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이란 것을 만들어 보고 싶고, 언젠가는 음원을 발매하고 싶은 마음들. 이 순간에도 여러 열망과 함께 망설여지는 마음들까지. 어디에도 터놓기 힘든 마음을 되뇌이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음악을 만들기 수월한 시대를 살고 있어요.
또한 그것을 넘어서 AI를 이용해서 5분 만에 곡을 만들어 빠르게 양으로 승부하며 수익화 시킬 수도 있고, 스포티파이에는 하루에 12만 곡이 새롭게 발표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죠. 산업혁명 때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화의 물결에 일자리를 잃었던 것처럼 또 다른 혁명이 시작되었고요. 정말이지 미디를 제대로 다뤄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AI를 잘 활용하지 않으면 도태될 거라면서 상당수는 그 자리를 잃어버릴 거라고 말합니다.
전 비전공자 아마추어로 음악을 하고 있는 작곡가입니다. 프로 전문가는 아니기에 수십 년 경험을 쌓아온 노하우나 전문적인 정보를 전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저도 그렇고, 음악을 꿈꾸고 계시는 분들도 그렇고, 결국엔 자신이 품고 있는 음악이라는 씨앗을 소중히 여기고 물을 주고 가꿔야 음악을 꾸준히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서 직업으로서의 음악가가 아닌 입장에서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처음 시작하는 누군가에게는 시작할 용기를, 대안과 방법을 단 한 분이라도 여기에서 찾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기획했었습니다.
비전공 아마추어가 피아노 음악으로 음원을 발매하는 과정과 방법을 안내하는 시리즈로 공들여서 목차를 짰고, 3편의 글을 발행해 둔 상태인데요. 하지만 제 경험은 적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제가 해도 되는 말들일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져서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흡하더라도 제가 실수하고 실패하고 헤매면서 직접 경험한 것들을 나누고, 아마추어로서의 제 생각과 느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었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이웃분들에게 이 정보가 필요할까? 과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때인가? 이런 생각에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기획했던 목차의 글들은 발행하지 않기로 했고 방향을 수정하기로 했어요. 제가 실패하며 배운 경험들, 제 스스로도 정리가 필요하고 기억하고 싶은 Tip, 피아노 가상악기 등등. 아마추어로서의 제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선에서 간단하게 나누려고 합니다.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용기 내서 한 발짝 더디는 것. 그 마음을 누군가는 가져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제게 필요한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음악 하는 의미'를 찾아볼까 합니다.
시는 내 존재의 확인이다. 죽지 않고 깨어있는 나를 만나는 것이 시이다.
자기표현을 통해서 비로소 내가 완전해지는 것. 얼마 전 도종환 시인의 등단 40주년 신작 출간 기념 낭독회에서 한 말입니다. 앉아서 그 말씀을 듣고 있는데 일말의 의심 없이 완전히 공감이 되더군요. 시인에겐 시가, 화가에겐 그림이, 작가에겐 글이, 영화인에겐 영화가, 음악인에겐 음악이 그런 의미와 표현수단이 되는 거겠죠.
음악을 하고자 하면 그냥 즐겁게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죠. 취미로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고 작곡도 해 보고 미디로 곡을 만들어도 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들려도 주고, 유튜브나 틱톡에도 자유롭게 올려도 보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만족감과 즐거움을 꾸준히 유지하면서요.
각자의 상황과 생각은 모두 다릅니다. 방법엔 정해진 답이 없는 것이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모두 다 자신에게 맞는 방향과 방법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러고 싶고요. ^^
여러분은 왜 음악이 하고 싶으신가요?
특별한 동기가 있으셨나요?
저는 비전공자로 오랜 시간 동안 감상자로 지내오다가 뒤늦게 음악을 하기 시작했어요. 작곡이 아닌 경제학을 전공한 금융인의 페르소나를 조금 가지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음악이 내 존재의 확인이라는 것엔 늘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미루고 미뤄왔던 열망도 컸었고요.
첫 음원은 일말의 의심 없이 시작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음악을 할 수 없는 입장이었으니 당시엔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서 공표하는 것이 유일하게 음악을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모르니까 용기 낼 수 있다고, 스스로 매번 흑역사를 남긴다 하더라도 그 길을 걸어보자고요.
" 대개 예술을 선택한 사람은 약하다. 예술가가 예술의 길을 선택하도록 이끈 바로 그 민감성이 예술가를 타인의 판단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은 비판받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계속 예술을 나눈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예술가가 그들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표현을 통해 비로소 완전해진다.
창조자가 남들의 판단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예술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만큼 강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역할은 예술가가 아닐 수도 있다. 그의 기질은 다른 역할에 어울릴 수 있다. 예술가의 길은 모두를 위한 길은 아니다. 그 길에는 역경이 있다.
재주나 기술이 있다고 예술가의 소명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창조할 수 있다는 축복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특권이다. 예술은 선택이다. 하라고 명령받는 것이 아니다. 하지 않는 쪽이 좋을 것 같다면 하지 말자. "
- 릭 루빈, 『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중 ‘자기 의심’
릭 루빈이 말하는 것처럼 ' 나의 기질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다른 역할에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기 의심에 수도 없이 빠졌어요. 다음 행보는 없는 것처럼요. 그래서 세 번째 싱글 <푸른 고요>가 나오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아직도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했어요. 고요해서 고요를 쓴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소요(騷擾) 속에서 소요(所要)가 있기에 고요를 그렸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또한 선택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어 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확실한 사실 하나가 있다면 ' 이 곡을 내 마음에 들게 완성시키고 싶다'는 확고한 생각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발매 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순수하게 감상자로서 공감하시고 들어주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참 행복했어요.
그 두 마음으로부터 행복감을 느끼는 걸 보니 저 역시도 음악을 만들고 나누면서 내 존재를 확인하고 있나 생각이 들었어요. 단지 그것이 좋을 뿐입니다. 아직 정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이죠. 이것을 안하면 분명히 후회할거란 확신.
음원을 낸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도 고려해야 하고 현생을 살아가는 가운데서도 그저 음악을 사랑하며 존재하는 것,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머무르는 것. 그냥 당연히 하는 것. 내 삶의 형태이자 그런 온도의 행위 같아요.
어떤 상황이라 하더라도 못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하는 나의 행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기.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데 재미를 느끼고 즐기기. 급하게 맘먹지 않고 욕심내지 않기. 자신만의 손을 거쳐서 시작되고 끝내 보기. 화려하지 않아도 되고,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음악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시대의 변화가 숙제처럼 안겨 준 AI와도 동행하며 가지고 놀아보면서요.
여러 여건 속에서도 오래오래 꾸준히 놓지 않고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기도합니다.
글을 올리기 때문인지 오늘따라 더 묵직하게 물어보게 되는 날이네요.
여러분은 왜 음악을 하고 싶으신가요?
꾸준히 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어떤 어려움과 고민들을 안고 계신가요?
https://youtu.be/-evqqwL2GlM?si=v6bOY_UsjCj_iZH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