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요시 사와코 - 황홀한 사람] 황홀하지 못한 현실
이 책을 읽고 한동안 우울한 마음이 있었다. 이 책은 1970년 일본을 배경으로 지어진 이 책은 치매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이다. 당시 192만 부가 팔렸고, 일본 복지 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를 받는 책이었다. ‘뉴에이징’ 출판사인 청미 출판사에 관심을 갖다 발견한 책이었는데 치매 증상인 시아버지와 그를 돌보는 가족의 이야기였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소재로 한 글을 처음 읽어 보기도 했고, 소설 속 인물들 또한 흥미로웠다. 하지만 치매 증상에 대한 생생한 묘사, 그를 돌보는 녹록지 않은 현실이 너무 적나라하여, 우리 부모님도 언젠가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 그로 인해 겪게 될 현실들에 대해 꼬리를 물고 상상하게 되었다.
남편, 즉 치매에 걸리 아버지를 둔 남자는 매일 야근 아니면 회식을 하고, 일요일에는 잠만 자면서 나중에 아버지처럼 될까 걱정만 한다. 어쩔 수 없이 워킹맘 며느리인 아키꼬가 회사 나가는 횟수를 줄이며 치매 시아버지를 돌본다. 일을 놓고 싶지 않은 아키꼬는 복지관을 찾아다니지만 쉽지 않다. 매일 밤 밖에서 소변을 누는 시아버지를 돌보고, 갑자기 집을 나서 힘껏 달리는 시아버지를 찾아 길거리를 헤맨다. 가장 원망스러운 지점은 치매가 걸린 시아버지가 며느리 말만 따른다는 것이다. 아들은 알아보지도 못해서 그 핑계로 아들은 돌봄의 행위에서 쉽게 빠지고 있다. 치매 전 까칠하고 예민했던 시어버지는 주변 사람 속도 모르고 갓 태어난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다. 최악의 현실에도 절대 놓을 수도 없는 그 관계가 뭉클하면서도 절망적이다. 네덜란드에는 치매인 사람들이 그들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호그벡이라는 마을을 만든 사례가 있다. 결국 정부와 비영리 단체들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시니어를 위한 브랜드를 만드는 입장에서 이러한 현실 또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혹 너무 이상만 바라보다 현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을 계기로 시니어들을 위한다며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들의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고, 더더욱 책임감 있는 자세로 다가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수민이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셨어요.
수민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바로 다음 주에 아버지를 뵈러 가고자 티켓을 끊어 놓은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편찮으신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서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놀란 마음과 조금만 기다렸다가 딸 얼굴이라도 보고 가시지 왜 벌써 가셨을까,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과, 혼자 말 못 하고 편찮으셨을 아버지를 떠올리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차올라 엉엉 울었다.
최근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 이야기를 하며, 유독 우리의 부모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 아빠가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하게 되면 정말 성공인 거야,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다. “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브랜드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6-7년 전, 수민이 아버지를 제주에서 처음 뵈었다. 원래도 낯가림이 없고, 어른들을 별로 어려워하지 않아 아버지에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수민이랑 한라산 근처의 숙소에서 자고 오름을 갈 거라는 이야기(수민이는 제주도 사람이지만 오름을 나와 처음 가봤다.), 이후에 따로 자전거로 여행을 하고 야외 텐트에서 자는 투어를 예약했다는 이야기 등 다소 액티브한 이야기들을 말씀드렸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는 별 반응 없이 내 이야기를 듣기만 하셔서 잘 몰랐는데, 이후에 수민이에게 “밖에서 자는 애는 잘 간 거니?”하며 계속 물어보셨다고 한다. 아마 서울에서 온 참새(?) 같은 아이(말 많고 잘 쏘아 다니는 아이)를 신기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는 보통 그런 반응을 들으면, 나를 좋아한다고 해석한다. (지극히 주관적 해석이지만, 수민이가 좋아하는 게 맞다고 인정함) 그 이후로 수민이가 아빠한테 전화할 때면 옆에서 꼭 인사를 드렸고, 몇 년 전부터는 아버지 생신날에 맞춰 가게에 팥빙수를 보내드렸다. 그럴 때마다 ‘고마워요 ㅎㅎㅎ’라고 짧게 답장을 보내주셨지만, ‘ㅎㅎㅎ’를 붙인 아버지의 카톡을 보고, 평소에 절대 그런 걸 붙이지 않는다며 수민이가 놀라는 모습에 괜히 내가 효도를 한 것 같아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수민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빠르게 서울로 돌아왔다. 슬픈 마음을 꾹꾹 누르기 위한 것 같다. 하지만 돌아가신 후에 해야 할 것이 참 많더라. 제주에 있는 가족이 아버지의 남은 유품을 정리하고 있어, 수민이는 그 소식을 매일매일 받는다. 며칠 전 오은영 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오은영 선생님이 ‘상실’은 ‘우울감’을 부른다고 말했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은 수민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너무 큰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행복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해 주는 것,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우리의 삶을 더 잘 살아내는 것이겠지. 더운 여름, 팥빙수를 먹을 때면 아버지가 더 많이 생각날 것 같다. 아버지 하늘나라는 시원한가요? 수민이랑 저 잘 살게요. 세상 일은 걱정 마시고 부디 편안하세요.
“거리를 둬 주세요” 호소하는 젊은이들
시니어의 삶을 관찰하고, 시장을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련 말과 상황들이 귀와 눈에 콕콕 박히는 요즘이다. 사장님의 나이가 60이 넘으신 어느 회사의 대리님은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20대인 요즘 친구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며, 혀를 찬다. 스레드에는 지하철에서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사람과 가까이 붙어 이동하는 한 아주머니의 모습 위로 ‘제발 거리를 둬 달라’는 호소를 담은 영상이 올라온다. 아주머니를 향한 지탄의 말이 댓글에 가득하다.
물론 어떤 마음인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님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결국 우리도 그 나이가 될 텐데 그때가 되어 당신은 젊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자신이 있는가? 회사가 과연 젊은 사람들로만 이뤄졌을 때, 어떠한 모습일 것인가? 나이 든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안타깝다.
주말에 본가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 왔다. 평일에 봤던 릴스 영상이 생각나서 엄마의 행동을 관찰하니,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문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누가 내리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바로 타더라.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랑 부딪힐 수 있으니 조금 떨어져서 기다리고, 한 템포 쉬고 움직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나이가 들 수록 그런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며, 알겠다고 대답한다. (물론 본래 성격이 급하신 것도 있다) 괜히 밖에 나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험한 말을 들을까 잔소리가 많아지는 날이었다. 노인이 된 나를 상상하며, 우리의 부모님을 상상하며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나의 욕심인 걸까?
생각해 보면 10년간 다닌 회사는 최고령자가 50대 초반이었던, 소위 말하는 아주 젊은 회사였다. 40대, 50대이신 분들도 트렌드에 열려 있고 신기술을 보면 누구보다 먼저 시도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접한 나이 든 사람이라곤 부모님 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꽤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이 드신 분이 많이 계신 회사들에서 일을 했다면 나의 생각은 또 달랐을까? ‘나이를 떠나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사회’라는 것이 어쩌면 너무 큰 나의 꿈은 아닐지, 괜스레 두려움 마음이 든다.
시니어 브랜드를 만드는 홍대표와 남대표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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