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푸르름으로
오늘도 나는 달천강 물빛 길을 따라 학교에 갑니다. 자전거로 아름다운 달천강 물빛 길을 달리다 보면 물빛 같은 그리움이 가득 일렁입니다. 오천 자전거길로 출근하는 그 길에 복숭아 꽃잎 날리면 꿈을 꾸듯 아련해집니다. 설렘으로 시작한 3월이 지나고, 호기심으로 서로를 알아가던 4월도 지나갑니다. 신록으로 다시 새롭게 맞이하는 여러분의 5월은 어떠한가요?
첫 시험을 앞두고 숙연한 모습으로 사각사각 책장을 넘기던 여러분 모습이 떠오릅니다. 햇살같은 웃음이 가득했던 교실에 조용한 정적이 흘렀지요. 시험을 대비하여 나누어준 프린트를 열심히 풀며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스스럼없이 질문합니다. 수업 시간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질문을 통해 비로소 자기 것으로 이해합니다. 질문을 통해 다시 사유하고 자기 언어로 재구성할 때 앎이 시작됩니다. 교사의 학습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배움입니다. 그 배움의 과정은 가르침으로 전달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겠지요.
여러분이 ‘거꾸로 수업’ 영상을 듣고 달아주는 댓글을 보면, 새로운 다짐이 무장무장 피어오릅니다. 정성껏 쓴 여러분의 댓글을 보며 그 솔직함에 슬며시 미소짓기도 하고, 그 진지함에 새롭게 다짐하게 됩니다. 아하~ 아이들은 이 부분을 어려워하는구나, 새삼 느끼게 되고 새로운 소통을 시작합니다. 어려운 수학도 아이들 댓글에 맞춰 개별적으로 설명하면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이들의 비밀을 엿보고 나서 하는 거꾸로 수업은 그래서 맞춤형 수업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가 그친 후의 괴산고등학교 교정은 한 폭의 그림엽서처럼 예쁘답니다. 운동장은 푸르름의 생기를 되찾았고 영산홍은 꽃망울을 터드리고 있답니다. 초록초록한 잔디와 분홍분홍한 영산홍의 조화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신비입니다. 나는 그동안 꽃이 서서히 피어나는 줄만 알았습니다. 간절함이 그득하면 꽃이 피어나는 건 한순간이라는 걸 학교 교정의 영산홍을 보고 알았습니다. 괴산고 친구 하나하나가 모두 영산홍 꽃으로 다가옵니다. 꽃의 피어남은 완성이 아니라 간절함의 시작입니다.
수업에 들어가는 학생들에게 마음을 담은 삼색 볼펜을 선물했습니다. 어떤 문구를 쓸까 고민하다가 ‘따주힘나’로 정했습니다. ‘따뜻하게 사랑을 주고 힘차게 나아가자’라는 의미이지요. ‘사랑의 마음으로 무장하여 더 큰 세계로 나아가자‘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너머’를 지향하는 의지를 작은 볼펜 안에 담고 싶었습니다. 볼펜을 나누어주고 내가 만든 구호를 외쳐보았습니다. “따스히 따스히 따따따! 쭈다쭈다 쭈쭈쭈! 힘차게 나아가자! 괴산 괴산 파이팅 야!”
한껏 폼잡고 힘차게 외치니 몇몇 아이들이 수줍게 따라 해 주었습니다.
며칠 전 아내와 해 어스름 무렵 오천 자전거 길을 산책하는데 학생들 자전거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있었고 지도 교사가 아이들의 길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행렬이 잠시 멈춘 사이 학생에게 어디서 왔고 어디를 가는 중이냐고 물었습니다. 서울 서초동에서 출발했고 진도를 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숲나’라는 특별한 이름을 지닌 대안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아마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진도까지 라이딩하는 체험학습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엉덩이 아프지 않냐고 물었더니 엉덩이에 불이 났다고 하면서 싱긋 인사를 하면서 사라졌습니다. 노을 속으로 사라져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힘든 순례길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괴산고등학교 복도에 전시된 세월호 기념 판넬에는 잊지 않겠다는 추모의 글이 노란 희망으로 별처럼 총총히 박혀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잊지 말아야 할 시간들이 있습니다.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입니다.
오늘도 나는 신록으로 다시 푸르게 펼쳐지는 달천강 물빛 길을 따라 학교에 갑니다. 새로운 희망으로 푸르게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