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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Apr 11. 2023

네덜란드의 직장문화 - 승진 편

유럽직장문화에 익숙해지는 과정

태어나서 처음으로 승진을 했다. 심지어 그 승진이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다. 생전 처음 사무직이란 타이틀을 가진 지 고작 반년만의 성과였다. 원래의 직급은 사원이었는데 3월 1일 자로 "매니저"가 붙은 직급을 달고 일하게 되었다. 이렇게 몇 문장으로 쓰고 나니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나름대로의 노력과 고생의 결과여서 꽤나 뿌듯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논문을 쓰며 인턴십 1년까지를 병행한 현재의 회사에서는 내가 졸업을 하자마자 일자리를 제안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아시안 마켓, 특히 한국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터라 한국인인 데다가 비즈니스 경영학 졸업, 그리고 인턴십을 하면서 터득한 실전경험이라는 배경이 회사에겐 썩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갓 졸업한 유학생치고는 꽤나 괜찮은 급여와 함께 연차, 휴가, 퇴직연금 등등 각종 베네핏을 달고 입사오퍼에 콜! 을 외친 게 작년 9월이었다.


어찌어찌 입사를 하긴 했는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인사담당자와 나의 상사가 될 사람과 함께 고용계약서를 작성할 때까지도 내가 하게 될 업무는 상당히 애매모호했고 그때까지도 나는 나의 업무가 상당히 범위가 넓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전경험이라곤 인턴십밖에 없는 내겐 허무맹랑하게까지도 느껴지기까지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회사는 업무 할 인재가 필요해서 그 업무에 맞는 사람을 고용한 게 아니라 사람을 고용한 뒤 그 사람이 할만한 업무를 찾아내자는 방식이었으니 회사 입장에서도 막상 나를 고용하고 나서는 꽤 곤란해 보였다. 나를 어떻게든 붙잡고(?)싶어서 그냥 에라 모르겠다, 선 채용 후 고안.. 의 접근법이었으니 상당히 혁신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도 희망에 차 있던 나는 회사의 방식에 따라 덩달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내게 주어진 노트북을 열고 자리에 앉긴 앉았는데 뭘 해야 할지 도통 몰라 당황했다. 사수도 없이 그냥 나는 낙동강 오리알처럼 부서에 앉아 누군가가 내게 무슨 일을 주어주거나 와서 직접 알려주기만을 기다리는 날도 허다했다.


그렇게 딱 일주일 후,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옆자리의 직원을 먼저 공략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내게도 알려줄 수 있겠느냐고 묻자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채용될 당시 인사부에서 나는 영업직으로 발령될 것이라고 발표했기에 문서작업등을 하는 사원들 입장으로는 아예 다른 부서이겠거니 싶어 본인들의 후임이 아니라고 여겼고, 그렇기에 당연히 내게 누군가가 나서서 무언가를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았던 거였다.


게다가 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유럽직장문화 내에서는 한국처럼 사수가 딱 붙어 1:1로 가르쳐주기보다는 본인이 일거리를 찾아내거나 본인이 먼저 나서서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게 더 일반적이라고 한다. 또 하나 배웠다.


그렇게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사원 저 사원 옆에 앉아 귀찮게 굴어가며 작은 일거리라도 배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8시간 내리 앉아있는 게 더 지옥 같이 여겨지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차라리 자잘한 업무라도 하는 게 훨씬 났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중에라도 업무가 주어진다면 그 업무가 뭐든지 간에 서류 작업 등 기본적인 비즈니스의 흐름을 이해하고 배우는 게 유용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작하게 된 문서 및 서류 전담 부서에서의 시작으로 나는 이곳저곳 부서를 옮겨가며 자잘한 업무들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5개월, 현재 6개월 차에 접어들며 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 이러려고 입사한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업무가 없이 한가한 건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업무만 하는 것이 상당히 쉬웠기에 나는 종종 지루함을 느끼곤 했다. 무엇보다 상당히 반복적인 작업 - 다양한 서류들을 작성하고, 검토하여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하여 다시 송부하고의 반복 - 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타고나기를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라 하고, 수다 떨듯이 얘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상당한 사회적 동물이라는 거다. 그런 내가 주 5일 8시간씩 장장 40시간을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같은 일을 내내 반복한다는 게 상당히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래도 이렇게 배워나가는 거야, 마음잡고 계속해보려 했는데 이게 반년씩이나 이어지려고 하는 데다가 초기에 회사와 동의했던 바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아침 출근길에 오르는 게 하루하루 더 힘들어져갔다.


그러다 친한 지인이 세상을 갑자기 떠나는 일이 있었다. 나이도 젊고 건강했던 지인이었기에 더 충격이 컸지만 나름대로 잘 이겨냈다고 생각하는 나날들이 이어졌었다. 그런데 매일 하던 출근길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더니 점점 권태를 넘어서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취직한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지, 참고 참아왔던 답답함이 나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이 내게 "네게 주어진 인생을 이렇게 권태롭게 계속 살아갈 거냐"라고 계속 질문하듯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수요일 아침 인사과에 찾아갔다. 인사과 부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짧은 미팅을 요청하여 이러이러한데 내가 다른 부서나 다른 업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겠느냐 물으러 간 것이었는데 그 길로 어떻게 하다 보니 덜컥 승진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단순 사무보조직에서 영업팀 주임으로 고속 승진을 하게 되었다. 6개월 만의 일이었다. 얼떨떨해져 있는 내게 나의 직속 상사 - 나는 그를 멘토로 여긴다 - 가 엄청난 믿음과 추천을 바탕으로 서포트를 해주겠다며 나를 데리고 출장을 떠났다. 두바이로.


5박 6일의 두바이 일정을 마치고 네덜란드에 돌아와 두바이에서 보고 배운 점을 열심히 기록했다. 이제 곧 회사에서 컨설팅 에이전시를 통해 제공하는 6개월짜리 세일즈 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요구하거나 표현치 않고 가만히 앉아 누군가가 알아주기만을 기다렸다면 주어지지 않았을 기회이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영업직의 길에 오르는 것이 막막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야망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준 회사와 멘토의 응원과 지원으로 든든하다. 밑져야 본전이다. 해보고 정 아니어도 나는 적어도 경험을 얻는다. 그것도 값진 경험! 내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6개월 차 신입의 입장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 냈을 텐데,라는 마음에 이상한 뿌듯함마저 느껴진다. 나, 잘할 수 있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맨땅에 헤딩이라도 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적어도 세상을 먼저 떠난 지인이 남기고 간것처럼 느껴지는 메세지에 대한 답변 정도는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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