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에너지가 가장 넘치는 순간이고, 오늘 하루 어떤 삶이 펼쳐질지 기대되는 마음 때문인지 마음도 가볍고 모든 것이 좋은 순간.
즐거운 마음으로 차창을 열어놓고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느끼고 싶은 그런 출근길을 방해하는 적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담배연기'다.
담배냄새가 느껴지는 순간 바로 창문을 닫아보지만 느끼는 순간 이미 차 안으로 들어와 버린 담배냄새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남에게는 불쾌함을 주면서 자기 혼자 좋다고 담배 피우는 손을 창문에 걸쳐놓고선 까딱 까딱 하면서 담배를 피워대는 운전자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구시렁 중얼중얼'모드에 돌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냄새들 중 내가 유독 싫어하고 참아내지 못하는 냄새가 바로 '담배'냄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어쩌면 '동네에서 유일한 구멍가게'를 했던 그 시절 탓이 큰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절.
겨울밤이면 동네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가게'인 우리 집에 몰려들었다.
물건만 사서 금방 돌아가 주시면 나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을 것이나, 지루한 긴 겨울밤을 견디기에 좀이 쑤셔서 집 밖으로 마실 나온 어른들은 쉽사리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우리 집 안방으로 한 분 두 분 모여들었다.
방이라고는 달랑 세 칸.
그중 한 칸은 가게. 한 칸은 안방. 한 칸은 코딱지만 한 어두운 방.
겨울엔 안방에만 불을 넣어서 안방이 우리 세 식구의 주거처가 되고 있었는데, 어른들로 꽉 차 버리면 어린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그래도 아줌마들이 모여서 노시면 재미가 쏠쏠했었다.
민화투 치시는 걸 어깨너머로 구경하면서 배우기도 하고, 전도 부쳐서 드시기에 전도 얻어먹고, 가끔씩 구경한 삯도 주시고 듣지도 못하던 옛날이야기들도 얻어듣게 되곤 해서 얼른 자라는 엄마의 성화에도 시끄러워서 잠이 안 온다는 핑계를 대가며 엄마 옆에 딱 달라붙어서는 어른들의 '놀이'를 구경하곤 했다.
하지만 아저씨들이 모여드는 날이면 곤란했다.
아저씨들의 놀이판에는 늘 '술'과 '담배'가 뒤따랐다.
화투만 치기에도 손이 바쁠 것 같은데 술도 한 잔씩 마셔가시면서 게다가 담배까지 피워대시니, 어린 내 눈으로 보기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두 명이 아니고 방에 모인 예닐 곱 명의 어른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처음엔 냄새만 나고 기침이 살짝 나는 정도였다면 점점 방 안은 안갯속에 갇히게 되면서 숨쉬기가 힘들 지경까지 이르곤 했다.
함께 화투를 치면서도 어린 딸의 기관지(?)가 걱정스러우셨던 아빠는, 차마 손님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말씀은 못하시고 추운 날씨에도불구하고 환기시켜야 한다면서 자꾸 방문을 열어놓으시는 통에 아저씨들의 핀잔을 들으시기가 일쑤였다.
짙은 담배연기 속에서 잠이 올 리 만무했다.
엄마는 방 안을 살피다가 아빠와 손님들에게 레이저가 쏟아져 나오는 듯한눈빛을 보내셨고, 나의 징징거림이 극에 달한다 싶어지면 그날 밤의 '놀이판'은 아쉬움을 남긴 채 끝이 나곤 했다.
손님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방청소와 환기 끝에 담배냄새 잡아야 한다며 엄마가 항상 켜 두곤 했던 하얀 양초.
그것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어린 나는 꿈나라에 들어가곤 했다.
그래서일까.
유독 어려서부터 감기에 자주 걸렸다.
밤새 기침하느라 잠을 못 이루고 있노라면 아빠는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허허~~ 허허~~ 어쩌꺼나~~~" 하는 말씀만 연달아 하실 뿐이었다.
언젠가 성인이 된 후에, 감기에 걸려 약 먹는 나를 보실 때면 아빠는 그때 그 시절. 그 담배연기 굴속에 너를 놓아두었던 게 가장 잘못한 일이었던 것 같다며 미안해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3, 4학년쯤 되었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무슨 날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친척들이 우리 집에 많이 왔다.
반팔에 반바지 차림은 아니었고 점퍼까지 입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걸로 보아 가을이나 겨울로 넘어가는 그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른들은 어디를 가셨는지 다들 안 계셨다. 친척 오빠와 동생과 나. 이렇게 셋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친척오빠는 갑자기 뒤꼍으로 우리를 불렀다.
뒤꼍에는 재래식 화장실, 창고, 그리고 예전에 소여물을 만들곤 했던 작은 터가 있었다.
그곳으로 우리를 부른 오빠는 종이를 꺼냈고, 무슨 나뭇잎 가루 같은 것을 꺼내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저걸로 뭘 하려는 거지?' 하고 말똥거리는 눈망울로 오빠를 쳐다봤던 것 같다.
오빠는 작게 자른 종이에 나뭇잎 가루 같은 것을 조심스레 싸서 돌돌돌 말았다. 그리고 친척 동생에게도 해보라고 시켰다. 동생도 따라서 돌돌돌 말았다.
그렇게 '손으로 직접 제작한 담배'가 탄생하게 되었다.
오빠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라이터를 꺼내더니 불을 붙여서 입으로 가져갔다.
어린 나이에도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왠지 불까지 입 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고, 종이에 말린 그 나뭇잎 가루 비슷한 것들을 그대로 먹게 될 것만 같아서 염려가 되었던 것 같다.
'저게.... 괜찮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오빠는 수제 담배(?)를한 모금 "쑥~!" 빨아들였고, 그와 동시에 "켁켁켁켁..!!!" 기침을 연신 토해내었다.
그 광경을 보던 나와 친척 동생은 차마 대놓고 웃진 못하고 킥킥거리느라 배가 아팠고 그렇게 웃으며 친척동생은 손에 있던 '그것'을 저만큼 던져버렸다.
하얗고 통통했던 친척오빠의 어린 시절의 모습.
그리고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컥컥거리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를 때마다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오빠는 아마 기억도 못할 이 추억을 꺼내놓으면 놀라서 기절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절대 그런 일은 없다'라고 잡아뗄지도.
담배는 남자들의 '로망'인 것일까?
아마 오빠가 그토록 무모한 시도를 한 것도, 평소에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해서 호기심으로 따라 해 본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처럼 '담배연기로 이루어진 굴속'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결코 담배를 가까이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