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를 돌이켜보면 '틈'이란 걸 늘 무서워했던 것 같다.
수능 결과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재수는 결코 선택지에 없었고, 대학도 휴학 한 번 없이 졸업했다.
학업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거나 졸업 후 뚜렷한 목표가 정해진 건 아니었다.
청춘이라면 누구나 겪는 공백인 취준 기간 역시 나에겐 없었다.
4학년 막 학기, 취업계를 내고 1인 출판사에 미리 입사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역시 꿈이나 의지 따위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겪어야 할 진로에 대한 고민과 방황, 그 잠깐의 '틈'이 싫어서다.
'기회가 생긴다면, 어느 정도 적성에 맞는다면 어디든'이라는 마음에서 어쩌다 보니 물 흐르듯 그렇게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수입이나 업무환경은 열악했지만 일은 그런대로 할만했고, '나 홀로 서울살이'라는 낭만에 취해
첫 회사에서 꽤 오래 버텼다.
최저임금이 만 원이 되지 않던 때였다. 딱, 최저에 맞춘 박봉 연봉은 훗날을 위한 열정페이라며 자위했다.
그렇지만 2년이 훌쩍 지나도록 도무지 오를 생각을 않는 연봉을 언제까지나 마냥 좋게 볼 순 없었다.
일단 사표는 넣어두고, 일하는 짬짬이 곧바로 이직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책 좀 읽는다 하면 알만한 출판사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운 좋게 면접을 봤다. 그리고 운 좋게 합격했다.
다니던 회사에 첫 사표를 내고, 나는 또 틈이라곤 없이 이직했다.
이직한 회사는 오래 다니지 못했다. 3~4개월 다녔나. 사연이 길다. 요약하면 그 짧은 기간은 무던한 내 성격과 무난한 내 인생을 광폭으로 흔든 최초이자 마지막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쨋든, 점점 상황이 숨통을 조여오자 '틈'이고 뭐고 내 살길을 찾아야 했다.
아무런 대책도 준비도 없이 가까스로 그곳을 빠져나왔고, 나는 쫓기듯 서울집을 서둘러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6개월은 팽팽 놀며 요양 좀 하겠다고 엄마 아빠에게 큰소리치며 선언했지만, 개 버릇 남 못준다.
그 '틈'을 참지 못하고 고향 내려온 지 세 달도 채 되지 않아 중소 광고대행사에 취직했다.
이곳에선 3년 정도 다녔다. 이곳도 할 말 많다. 야근 없는 날은 거의 없던 곳. 빡세면 주에 3번 철야를 하고, 철야 후에도 눈 맞으면 번개회식을 하던 곳. 내가 동경하는 동시에 증오하던 상사가 있던 곳. 일과 술에 찌들게 했던 곳. 늘 악에 받쳐 일했던 곳. 머리채 잡혀 업무 능력치를 한껏 끌어올렸던 곳. 처음으로 업무적으로 인정받고 연봉도 점차 만족했던 곳. 그야말로 애증으로 점철된 회사다.
이곳에서 머리가 부쩍 커졌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자 미래에 대해 이리저리 계산했다.
그리고 워라밸 등을 핑계로 퇴사했고 지금은 한 스타트업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나는 모순적이게도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쉴 '틈'없이 일해왔다.
별 거 없이 사사롭긴 해도, 지금의 나를 만든 날들이다. 그냥
바삐 지나쳤던 20대 시절을 리와인드해보고 싶었다.
속으로만 묻어두기엔 어딘가 아쉬웠기 때문에.
이래서 남자들이 군대 얘기 하나보다, 오징어처럼 곱씹는 별 거 없는 무용담이 혼자 꽤 재밌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