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https://youtu.be/t9ndxDhgZBM?si=qmjBh034LzuOg37h
브람스 교향곡 3번의 3악장.
아마도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서 제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악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악장이 시작되고 바로 주제 선율이 흐르면 그 즉시 잊힌 기억을 회상하는 순간으로 빠르게 다가갑니다. 지나간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요. 좋은 음악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자가 중심이 아니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만의 경험으로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순간이 되는 것이죠.
특히 이 곡에서 좋았던 부분은 파란 부분, 쉼표의 공간입니다.
곡의 첫 시작 부분 악보입니다. 빨간 부분이 메인선율 첼로입니다. 2,4번째 마디 마지막 8분 쉼표 파란 부분에서 잠시 멈추며 빈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채워짐이 아닌 비어있는 그 공간에서 그리움과 애수가 짙게 시작됩니다. 그렇게 숨을 내쉬면, 그 틈으로 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뭉텅 우리 앞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애절함이 한 움큼 더 끌어올려집니다.
첼로가, 또 바이올린이, 목관과 호른으로 이어지며 주제선율은 흐릅니다. 하나하나의 음이 마치 그의 내면을 드러내듯 쌓여가지요. 선율을 제외한 다른 악기의 성부들은 낮은음에서 높은음으로 위로 쓸어 올리면서 주고받습니다. 그런 조화로움 속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의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브람스는 그렇게 주제선율을 반복하고 변주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삶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그 안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 그리고 슬픔과 기쁨, 그리움들을 만나는 시간들이 변주되는 것처럼요.
느릿한 선율은 우아한 서사시처럼 읊어지고 우린 잊힌 기억을 회상하듯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음악이 흐르면, 즉시 자신의 이야기가 떠올려지고 그것은 우리들의 묵직한 감정을 자극합니다. 그 이야기가 무엇이 되었든,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잠겨보며 통과하는 것이야 말로 이 가을 브람스가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또 궁금해졌습니다. 브람스가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썼는지에 대해서요. 이런 애절한 감정이었다면, 클라라를 향한 연정이었을까?라는 생각을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도서들을 참고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곡에 대해서 제일 많은 자료를 얻었던 유일한 책은 풍월당에서 발간한 이성일 님의 『브람스 평전』이었습니다. 가히 브람스에 대해서는 독보적인 문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자료이지만, 수많은 문헌들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까지 녹여내었습니다. 정말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않으면 나오지 못하는 글솜씨로 아주 쉽게 잘 풀어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어느 특정한 분야의 열정과 사랑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요? 참으로 축복된 삶이라고 느껴질 것 같습니다.
곡제목 : Symphony No. 3 in F Major, Op. 90 - III. Poco allegretto
작곡가 :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
브람스가 헤르미네 슈피스를 처음 알게 된 때 : 1883년 1월
작곡 연도 : 1883년 5월~10월 독일 비스바덴에서.
초연 : 1883년 12월 2일 한스리히터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무직페어라인홀.
이 곡은 콘트랄토 가수인 헤르미네 슈피스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쓰인 곡입니다. 소유하지 않는 사랑으로 클라라와 브람스는 평생 동안 인생의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해 가고 신의를 지켰습니다. 감정의 순화를 통해 더 맑아지는 어떤 것처럼요. 브람스는 클라라를 빼놓고 사랑을 논할 수는 없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아간 그에게 사랑하는 여인들이 있었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기도 합니다. 그중에서 사랑을 품었지만 스스로 삼켜야 했던 마지막 연인, 바로 헤르미네 슈피스가 이 곡의 주인공입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던 그가 다시 한번 결혼을 생각하게 될 정도로 그에게 깊이 다가왔던 그녀입니다. 브람스의 나이 50세인 1883년 1월, 자신의 <운명의 여신의 노래>를 부르는 그녀에게 즉각 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브람스는 열정적으로 그녀의 활동을 도와 빈의 음악서클에 데뷔시켰고, 사랑에 빠진 브람스는 그녀를 위한 많은 가곡들을 썼습니다.
op.96의 <죽음, 그것은 선선한 밤이요>, <우리는 걸었네>, <꽃들이 모두 쳐다보네> <항해>
op.97의 <나이팅게일> <배 위에서> <도망> <저기 버드나무들이 있는 곳에> <빨리 오세요> <이별> 등이 있습니다.
헤르미네 슈피스는 브람스를 사랑했지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브람스의 마음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브람스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브람스가 결혼 생활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며,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선을 그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24살의 나이차도 부담이 되었을 거고요.
브람스는 1883년 그녀가 주로 활동했던 비스바덴에서 이 교향곡을 썼습니다. 5월부터 비스바덴으로 가서 이 곡을 쓰기 시작했고, 빈으로 돌아왔을 때인 10월 초엔 이미 곡을 다 완성시키고 수정작업까지 완료했다고 합니다. 11월엔 이미 이 곡을 피아노를 위한 편곡까지 다 완성한 것을 보면 그의 작곡 실력이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지만, 정말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이성일 저자는 말합니다.
다음 해인 1884년에는 헤르미네 슈피스가 공연할 때 피아노 반주를 하며 함부르크, 브레멘 등 독일 지역 곳곳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녀에 대한 설렘과 환희, 그리고 상실을 느끼는 고뇌와 쓸쓸함, 그리고 이별까지 받아들이면서 그가 느꼈을 마음들을 이 교향곡의 4개의 악장으로 담아내었습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산책가로 알려져 있는 브람스는, 자신은 선율로 마음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했을 정도였습니다. 교향곡 3번을 들으면 그가 당시 슈피스를 향한 마음이 선율로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이 곡은 다양한 예술작품에 영향을 끼쳤고 뮤즈가 되었습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소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Goodbye Again)에 삽입되었고, 우리나라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도 나왔다고 합니다. 아련하고 슬픈 감성에 자주 등장하는 곡이기도 하고요. 그중에서도 오늘은 음악으로 꽃을 피운 두 곡을 곁들여 소개드립니다.
https://youtu.be/qrRJRUr8Ip0?si=6oBmZ8ffkgrTladj
첫 번째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Take my love입니다. 원곡을 최대한 그대로 녹였고, 그의 부드러운 음성은 당시 빈티지하면서도 따뜻한 현악기의 사운드로 잘 묻어납니다.
https://youtu.be/ZCCAWjNOui8?si=-K90KPkurECPOvdd
두 번째로 산타나(Santana)의 Love of my life입니다.
브람스평전을 통해 브람스를 인간적으로 더 이해하게 되면서, 친구와 대화 중 그의 이런저런 사랑 이야기들을 전하며 음악을 전해 주었습니다. 브람스 곡을 듣자마자 바로 산타나 곡이 생각난다며 이 곡을 들려주더군요.
들어보니 기타의 주요 멜로디에 이 곡이 차용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음악조차 듣기가 힘들었던 산타나는, 어느 날 아들을 데려다주러 가는 차 안에서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을 듣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날로 바로바로 가서 기타 녹음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아름다운 방식으로 결합한 순간이죠. 이 앨범은 그래미 8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브람스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음악은 감정을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어 그의 예술적 여정과 깊은 내면을 드러내는데 브람스 교향곡 3번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선율의 여정에 잠시 우리들의 마음을 맡기고 그 시간을 기꺼이 허락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가을이 주는 위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