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쓰는 편지
편지 쓰기 숙제가 날아왔다. 유치원 졸업식 동영상 제작에 쓰일 거라고 했다.
각을 잡고 쓰려니 첫 문장부터 뜸만 들인 지 닷새였다.
자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곤한 숨소리에 맞춰 타이핑을 시작해 본다.
너를 품고 있던 열 달,
너는 어떤 모습의 아기일까 궁금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너와 함께 하고 있는 지금,
너는 어떤 나무로 자라날까.
너는 어느 계절에 피어나는 꽃일까.
또다시 문득 궁금해진다.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울다가도 웃는 얼굴이 되고
땅 위에서 폴짝거리는 새를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고
연거푸 미끄러져도, 높다란 미끄럼틀 꼭대기까지 기어이 올라가야 하고
좋아하는 게 생기면, 눈뜨면서부터 자기 전까지 온통 그 생각이고
새빨간 노을빛, 단풍의 가을빛, 파란 하늘빛에 눈 맞추며 이쁘다 말할 줄 알고
밀려오는 파도에 이리 쓸리고 저리 쓸려도 여전히 바다가 좋고
새로 들여온 꽃나무에게 손 흔들어 반갑다 해주고
다투고 나면 먼저 두 팔 벌려 웃어주고
아빠와는 둘도 없는 단짝이고
애니메이션 신비 아파트 귀신이 나오기 전 엄마 눈부터 가려주는 너.
사랑을 토양 삼아
배움을 햇볕 삼아
성실과 용기를 수분 삼아
재치와 유머를 환기 삼아
네가 가는 길이 오르막이든 내르막이든
오르락 내르락, 그에 맞는 지혜와 힘을 기르며
신나는 초등학교 생활 할 수 있기를...
어떤 나무로 크든, 어느 계절에 꽃을 피우든
너만의 씨앗을 온전하게 틔우고 즐겁게 키워 낼 거라 믿어.
언제나 너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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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는 역시 끝내는 맛이지.
아들 친구 엄마가, 편지 쓰고 나서 다시 읽기 오글거린다 했는데...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래도, 브런치에 아들 관련 에피소드 글들을 기록해 놓은 건
살면서 제일 잘한 일 중 하나.
숙제로나마
편지글 하나 추가 할 수 있어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