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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경 Apr 16. 2023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상처는 잠들지 않는다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넷플리스를 뜨겁게 달구면서 학폭에 대한 관심들이 증폭하고 있다.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 소개하고 있는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은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자신들의 아픈 상처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현대판 더 글로리의 주인공이 방송에 나와 고데기에 덴 상처를 보여주고, 세계 각국에서 학폭 피해자들이 나와 묵은 상처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을 보면서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되살아났다. 

 여고 3학년 때였다. 쉬는 시간에 데미안을 읽고 있는 내게로 H가 다가오더니 갑자기 책을 획, 낚아채 갔다.

 “데미안? 웃기고 있네.”

그리고 H는 책을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발로 짓밟았다. 뜻밖에 당한 일에 나는 너무 놀라서 책을 주우려고 했다. 하지만 H는 책 위에 발을 올리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책을 당기고 H는 발을 비키지 않았다. 

 “네가 시 좀 쓴다고 작가라도 된 것 같은 모양이지? 촌년 주제에.”

 나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H를 쳐다보았다. 

 “쳐다보면 어쩔 건데?”

 H는 의기양양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H를 올려다보다가 책을 포기하고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눈물이 쏟아지면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한 친구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경아, 울지 마. 속상해도 참아. 니는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 세상 사람들은 얼굴이 다른 것처럼 성격도 모두 다르잖아. 그러니까 네가 참고 이해하도록 해.”

 나는 그 친구 덕분에 흐르던 눈물을 닦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하지만 H는 그 뒤로도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지나가면서 일부러 팔꿈치로 쳐서 떨어뜨리기도 하고, 청소 당번 때는 자신의 몫까지 다 하라면서 교실을 나가버리곤 했다.  

 “니는 촌년이니까 힘이 세서 청소도 잘하잖아.”

 나는 그런 H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다가 혼자서 책상을 정리하고 바닥을 닦았다. H가 밉기보다는 부당하게 당하면서도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학교로 향하는 발이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날마다 했다. 불치의 병이라도 걸려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쓴 나의 시는 온통 죽음과 절망의 그림자로 드리워졌다. H의 얼굴만 생각하면 아득한 땅속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공포가 엄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열이 나고 몹시 아팠다. 어릴 때 다친 앞니에 통증이 생기면서 얼굴이 부어올랐다. 순간 H가 떠올랐다. 학교에 가면 H가 분명 뭐라고 할 것 같았다. 나는 학교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밥도 먹지 않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런데 첫째 시간 수업이 끝날 무렵에 짝꿍이 나를 데리러 왔다. 성적도 출석도 다른 반의 모범이 되기를 원했던 담임선생님께선 내가 결석해서는 안 된다며 짝꿍을 보낸 것이었다. 나는 짝꿍을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반겨 주었지만 H는 폭언을 쏟아부었다.

 “니까짓 게 뭔데 출석부에 줄을 긋게 만들어? 아프리카 깜둥이같이 주둥아리가 한 발이나 나   온 게. 니 입술을 썰어놓으면 한 접시나 되겠다.” 

 그러면서 책상 위로 올려놓는 책을 팔꿈치로 쳐서 떨어뜨렸다. 나는 모멸감에 죽고 싶었다. 

 지금은 햇볕을 거의 보지 않아서 얼굴이 하얀 편에 속하지만 그 당시 나는 바닷바람과 햇볕에 타서 가무잡잡했다. 거기에다 입술마저 두툼해서 내가 봐도 흉측해 보였다. 나는 두툼한 내 입술이 정말 싫었다. 잘라 내어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입술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 H는 그런 나의 열등감에 부채질을 했고, 나는 치욕스러움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날 나는 온종일 책상 위에 엎드려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가지 않았다. 짝꿍은 더 이상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나는 결석을 한다는 사실이 무서웠지만 정말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6년 개근상을, 중학교 때도 3년 개근상을 그리고 고 1, 고2 때 각각 1년 개근상을 받았던 내가 학교 가는 것이 싫어진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3년 개근상을 받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안타깝고 후회되는 일이지만 그 당시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정말 두려웠다. H의 얼굴만 생각하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H와 마주한다는 사실은 공포 그 자체였다. 평소에도 외모에 대한 열등감에 젖어 있었던 나는 H의 폭언으로 인해 더욱 소심해지고 모든 것에 자신감이 없어졌다. 학교 공부에 흥미마저 잃어버리면서 암담한 미래 속으로 나를 가둬버렸다. 연탄불마저 꺼져버린 을씨년스러운 좁은 자취방에서 나는 밥도 먹지 않고 온종일 누워서 죽음을 꿈꾸었다.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고통이 덜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그렇게 3일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다가 학교에 갔을 때 나는 말을 잃어버린 아이가 되어있었다.

 H는 여전히 팔꿈치로 나와 내 물건들을 치고 다녔고, 나는 더욱더 깊은 우울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것은 내 의식을 지배하면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했고 학교 공부에 흥미와 의욕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여고 시절 나는 작가가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유일한 취미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었다. 월말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책을 가방에 넘치도록 빌려서 밤을 꼬박 새우며 읽었다. 나는 하이네 같이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시를 쓰고 싶었고, 알퐁스도테처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소설을 빚어내고 싶었다. 고2 때 국어 선생님께서는 훗날 멋진 작가가 될 것이라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하지만 지금 나의 시와 소설은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다. 아무리 밝은 글을 쓰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우울이 묻어 나오고 만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상처의 흔적들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H가 떠오른다. 여고 시절을 생각하면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쓰라림과 마주하게 만들어버리는 H를 나는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늘 궁금했고, 한 번은 꼭 만나서 왜 그때 내게 그랬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가해자들이 학폭을 하는 이유는 특별한 게 없다. 가난하고 힘이 없다는 것만으로, 뒷배경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그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고,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면 자살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삶을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잘 살아간다. 자신들이 어떤 짓을 한 지도 잊어버린 채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들을 보는 피해자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에 피를 흘리게 된다. 상처는 결코 잠들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에 나는 우연히 카카오톡에서 H를 발견하게 되었다. 45년이 지났지만 나는 단번에 H를 알아볼 수 있었다. 여러 장을 올려놓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H가 지난날 나에게 가했던 행동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만 상처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씁쓸하고 슬펐다. 그렇다고 전화를 해서 “그때 왜 그랬어?" 하고 물어볼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의 지난날이 잊히고 보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들추어낼수록 내 상처만 덧나고 쓰라릴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 왈가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이 많고 외향적인 성격을 지녔던 나는 암울한 사춘기를 보냈고, 조직 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대중공포증이 있고 사람들 만나는 것이 두렵고, 작은 상처만 받아도 우울과 고통 속에 잠겨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도 모두 그때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주었던 문학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사회의 부적응자가 되어 삶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학교폭력은 나와 동등한 친구들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더 큰 상처를 준다.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어느 순간 폭력자로 변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고통이고 공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살아가는 내내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올바른 정신 건강을 가지지 못한 채 우울한 일생을 보내게 만든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들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단순한 장난이었다고 한다. 아예 그런 일을 한 것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가해자들을 향한 또 다른 폭력이 된다.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맞은 개구리가 목숨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여쁘고 향기로운 꿈을 가꾸며 자라야 할 꿈나무들은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자신보다 조금 부족한 친구들이 있으면 그 사랑을 나눠주고 함께 손잡고 걸어가야 한다. 그런 꿈나무들이 걸어가는 곳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래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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