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ro Sep 27. 2023

유럽식당에서 인종차별(?) 피하기

사실은 문화차이가 아닐까? 유럽 식당 에티켓

글을 더 쓰기에 앞서 우선 '유럽'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데에 아쉬움을 표현하고 싶다. '아시아'라고 칭할 때 수십 개의 동양 국가가 있듯이 유럽도 그 나라 개수가 44개이고 그중에서도 유럽연합에 들어가는지 들어가지 않는지, 동서남북중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따라 그 문화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에서 언급하는 유럽이라 함은 한국인들이 자주 여행지로 선택하는 국가들인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까지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이제 유럽 생활도 벌써 6년 차이다. 처음엔 유럽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은 몰랐고 졸업장만 챙겨서 얼른 떠나고자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유럽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호주에 살았을 당시 유럽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유럽여행을 오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내 머릿속엔 '유럽여행' 하면 곧장 '소매치기'가 생각났고, 그다음 떠오르는 건 '인종차별'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여행을 가게 된다면 전대를 차고 현금을 숨길 수 있는 속옷을 입으라는 수많은 인터넷의 정보들이 떠올랐다. 운이 좋게도 나는 현지 출신인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다 보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게 덜해서 그런지 그러한 불상사를 겪진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면서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는데, 그중 한 분이 내가 유럽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본인도 최근에 유럽 여행을 처음으로 다녀왔다며 반가워하셨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곧 유럽에서 겪으신 다양한 사건 사고, 특히 인종차별에 대해 험담 아닌 험담을 하는 식으로 대화의 방향이 흘러가게 되었다. 그분의 말인즉슨 동양인이라서 어딜 가나 무시를 받고 특히 레스토랑에서 받은 무시가 정말 유튜브 같은 미디어에서 본 것처럼 어마무시하던데 어떻게 견디고 사냐는 것이 요점이었다. 하지만 내가 듣기엔 말 그대로 엥? 싶은 부분이 대부분이었기에 하나하나 해명을 해 드리다 보니 이게 한국에서 하던 버릇을 그대로 유럽으로 가져오니 문화차이로 비롯된 오해들을 차별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모쪼록 유럽에서 산 경험 5년, 그중에서도 특히 레스토랑 및 서비스직에서 일한 경험 3년을 살려 어떻게 하면 유럽에서 인종차별 아닌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지 몇 가지 팁을 주고자 한다. 식당에 식사하러 갔을 시 생길 수 있는 일의 순서대로 작성해 보도록 하겠다.


1. 식당에 들어가서는 절대 먼저 자리에 앉지 말 것

"하염없이 앉아있었지만 그 누구도 메뉴판조차 가져다주지 않더라"는 많이들 인종차별 경험담이라며 올라오는 내용 중 하나이다. 하지만 먼저 알아둘 어야 할 것은 유럽의 식당들은 한국과는 시스템이 다르다는 것이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편한 곳을 찾아서 앉으라는 이모의 외침이나 좋은 창가자리 혹은 테라스 자리를 선점하고자 부리나케 앉아서는 안된다.

보통은 식당 입구로 들어간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여기에서 먼저 잠시 기다려달라는 팻말이나 사인으로 안내가 되어있기도 하다. 그럼 곧 담당 지배인이나 서버가 와서 자리 안내를 해 준다.

안내를 받기도 전에 테이블에 앉아있으면 바쁠 땐 누가 와서 앉아있는지 알아채지도 못할뿐더러 내가 안내하지도 않은 테이블에 뜬금없이 누가 앉아있는 게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인기 있는 레스토랑 경우 예약을 한 인원수대로 테이블을 짜 두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 뜬금없이 앉아있는 테이블은 환영받기 힘들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말도 안 되게 후진 자리를 안내를 받았을 경우, 다른 자리를 안내해 줄 수 있겠냐고 어필해 볼 수 있다. 유명한 레스토랑이어서 예약까지 했는데 화장실 옆이라던가 아주 후미진 곳을 예약해 준다면 다른 자리 안내를 부탁해도 무방하다.)


2. 메뉴를 정했다면 눈빛을 발사하거나 손을 조금만 들것.

한국처럼 '딩동-' 울리는 알림 벨을 누르면 부리나케 달려오는 시스템이 아님을 염두해야 한다. 유럽문화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서버들도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을 받기에 고객인 나와 같은 선상에서 예의를 갖춰야 하는데. 손을 번쩍 쳐들거나, excuse me, 심지어 hey 등으로 부르는 순간 미운털 박히는 건 금방이다. 실제로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외국인 손님이 이리 오라고 지시하자 자신이 개도 아닌데 이리 와라 저리 가라 하는지 이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동료의 험담을 들은 적이 많다. 내가 겪은 중에 가장 기분 나빴던 것은 손끝으로 '딱, 딱' 소리를 내어 불렀던 손님이 기억이 난다. 그 동료의 말마따나 내가 애완견이 된 기분이었다.

그럼 어떻게 부르냐고 묻는다면, 그냥 눈치껏 기다려야 한다. 가장 첫 번째로는 메뉴판을 덮어둬야 한다. 이것도 있네 저것도 있네 우와 하며 계속 살펴본다거나 수다 떠느라 깜빡하고 그냥 펼쳐둔 채로 둔다면 아직 결정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을 확률은 점점 높아져만 간다. 이건 서버들과 식당에서 식사하는 손님들 간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래도 오지 않는다면 눈이 마주친 순간 손을 가슴께 정도까지 올려서 정중하게 부르기도 할 수 있다.


3. 식사가 끝났다면? 이도 표현이 있다는 것.

내가 식사를 다 마쳤으니 빈접시를 가져가도 된다는 식의 사인도 있다. 바로 포크와 나이프를 겹쳐서 접시 위에 두거나 그에 더 확실히 하고 싶다면 쓰고 있던 냅킨을 접시 위에 포개거나 덮어두는 것이다. 지나가면서 흘끗 누가 봐도 식사를 다 했구나, 싶으면 어련히 빈 접시를 가져간다. 혹시나 디저트를 먹고 싶다면 빈 접시를 가져갈 때 디저트 메뉴를 볼 수 있냐고 물어보면 된다.


4. 디저트까지 다 먹었다면 이제 어떻게 돈을 내야 하지?

다 먹었다고 벌떡 일어나서 지불하고자 카운터에 가기보단 서버들이 마지막 접시를 치우러 올 때쯤 영수증을 받아볼 수 있냐고 물어보면 된다. 대부분 서버들이 영수증을 들고 오면서 카드로 결제할 것인지 현금으로 결제할 것인지 물어보니 답하고 결제하면 된다. 그리고 이때 팁을 주고 싶다면 팁을 줘도 된다. 유럽에서는 팁을 주는 문화는 아니지만 특히 독일에서 점점 더 팁 문화가 생기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대부분 카드 결제를 하고 서비스가 만족스러웠다면 현금으로 5유로 정도 팁을 준다.




유럽에서 살다 보니 내게는 자연스럽게 몸에 밴 이 습관들이 한국에선 종종 나를 오히려 난처하게 한 적도 있다. 식당의 급(?)에 상관없이 예의라고 여기기도 한 데다가 습관이 되어버려 김밥천국 같은 분식집에 가서도 앉지 않고 멀뚱히 안내받기를 기다리고 서있으니 사장님은 곧 "아가씨! 아무 데나 앉으면 돼요!"라고 다그치시기도 하였다. 그러면 나는 부랴부랴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하고, 밥 다 먹었으면 테이블 회전을 위해서 빨리 떠나라는 식의 눈치를 피해 식사를 마치자마자 카운터로 가서 카드를 불쑥 내밀기도 하였다. 반대로 유럽에서도 조금 더 캐주얼한 분위기의 식당, 식당이라기보다는 푸드코너 같은 곳은 아예 다른 느낌이긴 하다. 그런 곳들은 아무리 서있어도 그 누구도 안내를 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처럼 키오스크에서 주문해서 받는 곳들도 있다. 그러니까 융통성 있게 행동하면 된다. 역시 살면서 분위기나 상황을 빨리 파악하는 능력은 어디에서나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분위기가 다른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유럽의 식당 에티켓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 곳에서 저기요! 라며 우렁차게 종업원을 부르지 않듯이 유럽 식당에서도 에티켓을 갖춰서 식사를 하는 예의를 보인다면 투명인간취급을 당하는 것은 아마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아, 물론 내가 예의를 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차반으로 대한다면 피차일반으로 예의 없게 굴어도 된다. 유럽 놈들은 가끔 눈에는 눈의 방식으로 다뤄주면 좀 정신 차리더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이 글의 요점은 유럽에서는 이렇게만 하면 인종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라거나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어딜 가나 미개한 사람들이 있고 나는 아무리 좋은 마음씨로 대하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오히려 더 저급하게 행동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이러한 상황들에서 종종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나의 수준도 함께 결정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냥 꾹 참거나, 아니면 더 높은 직급의 매니저 혹은 사장을 불러 더 정식적으로 컴플레인을 걸기도 하고, 아니면 서버에게 오히려 더 정중하게 대하기도 한다. 괜히 미친 X처럼 달려들었다가는 외부인/이방인 신분인 나만 불리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모쪼록 없는 시간과 모은 돈을 들여 가는 유럽 여행에 기분 상한 일을 최소화할 수 있는 팁 아닌 팁이 되었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