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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구리 Jan 22. 2024

가장 외로운 시대

《외로움의 습격》 김만권 지음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독자님은 혹시 ‘외로움’을 느끼시나요? 얼마나 자주, 얼마나 심하게 느끼시나요?


2018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중 상시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의 비율이 26%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사람 4명 중 1명은 외롭다는 뜻인데요. 이는 OECD 41개국 중 41위, 꼴찌에 해당하는 수준이라 합니다. 게다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니 5년이 지난 현재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에 빠져 있을 듯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젊을수록, 혼자 살수록, 일정 소득 이하일 수록 외롭다고 합니다. 즉 20대가 가장 외롭다고 하는데요. 더 심각한 건 지금 10대 아이들의 미래는 더더욱 외로울 거라는 예측입니다. 이제 갓 두 살이 넘은 제 아들은 얼마나 외로운 시대를 살게 될지 무척 걱정스럽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자기 아이에게 안전하고 좋은 세상을 물려주길 꿈꾸는 철학자’ 김만권 님의 ⟪외로움의 습격⟫입니다. 왜 우리는 점점 더 외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걸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외롭지 않은 세상을 물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만권 님의 책 ⟪외로움의 습격⟫ 속으로 함께 가시죠!


김만권, 《외로움의 습격》, 혜다, 2023


1. 외로움이란?


존재의 측면에서 보자면, 외롭다는 말은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의미와 같다. 외로워진다는 말은 결국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사라진 존재란 뜻이다.

p.8


김만권 님은 ‘외로운 존재란 사라지고 있는 존재’라 말하는데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우리의 존재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첫째는 ‘타자들이 인정하고 보장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인정하는 자리’에 방점을 찍어두고 싶습니다.


둘째는 ‘역할’입니다. 역할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셋째는 ‘도움을 청할 수 없다.’입니다.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처지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듭니다. 즉 외로움을 완결시킵니다.


홀로 된다는 점에서 ‘외로움’은 ‘고독’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릅니다. 고독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고독한 사람에게는 돌아갈 자리와 주어진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외로움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16세기까지 서양에서는 외로움(lonely)이란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고독과 비슷한 ‘홀로 됨’을 뜻하는 ‘oneliness’라는 표현이 있었을 뿐이라 합니다.


서양에서 외로움이란 말이 탄생한 시기는 산업혁명 때라고 하네요. 18세기말부터 20세 초, 산업혁명 시기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는 폭발적인 인구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인구수가 일자리 수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대규모의 실업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기계를 보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졌습니다. 심지어 가지지 못한 자들은 서로 노동자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사람들 간의 불신도 증가되었습니다. 이로써 외로움의 세 요소가 갖춰지기 시작하는데요. 사람들은 타인이 인정하는 자리와 역할을 잃어버렸고, 게다가 불신이 싹트면서 도움을 청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3. 왜 외로움은 점점 심해지는가?


《외로움의 습격》의 저자 김만권 님은 우리가 지금껏 가장 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심각한 건 앞으로 더더욱 외로운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더더욱 외롭게 만드는 걸까요?


김만권 님은 ‘디지털’과 ‘능력주의’라고 답합니다.



먼저 디지털은 왜 우리 사회를 더욱 외롭게 만들까요? 간단히 답하자면, 디지털 기술이 괜찮은 자리와 역할을 없애고 어마어마한 이익을 소수에게 몰아줌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을 가속화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특히나 최근 들어 AI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요.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를수록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즉 기술이 가져오는 이익을 소수가 독점하게 됩니다.


둘째, 디지털 기술의 네트워크 효과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이용자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카카오톡’을 이용합니다. 카카오톡을 이용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정보를 주고받는 데 불편함을 느낄 수준입니다. 반면 카카오톡만 이용하면 메신저, 택시 호출, 금융, 선물, 쇼핑, 광고 등 수많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습니다. 즉 디지털 기술은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 때문에 엄청난 이익을 소수가 독점하게 됩니다.


셋째, 디지털 기술이 중숙련 일자리를 대체하고 저숙련 일자리를 증가시킵니다. 디지털 기술은 사무자동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반복 수행 비율이 높은 중숙련 일자리를 대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쿠팡은 AI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물류를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배정합니다. 때문에 그 과정을 수행하던 중숙련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대신 쿠팡 알고리즘을 실현시켜 줄 수많은 택배 기사가 필요합니다. 즉 디지털 기술은 중숙련 일자리를 없애고 디지털 기술의 수족 역할을 할 저숙련 일자리를 증가시킵니다. 즉 디지털 기술을 보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경제적 불균형이 심해집니다.



다음으로 능력주의는 왜 우리 사회를 더욱 외롭게 만들까요? 간단히 답하자면, 힘들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는 신분제를 타파하고 능력에 따라 부를 분배하자는 발상인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능력주의는 가진 자들이 더 가지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19세기에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확장하던 중 식민지 관리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만으로는 수가 부족해서 식민지를 관리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신분이 낮더라도 능력이 있으면 지위를 주겠다는 게 능력주의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능력주의에서 능력이란 지능(타고난 것) + 노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능력에서 타고난 ‘지능’을 무시하고 ‘노력’에만 방점을 찍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능력주의는 노력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력주의는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이 선전에는 ‘실패한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저숙련·저임금 노동자들이 좌절감과 수치심에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초등학교 교사인데요. 학교 교육에도 노력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건 노력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성취도가 떨어지면 방과 후에 남겨서 부진 지도를 하라고 하는데요… 아이에게도 교사에게도 참 고역입니다.)


게다가 한국의 능력주의는 ‘시험주의’입니다. ‘시험에 통과하면 능력 있는 걸로 친다.’는 겁니다. 따라서 아무리 오랜 시간 노동 현장에서 실전 능력을 입증해도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영원히 비정규직에 머물러야 합니다. “수년간 훌륭히 일을 했으니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라고 요구하면 “우리가 얼마나 노력해서 정규직 자리를 얻었는데! 너희는 노력도 하지 않고 정규직 자리를 요구하냐!”는 사회적 비난을 받습니다.



‘디지털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집니다.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고요. 저임금·저숙련 일자리는 점점 늘어날 테니까요. 게다가 ‘디지털 능력주의’ 사회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게으른 자’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게으른 자’는 절망감과 수치심에 타인에게 도와달라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즉 외로운 존재가 됩니다.



4. 왜 외로움은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가?


‘태극기 부대’라고 들어보셨나요? 주로 노인분들이 태극기를 들고 극우적 목소리를 과격하게 내는 분들을 지칭하는데요. 우파 포퓰리즘, 극우적 목소리가 점차 세지는 게 세계적인 흐름인 듯도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또한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노인분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건 ‘외로움’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노인분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 역할이 사라진 세상. 심지어 도와달라고 하면 염치없고 귀찮은 존재 취급을 받는 세상에서 외로운 노인분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감정은 분노와 우울입니다.


극우 정치인들은 그들의 분노와 우울을 이용합니다. 극우 정치인들은 대한민국 사회가 이 정도로 발전한 데는 선배 세대들의 노고와 희생 덕분이라며 노인분들을 칭송합니다. 그런데 이 사회가 잘못 가고 있으니 선배 세대들이 다시금 힘을 내야 한다고 응원합니다. 노인분들은 그 순간 자신을 인정해 주는 자리와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동시에 서로 으쌰으쌰 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로 살아 숨 쉬게 됩니다.



앞서 소개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외로운 세대는 20대라고 하네요. 20대는 ‘디지털 능력주의’의 중심에 서 있는데요. 외로움, 다시 말해 수많은 20대의 마음속에 분노와 우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극우 정치인들은 20대의 분노와 우울을 이용합니다. 특히 20대 남성의 분노와 우울에 파고드는데요. 극우 정치인들은 20대 남성들이 학업과 스펙 쌓기 심지어 군복무로 청춘을 희생하고도 좋은 직장을 가지지 못하는 건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페미니즘으로 여성을 역차별함으로써 20대 남자들이 가져야 할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고 역설합니다. 즉 이 사회가 20대 남자들에게 불공정하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더 가지지 못한 자’를 이용하여 ‘가지지 못한 자’의 분노와 우울을 이용하는 것을 ‘우파 포퓰리즘’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파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장애인들이 지하철 역에서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는 시위를 보고 민폐짓이라고 호통칩니다.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는 죄 없는 근로자들을 볼모 삼아 장애인들이 이기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라는 논리입니다. 이처럼 외로움에서 피어난 분노와 우울은 극우 정치인들의 동력원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치명적입니다.



5. 사람답게 살려면 꼭 필요한 것?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가수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화가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정책 아이디어가 있어도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정치인이 될 수 없듯이요.


그렇다면 오롯이 본인의 능력 덕분에 성공했다는 건 크나큰 착각이겠지요. 능력이라는 것 또한 들어주는 사람, 읽어주는 사람, 보아주는 사람,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처럼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자신을 필요해주고 인정해 주는 공동체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듯합니다.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그건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내가 ‘말을 하는 존재’, ‘의견을 갖는 존재’가 되고, 이를 통해 결국 ‘고유한 삶이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우린 그저 메아리에 그치고 말아요.

p.288-289


최근 들어, 부쩍 ‘공동체’란 말에 꽂혔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좋은 공동체가 전부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외로워진다는 것 또한 우리 사회에 좋은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게 아닐까요? 좋은 공동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자 김만권 님은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실행가능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는데요. ‘뭐가 이렇게 구체적이야?’할 정도로 섬세하더라고요. 이를 우구리의 눈으로 요약하여 간략히 소개드리겠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가장 먼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겠지요. 경제적 불평등은 이익을 독점하는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먹고사는 문제’에 가둬둡니다. 일자리가 부족하니 사람들은 늘 경쟁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서로를 불신하는 문화가 자리합니다.


적어도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조금 자유로워져야 하는데요. 김만권 님은 ‘생애 주기 자본금’과 ‘인생 위기 · 전환 대응 소득’을 예시로 제안합니다.


‘생애 주기 자본금’은 기초자산의 예시로 생애를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누고 각 주기가 시작되는 25세, 45세, 65세에 자신의 생애 주기에 맞게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구성원에게 목돈을 주자는 아이디어라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25세, 45세, 65세에 이른 이들에게 3,000만 원이라는 동일한 액수를 배당하는 식이라고 합니다.


‘인생 위기 · 전환 대응 소득’은 기본소득의 예시로 개인이 인생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나아가 삶의 방향을 전환하고 싶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소득을 지원하자는 아이디어라고 하는데요. 개인이 선택한 시기에 총 5년 동안 매달 100만 원씩 배당받는 식이라고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 조건입니다.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지요. 그럼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김만권 님은 우리 사회에 ‘경청’하는 태도가 자리하길 기대합니다. 현재는 교육에서부터 입시와 출세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는데요. 이에서 벗어나 경청하는 태도에 최우선 가치를 두자는 의견입니다. 경청하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없으니까요.


오늘 준비한 책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어떠셨나요? 재미있으셨나요? 혹은 유익하셨나요? 그러셨다면 댓글로 독자님의 흔적을 남겨주시길 바랄게요. 평안한 하루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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