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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Dec 28. 2022

[고구마 세 개] #11

영준이의 학교생활 1

바다가 있는 남쪽 도시에서 수형 생활을 하고 있는 영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면회, 영상 면회, 편지 같은 것들이 기록으로 남아 가석방 심사 점수에 포함된다고 하니 영상 면회 좀 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지난여름 면회하러 갔을 때, 영준은 이렇게 먼 곳까지 올 줄 몰랐다고 하면서 영상 면회만 해줘도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코로나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연말이라 그런지 영상 면회 예약이 밀려 내년이나 되어야 가능했습니다. 영어 공부를 꼭 하고 나오겠다던 영준의 다짐은 얼마나 이루어졌을지, 아니 계속하고는 있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보안관 청년 도훈이가 데려온 영준이


영준을 처음 만난 건 오 년 전 여름, ‘보안관’ 도훈이 때문입니다. 도훈이는 집 나와 배곯는 친구나 범죄에 이용당할 조짐이 보이는 친구들을 밥차로 데려와서 면담을 성사하는 특기를 가진 스물한 살 청년입니다. 도훈이 스스로 붙인 별명이 ‘보안관’입니다. 그는 이 별명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은 눈치였습니다. 도훈이는 밥차에서는 귀하디 귀한 고등학교 졸업장을 갖고 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고 간신히 졸업장을 손에 넣은 이력이 있는지라 도훈이는 후배들이 학교를 그만두면 어떤 길을 가게 되는지 잘 알고 있어서 이 일을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공부를 좀 더 해서 청소년 관련 활동가가 되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영준과의 첫 만남은 냉면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날도 더운데 냉면 한 그릇 어떠세요?" 하는 도훈이의 전화에 별생각 없이 나갔더니 몸집이 작고 얼굴도 갸름한 새 얼굴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 집이 냉면을 잘해요. 그래서 물 하고 비빔 둘 다 먹어야 해요. 두 개 다 먹어도 되죠? 아, 그리고 왕만두도 맛집입니다. 만두도 한 판 하시죠?
도훈이 네가 사는 거면 뭐 다 좋지! 그래, 다 먹어보자.
에이, 쌤! 왜 이러세요. 오늘 제가 새 친구도 데리고 나왔는데요. 참! 얘도 대안학교에 다녀요.


대화에 끼어들 틈이 없던 새 친구는 ‘대안학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봅니다. ‘당신이 대안학교를 알아?’ 하고 묻는 듯했습니다.


강제 전학 혹은 학교 쇼핑


쌤도 대안학교 교사였다고, 도훈 형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 도훈 ‘형님'께서 별 걸 다 알려주셨네. 그래 학교는 어디?
공립형 대안학교입니다. 이 학년인데 그만 자퇴하려고요.
대안학교 가서도 자퇴해야 할 만한 사정이 있으신 건가?
예, 제가 적응이 잘 안 돼서요. 담임이 잘 봐주기는 하는데, 정글이긴 마찬가지예요.
정글이라, 어떤 의미지?
줄도 빽도 없는 놈은 어디나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거지요. 다들 같이 몰려다니는 패들이 있는데 저처럼 중간에 끼어들어 온 놈은 어디 낄 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혼자서 별짓 다 해 보다가...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교를 그만두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던 도훈이가 말이 안 통하자, 냉면을 빌미로 만든 자리였습니다. 영준이는 '학교를 쇼핑하듯이 다녔다'는 말로 자신의 학교생활을 일축했습니다. ‘쇼핑하듯이 학교에 다니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영준이는 이 마트 저 마트에서 이 물건 저 물건 골라서 사듯 학교를 그렇게 이 학교 저 학교 골라 다녔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학교를 맘대로 고를 수 있었던 거지?
사실 맘대로는 아니고요. 뭐 다 강전이었어요, 강제전학요. 전학 안 가면 자른다고 하니까 안 잘리려면 알아서 다른 데로 옮겨야 하는 거죠. 선생님들이 그 학교로 갈래 말래? 그러면 제가 선택을 할 수 있잖아요. 간다 안 간다. 그런데 문제는 저를 오라는 데가 없다는 거죠.


이제 고등학교 이 학년 한 학기를 다녔을 뿐인데 영준이는 벌써 네 번째 학교를 ‘쇼핑’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교문도 없고, 교실도 없고, 선생님도 없는 ‘사회’라는 학교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유일하게 다녀보고 싶었던 학교를 떠나 


열 살도 되기 전 엄마와 헤어진 영준은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거라고는 ‘개털 하나도 없다’고 말하던 영준은 거의 ‘맨땅에 헤딩’ 하면서 닥치는 대로 살아왔다고, 그래서 어디 가도 ‘살아남는 거 하나는 자신 있다’는 말로 얼마 남지 않은 자존감의 날을 세웠습니다. 


나고 자란 동네에서는 더 이상 받아주겠다는 학교가 없어서 좀 더 인구가 많은 도시로 오게 되었고, 결국 자퇴생이 많아서 빈자리가 생긴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그를 받아주었습니다. 하지만 타지 중학교를 나온 영준은 새 학교 안에서 자기 영역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매일매일 날을 세우고 다니면서 소동과 폭행의 중심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다시 ‘강전’. 이 학년이 되면서 세 번째로 ‘선택된’ 학교가 공립형 대안 고등학교였던 것입니다. 이 학교는 영준이 계속 다니고 싶었던 유일한 학교였는데, 거기서도 발붙이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학교 행사 때 찾아오는 다른 학생들의 부모들을 보면서 그런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합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면 그동안 자기를 챙겨준 ‘담임한테 죄송할 것이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면 담임하고 이야기해 보고 학교를 계속 다니면 되지 않을까? 그 학교는 영준이 같은 친구들이 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 지원해주는 거의 유일한 학교인데…
이미 늦었어요. 학교에서 깽판 치고 나온 게 있어요. 거기도 어차피 정글입니다. 다 부모 있는 애들이고, 저처럼 부모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애들은 거기에 끼기 어려운 그런 게 있어요.


냉면 회동 이후 영준은 담임과 두세 번을 더 연락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듯했지만 결국 그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자퇴를 실행했습니다. 영준이 인생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다며 '보안관' 청년 도훈이가 소식을 전했습니다.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연고지도 없는 곳으로 매 학기 학교를 옮겨 다닌 영준에게 학교는 어떤 의미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한동안 떠나지 않았습니다. 영준이는 한참 동안 밥차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탈가정, 탈학교 소년들의 마지막 선택


저 잠만 좀 재워 주면 안 돼요?


다섯 달이 지난 뒤에 나타난 영준은 추위 탓인지 몸이 더 작아진 것 같았습니다. 입고 있는 옷은 반소매 셔츠에 가을 외투가 전부였고, 맨발에 삼디다스 슬리퍼만 덜렁 끼워져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가을 나라에서 겨울 나라로 떨어진 불시착 난민처럼 가방 하나도 변변히 없는 쓸쓸한 행장이었습니다. 나중에 들려온 이야기로는 자취하는 또래들의 방에 끼어 살면서 돈을 좀 빌리게 되었는데, 그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방을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비상 숙소에서 일주일을 지내기로 했습니다. 실내 음주/흡연 금지 그리고 친구만 데려오지 않으면 된다는 숙소 규정을 지키기로 합의했습니다. 계약 기간을 한 번 더 연장하고 열흘째 되던 날, 영준은 규정을 위반했습니다. 집 나온 중학생 둘을 새벽에 비상 숙소에 데려온 것입니다. '추운 데 갈 곳도 없고 돈도 없어서' 숙소로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영준은 결국 ‘탈 가정 동생들’을 데리고 같이 비상 숙소를 나갔습니다. 자신이 규정을 어긴 것이니 나가는 게 맞다며 그날 아침 바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을 얼어붙은 길거리로 다시 내몰면서 규정을 지키지 않은 영준이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배 한 개비가 다 타기도 전에 규정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저 아이들을 다시 불러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자각이 들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언덕 너머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언제나 감정은 먼저 오고 지혜는 소용이 없어진 다음에야 찾아오는 것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영준이의 새 학교


다시 여름. 그 사이 '밥 먹으러'라기보다는 지나는 길에 그냥 아는 얼굴들 한번 확인하러 오는 사람처럼, 휘익하는 살랑바람처럼 밥차에 들르곤 하던 영준이는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볼 법한 야자나무 프린트 셔츠를 입고 한껏 폼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 이제 서울가요. 서울에 일자리 생겼어요. 아는 선배들이 일자리 만들어 놓았다고 오라고 해서요. 한 달 수습하고 나면 월급도 준대요.
어떤 일인데?
저도 몰라요. 가보면 알겠죠.
어떻게 아는 선배들인데?
전에 같이 알바하면서 알게 된 선배들요.


더 이상 아는 게 없는 건지, 말해줄 수 없다는 건지, 그만 물어보았으면 하는 눈치를 보이던 영준이는 돈 벌어서 오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반소매 옷깃 아래로 검푸른 얼룩이 삐져나온 것이 보였습니다.

잠깐 당황하던 영준이는 어쩔 수 없게 되었다는 듯이 하와이안 남방을 벗어 상체를 드러냈습니다. 그의 몸통 위에는 ‘용호가 상박 하면서 꿈틀대는’ 문신이 앞뒤로 세밀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서울 안 가면 안 될까? 꼭 가야 해?
예. 이 문신 새겨준 형들한테 꼭 가야 해요. 형들이 두 달 동안 그린 건데 문신 값도 안 받은 거예요. 가서 문신 값 갚아야 하거든요. 오늘까지 꼭 오라고 그랬어요.


그렇게 서둘러 서울로 간 영준이 소식은 그 뒤로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일 년이 지나 다시 여름이 되었습니다. 발신인 자리에 'XX정보통신학교’ 사서함이 적혀있는 등기우편이 왔습니다. ‘소년원’에서 온 편지입니다.


**'소년원'이라는 명칭은 2007년 <보호소년등의 처우에 관한 법률>이 생기면서 사라졌습니다. 이제 소년법상 보호처분 8, 9, 10호를 받은 범죄소년과 촉법소년은 특수교육기관에서 교정, 교육을 담당합니다. 법상 '특수교육기관'으로 분류되고, '학교'라 불리지만 이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사회에서 제대로 된 학력 인정을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소년원을 대신하는 학교인지 아닌지는 인터넷 검색만 하면 다 알기 때문에 일단 이곳을 거치면 일반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워진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영준이의 이야기는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 청소년 SOS 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작성자: 라다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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