전글 [고구마 세 개] #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