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 영혼의 소리를 듣다 )

입학. (5)

by 검정봉지

영로의식을 마친 후 학생들을 인솔하는 것은 사회자 이도의 몫이었다. 그가 대웅전 안뜰로 통하는 대문을 닫고 손바닥을 아래로 펼치자 그 밑으로 지팡이 길이의 낙죽장도가 자리했다.

그가 장도로 문 바로 앞을 내려친 것이 세번.

쿵.

한 번에 문이 덜컹거렸고

쿵.

두 번에 문 틈 사이의 공간에 금이 갔다.

쿵! 덜컥!

세 번에 땅에서 앞선 두 번과는 전혀 다른 커다란 소리가 남과 동시에 문의 건너편에서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장도를 갈무리한 이도가 두 손을 뻗어 대문을 열자 순간 바람이 휘몰아치며 그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 영문관에 온 걸 환영합니다. ”

소개하듯 한쪽으로 손을 펼치고 선 이도의 뒤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넓은 광장에 깔린 석판과 문 바로 너머에 서있는 세명의 인영이었다. 신기해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넘어간 학생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셋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검은 옷에 붉은 연등, 푸른 초롱, 노란 제등을 들고 있는 동자들이었다.

앞서 나간 이도가 그들에게 간단한 목례를 한 후 뒤돌아 말했다.

”소개하죠. 각각 구령탑,관천루, 옥리각의 성주신이십니다. “

신입생대표 왕윤을 앞세워 학생들 모두 인사를 올리자 성주신들이 간단한 목례로 화답했다.

” 그럼 성주신들께서 여러분들을 각자의 탑으로 안내해 주실겁니다. 가져온 짐들은 전부 옮겨져 있으니 오늘은 간단히 짐을 풀고 쉬시기 바랍니다. 시간표와 관의 일정은 또한 휴게실에 개제되며 탑의 생활은 각시분들이 도와줄 겁니다.”

그럼 잘 부탁드린다며 성주신들께 인사를 한 이도가 물러나자, 학생들은 그저 웃고만 있는 성주신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한 방향으로 향하던 성주신들은 어느시점에 세 방향으로 갈라졌고 구령탑의 학생들은 붉은 연등을 든 성주신의 뒤를 따랐다. 소능은 어둠이 짙게 내린 길에서 석등만이 발밑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 길을 조용히 따라가는데 어깨를 톡톡 치는 손길을 느꼈다. 뒤를 돌자 긴 머리를 반묶음으로 올린 여자애가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슥 숙인 그 애는 비밀이라도 얘기하는 것 마냥 조용히 속닥였다.

” 너 ···..아까 대단하더라 어떻게 그거랑 대치할 생각을 했어? “

“ ···. 그거? ”

설마 너 신장을···.

“ 응 그거. 우락부락한 신장말이야. 신장이 뒤에 있다는 거 알고도 막은 거 아냐? 나는 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줄 알았잖아. 토낀줄. “

···. 어이가 없던 나는 벙진 얼굴로 여자애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 딱히 알고 한 건 아냐. “

” 엥? 그럴리가? 그렇게 영력을 고양이 털 뿜어내듯이 내보내면서 숨길 생각도 안 한 걸 몰랐다고?“

습···. 얘 말하는게 좀 이상했다. 내 눈에도 아지랑이 처럼 보이던 그 흉흉했던 기운을 고작 고양이 털에 비유한다니?

” 그··· 털··· 아니. 나는 영로의식 전까지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당연히 그 신장도, 걔의 영력도 못 봤지..“

” 뭐!!! ”

자기도 모르게 크게 왁 소리친 애는 같이 가던 애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애들의 관심은 금방 꺼졌고 처음 말을 걸 때보다 바짝 다가온 애가 더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닥였다.

“ ···그, 그럼 너 그걸 모르고 걔랑 싸운거야? ”

“ 안 싸웠지···”

“ 그게 그거잖!···. 아~!”

그 애는 순간 또 흥분해서 소리가 커지던걸 주변 눈치를 보고는 소리를 줄였다. 나는 화제를 바꾸지 않으면 탑에 가는 내내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 뭐··· 그것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서 그런가 너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 나는 유소능이야 너는? “

” 앗! 미안. 나는 진 서연이야 잘 부탁해. 아 맞어 저기 제일 먼저 배정되서 임시로 깃발 들고 있는 애 말이야. 우리 같은 초등학교 나와서 친구거든 기회 되면 소개시켜줄게. 쟤 이름은 신 강현! ”

갑자기 바뀐 주제에도 다다다닥 이어지는 말에 기가 빠져나가는 걸 느낀 소능은 흐린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착한 구령탑은 양쪽으로 여는 대문에 호랑이 문양의 커다란 손잡이가 양쪽으로 달려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사각형으로 되어있는 1층의 중안엔 불이 타오르고 있었으며 그 주변을 여의주를 문 오조룡이 나선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구룡탑의 성주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 구룡탑은 총 9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층까지는 계단을 이용하며 5층부터는 비판을 이용해 다닙니다. ”

안내를 하며 바닥을 가르키는 성주신의 손길에 따라 모두가 아래를 보았다. 용의 정면 얼굴이 그려진 원형의 판이 불꽃을 중심으로 양쪽에 있었다.

“ 기숙사는 5층부터 있으며 2개 학년씩 같이 사용합니다. 층별로 안내는 내일부터 주말동안 학년 선배들이 해줄겁니다. “

설명이 끝나자 휘릭 소리가 들리더니 쿵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사람이 성주신의 뒤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성주신은 지금껏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곤란한 표정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 후으······ 제가 비판을 이용해 다니라고 누차 말했을 텐데요..“

위에서 떨어져 내린 두 사람은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으로 안에는 흰티와 츄리닝 같은 편한 옷에 겉옷만 교복 도포를 입고 있었다.

” 죄송합니다아~! 그치만 비판은 너무 느린걸요~ 9층 쯤이야 떨어지는게 더 빠르죠 ”

애교있게 눈웃음을 지으며 여자 선배로 보이는 사람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답했고 같이 떨어진 남자 선배는 슬쩍 눈을 피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성주신은 두 사람을 소개했다.

” 여긴 6학년이고 구룡탑의 탑주인 김 선우, 그리고 부탑주 황 영연 입니다. 기숙사로 들어가는 방법 및 비판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줄 거에요. 학교 안내 및 기숙사 안내 역시 해당 선배들이 지도해줄 겁니다. 그럼 잘 부탁해요. “

말을 마치자 성주신은 흐릿해지며 모습을 감추었다. 구령탑에 배정된 이들은 총 8명으로 그 중 두명이 여학생인 나와 아까 말을 건 진서연, 그리고 남은 6명이 남학생들이었다. 남학생들은 탑주를 따라 여학생들은 부탑주인 황영연을 따라 양 쪽의 비판 위로 올랐다.

” 비 [飞] “

성대가 울리는 듯한, 이중의 목소리. 선배가 주문을 영창하자 덜컹 비판이 들리는 느낌과 함께 비판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비판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올랐고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선배가 휙 뒤돌았다.

” 자 그럼···.. 뭐 부터 얘기할까. 구성신께서 소개 했다시피 나는 황영연 6학년이고 부탑주야. 탑주야 말이 거창하지 학년 기숙사장이라고 보면 돼. 나는 일이 없으면 9층 부탑주실에 상주하고 있고, 여자 기숙사는 내가 담당하고 있으니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 말하면 돼. ···또···음··· 궁금한게 있어? “

영연 선배의 첫인상은 매우 발랄했다. 질문이 있냐는 소리에 서연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에 반가운 표정으로 선배가 서연을 가르키며 말했다.

” 오 친구. 뭐가 궁금하지? “

”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저는 진서연입니다. 질문이 좀 많은데 해도 될까요?!“

” 그럼! 그럼 얼마든지! “

” 성주신님의 본명이 구성신일까요? 저희도 그렇게 부르면 될까요? 그리고 선배님은 영연선배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부탑주님? 부탑주 선배님? 그리고 내일 있을 학교 및 기숙사 소개를 또 선배님이 해주시는데 시간이 어떻게 될까요? “

”···.“

”···“

예상못한 질문 폭탄에 흔쾌히 얼마든지를 외쳤던 선배도 벙 져서 서연을 바라보았다. 그 때 비판이 5층에 도착했다.

” 아! 일단 내릴까? 비판부터 설명을 하자면, 주문을 배우기 전까지 너희에게 부적이 배부될 거야. 그걸로 이용하면 돼. 나는 그냥 영연 선배님이라고 부르면 되고 다른 선배들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구성신은 ‘구령탑의 성주신’을 부르는 학생들 사이의 은어야. 비슷하게 옥리각은 옥성신, 관천루는 관성신. 말 그대로 은어니까 성주신님 앞에선 똑바로 호칭하고 말 조심 하도록 해.“

도착한 5층은 복도에 내리면 바로 정면으로 양쪽으로 열리는 문이 있는 단순한 구조였는데 아무래도 휴게실은 공용으로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마침 왼쪽 비판을 타고 올라온 남학생들도 문으로 다가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커다랗게 걸린 기숙사 휘장 앞으로 펼쳐진 6첩 병풍이었다. 그 앞으로 푹신해 보이는 방석이 8궤 모양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그 중앙에 희뿌연 향이 올라오는 향로가 있었다. 주홍빛으로 빛나는 좌등이 벽에 붙어 있었으며 육각으로 된 유리등이 방의 정 중앙에 매달려 있었다.

탑주가 합류했기에 이어진 설명은 선우 선배님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발랄했던 영연 선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무뚝뚝한 설명에서 알 수 있었다.

” 이곳이 구령탑 인원 전체가 이용하는 기숙사 공용 휴게실이다. 여기서 연결된 층은 1,2학년이 사용하는 6층이며 해당 층을 포함한 7,8,9층은 비판을 이용해서만 출입이 가능하고··· “

말을 잠깐 멈춘 선배는 휘장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 뒤쪽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바로 6층이고 너희 방으로 갈 수 있다. 각자 방이 어딘지는 문패를 확인하도록 해라. 짐은 각시님들이 방에 옮겨 놓으셨을 거다.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 ··· 토요일 오전 8시까지 교복을 갖춰입고 휴게실로 모인다. 이상. 질문있나? ”

하루가 길었던 학생들은 고개만 절레 절레 저었다.

” 그럼 방으로 올라가도록. “

앞장서는 서연의 뒤를 따라 소능도 왼쪽 계단으로 향했다. 그러다 흘긋 뒤를 돌아보자 선우 선배와 한담을 나누던 영연 선배가 내 쪽을 보더니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 내일 봐~ ’

인사해줄 줄은 몰라서 화들짝 고개를 숙인 소능은 몇 번 고개를 꾸벅이다가 얼른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 밑으로 귀엽다며 웃는 영연 선배의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 어으 진짜 피곤하다아~···“

” 그러게.. “

계단을 오르는 서연이 피곤하다며 한껏 등을 구부린채 올라갔다. 생각보다 많는 일이 있었던 나도 벌써부터 고민이 많아졌다. 누구때문인지는 뭐···. 사과하면 받아주려나? 아니 근데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 왕윤에 대한 고민도 잠시, 아차 하며 재영에 대한 것도 떠올랐다. 관천루에 재영을 포함에 2명만 배정됬던데 그 낯가림 심한 애가 또 얼마나 새파랗게 질려있을지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에이 그래도 내일 기숙사랑 학교 안내 받다 보면 마주치긴 하겠지···

계단을 올라와 조금 걸은후 모퉁이를 돌자 두 개의 문이 있는 복도가 나왔다. 계단 바로 근처에 있는 문 앞에 유 소능, 진 서연 두 이름이 붙은 문패가 보였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3평 남짓한, 기숙사 치고는 넓은 방이었다. 문 바로 옆으로 화장실이, 양쪽 벽으로 평상처럼 생긴 침대에 금침이 깔려 있었다. 침상 옆 창문 밑으로 좌식 책상과 3층짜리 빈 책장이 있었다. 방의 중간에 우리의 짐이 놓여 있었고 서연은 핸드폰부터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 ··· 그거 돼? 나는 아까 학교 들어왔을 때부터 먹통이던데.”

“ 안 돼~ 그냥 사진용이지.”

아 .. 그래. 역시 알다가도 모를애였다. 주섬주섬 내 가방을 빼내고 이부자리부터 정리했다. 그리고 세면도구를 정리해서 들어간김에 씻고 알람시계를 주워들어 침대 위로 널브러졌다.

“어? 그거 알람 울리는 거야? ”

“응··· 백로 언니가 핸드폰 안 터진데서 혹시 몰라 가져왔지. ”

“···. 언니? ”

“응? 응. 백로 언니···. 아 우리집 부모님이 일반인이라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왔었어. 그 영로의식 주관한 조의.을선님이랑 비슷한 분위기 풍기는 분이었는데... 왜? ”

“허어···..”

부스럭거리며 벌떡 일어난 서연은 뭐 저런애가 다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끼릭 끼릭 테옆을 돌려 7시로 시간을 맞춘 나는 시계를 침상 옆 개인 협탁에 올리고는 풀썩 모로 누워서 물었다.

“ 말을 해 말을. 너는 뭔가 아는 모양인데 나는 완전 일반인으로 자라서 모른단 말이야. ”

긴 머리채를 휘휘 틀어올려 똥머리로 묶은 서연이 배개를 들더니 내 침상으로 건너왔다. 아니 ; 여기까지 오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가까이 와서 벽에 기대 앉은 서연은 배개를 품에 고쳐안더니 말을 시작했다.

“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수의사를 하시는데 아버지만 영매야. 그래서 인간계에서 자리잡은 영물들이 병들어오면 고쳐주고 계셔. “

”오···“

인간들은 모르지만 두루미, 구미호 , 뱀 등등 다양한 영물들이 인간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고, 게 중에서 전투력이 은근 높은 종족 중 하나가 바로 두루미라고 한다.

“ 두루미가? ”

“ 응 . 의외지? 근데 진짜야 깃털도 억세고 다리도 튼튼해서 본체 전투력도 만만찮은데 영물이 되봐 얼마나 강하겠어? ”

“ 그러니까···. 백로 언니가 선술을 수련중인 두루미 영물이고 원래는 백로 선인 이라고 불렀어야 한단 거지?”

“ 맞아. 등선을 위해 수련하는 이들을 통틀어 선인이라고 불러 그들의 우두머리의 직함이 ’조의’ 아까 우리 영로의식 했던 사람말야. 사람은 분명 아니겠지만..제대로 부른다면 조의선인.을선 인거지.”

“근데 언니는 별 말 안 하던데···”

그게 이상하단 거라며 서연은 일장 수다를 시작했다. 백자를 쓴다면 선인 중 서열도 높은 축이라며 본인이 알기로 현재 항렬자가 을자 다음이 백자일 것이라고 했다.

“······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앞에선 그렇게 부르지 않는게 좋아. 종족 특성상 사람 별로 안 좋아해서 살갑게 굴지도 않는데 너한테만 특혜를 준 거나 마찬가지잖아. 너처럼 일반인 부모님 있는 애들도 몇 있는데 다들 깍듯이 선인이라고 부른다고.”

“ 그래..? ”

하지만 언니는 정말 아무렇지 않아보였는데··· 깊은 생각중이던 소능은 이내 서연이 내밀어오는 핸드폰으로 집중이 흐트러졌다. 서연은 그동안 아버지가 치료했던 영물 중에 애기들도 있었다며 진짜 귀엽다고 몇 백장이 되는 사진첩으로 들어갔고 나는 신기함 반 귀여움 반응로 같이 사진을 구경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영문관 기숙사에서의 첫날 밤을 둘이서 뜬 눈으로 지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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