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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Dec 02. 2022

오늘 여기서 살 거

삶의 방패가 되는 위로

  퇴근 후 걷는 올레길. 나는 우도의 농협과 수협이 나란히 자리한 중앙로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섰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좁은 길을 빠져나와 삼거리 앞에 섰다. 섬의 두 포구 쪽으로 갈라진 길, 갈림길 오른편에 기역 모양의 민박집이 하나 있다. 부채모양으로 펼쳐진 널찍한 마당의 입구에 오래된 텔레비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도화지에 써 붙인 ’민박’이란 글자가 정겹다. 항에 들러 바람을 쐴 생각으로 담을 따라 계속 걷는다. 멀리서 도항선이 달려오고 있다. 빨간색 등대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고, 그 바다 건너에 육지로 가는 오렌지호가 정박한 성산항이 보인다. 돔 모양의 대합실과 줄 선 차량 행렬들도 보일 만큼, 생각보다 가까웠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 한 마디가 귓가를 잠깐 스친다. 이어폰에서는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바로 옆에서 읊조리듯 가사가 귓바퀴를 맴돈다. 바람이 소리 없이 몇 번이나 오고 갔다. 한쪽 어깨에 걸린 가방을 고쳐 매고 바람막이의 허리끈을 조였다. 그 사이 도항선이 하우목동항에 정박해 거대한 턱을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배에서 내리는 인파 사이로 몸을 숨기며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응, 아들. 잘 지내지? 지금 어디냐?" 제주로 내려오고 한 달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우도 하우목동항으로 들어오는 도항선

  제주로 가는 길, 장흥 노력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눈을 떴다.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래된 흑백 영화의 화면처럼, 부딪히는 빗줄기에 창문이 긁혀나갔다.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창문에 기대앉아, 조각이 난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광주는 거센 빗줄기에 갇혀 멀어졌다. 곧 버스는 요금소를 빠져나왔다. 아스팔트와 흙길을 번갈아 달리기를 두어 시간, 비는 멈췄고 창문에는 손때 묻은 풀 자국 같은 비가 마른 흔적만 남았다.                

  항은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대합실로 들어가 번호표를 뽑아 들고 빈자리에 앉았다. 캐리어와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깃발이 꼽힌 배낭을 짊어진 등산가들, 낚시 가방을 메고 한 손에 아이스박스를 든 낚시꾼들, 각각 아이의 양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 부부, 맞춰 입은 옷을 입고 찍었던 사진을 구경하는 커플들. '딩동.' 그때 번호 표시판의 숫자가 바뀌었고, 나는 창구로 걸어가 번호표를 내밀었다.                    

  “수고하십니다. 저…”     

  “신분증 주세요.” 직원이 유리벽의 작은 틈으로 손을 내밀었다. 직원이 손을 빠르게 움직이자 기계가 찰깍하며 표 한 장을 뱉어냈다.      

  “몇 시부터 탑승하나요?” 나는 표를 받아 들며 물었다.     

  “있다가 방송할 거니까 앉아서 기다리세요.” 직원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네."

  나는 곧바로 대합실을 빠져나왔다. 입구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주자창 한 편의 벤치로 가 앉았다. 커피를 다 마시고, 자갈 하나를 손에 쥐어들고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난간으로 향했다. 옅은 안개가 떠 있는 바다는 잔잔했다. 새벽 아버지와의 인사가 떠오르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 갈게요…. 건강하세요.”     

  “이젠 헛짓거리 좀 그만하고, 잘 살아라.”                    

  헛짓거리. 아버지는 그와 함께 살았던 내 삶을 그렇게 정리했다. 축축한 공기들이 가을로 스며들던 비 내리는 새벽, 배웅의 인사는 이별 쪽으로 머리를 숙였다. 아버지는 식사 때마다 해왔던 기도처럼, 침착하고 단호하게 선언하듯 말했다. 차라리 아무 말도 없었으면, 단둘이 있을 때처럼 ‘그래.’ 하고는 돌아섰으면 했다. 짧고 빠르게 던져진 그의 한마디는 잔잔한 바다에 던져진 작은 돌과 같았다. 수많은 고리를 남기고 멀어지다, 이내 사그라질 파문과 그 아래 오래 가라앉을 작은 말들. 이렇게 하나씩 쌓인 말들이 내 마음을 채웠겠지.


  나는 제주도에서도 조금 떨어진 우도라는 섬의 요양원에 일을 구했다. 회사에서는 사연을 알 수 없는 빈 집들 중 하나를 빌려 내게 내주었다. 한 달이 막 지났을 때 첫 야간근무에 투입됐고, 요양원에서 밤을 보냈다. 섬의 모든 돌담길과 이어지는 중앙로의 2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이, 내가 일하는 요양원이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오자 교대 근무자들이 출근했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지난밤 있었던 특이사항을 인계했다. 뭉친 어깨에 가방을 멘 채로 공 어르신 방으로 향했다. 발소리만 듣고도 나를 알아챈 어르신이 물었다.     

  “하늘에 갈 거?” 흰 머리칼처럼 빛바랜 어르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 할머니. 저 이제 가요” 내 실루엣을 알아본 듯, 눈동자가 멈췄다.

  회사에서 빌려 다시 내게 내어준 집은 포구로 가는 길목의 오래된 흙집 중 하나였다. 공 어르신이 어렸을 적, 그러니까 80년 전쯤에는 그 동네를 하늘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동네의 끝에는 섬에서 가장 높은 오름과 포구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 있는데, 그 끝에 하늘과 바다로 향하는 길이 있는 셈이었다.

  내 기억 속 공 어르신은 집착적으로 삶을 살아낸 인간이었다. 당시 백수의 연세에도 기억력이 신기할 정도로 좋았다. 요양원 생활이란 게 일정한 계획대로 흘러가는 무료한 일상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르신은 달랐다. 시력을 거의 잃어 달력을 보지도 못했음에도, 직원들의 복잡한 근무 일정을 계산하거나 언제 어떤 직원과 무슨 대화를 했는지를 기억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오는 둘째 손녀와 또 그 세 딸의 나이와 학교, 동네 사람들이 면회 와서 들려주는 소식을 기억했다가 내게 들려주었다. 백내장과 뇌졸중으로 인한 우측 편마비로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냈지만, 어르신은 누구보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녀의 그런 집착 같은 태도가 부러웠다.

  “혼저 갑서, 아저씨. 큭큭” 아저씨라니. 요양원에서 일한 지 한 달. 공 어르신과 나는 종종 이 문제로 설전을 벌였다. 서로의 기싸움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동안 나는 밤샘의 피로를 날려 보냈고, 어르신은 그 큰 목청으로 먼지와 쩐내가 가득한 실내를 환기시켰다.

       

  “총각, 오늘 여기서 살 거?” 지난 밤, 첫 야간근무를 앞둔 내게, 어르신이 물었다. 섬에 들어온 지 한 달, 모든 것이 낯선 환경은 온 힘으로 나를 밀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섬 생활은 기대했던 것만큼 낭만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잿더미처럼 둘러싸여 있었고,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지난밤 놓고 온 외로움을 집안에서 몰아내려 취하길 반복했다. 도망치듯이 떠난 광주에서의 기억이, 기어코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익숙지 않은 일에 대한 피로와 앞날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는 첫 야간근무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살다니. 어르신의 물음은 단순히 당신의 저녁식사와 약들을 챙기고 기저귀를 갈아줄 사람을 확인하는 게 아니었고, 고향을 떠나 온 내게 건네는 위로였다. 외줄 위를 건너듯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내겐 이렇게 들렸다.

  '오늘 밤은 여기서 살다 가거라.'

  “네, 할머니. 저 오늘은 여기서 살게요." 나는 어르신의 귀 가까이에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아침 퇴근길에 본 우도의 바다


  다음날 아침 퇴근길에 본 섬의 가을바다는 하늘을 품어 더 푸르렀다. 그 위로 막 몸을 돌린 도항선의 날숨이 안개처럼 깔려 들어왔다. 자전거를 대여하는 곳의 직원들은 인파 속 어딘가를 향해 손짓을 해댔고, 검은 고무 옷을 입은 해녀들은 줄지은 차량행렬을 피해 갓길을 위태롭게 걸었다. 땅콩 부대를 한가득 싣고 섬을 오르는 경운기의 털털거리는 소리에 맞춰, 올레꾼들의 셔터 소리가 터졌다 사라졌다. 찰칵. 추수가 끝난 땅콩 밭 위로 부리를 쪼아대는 까마귀 떼와 수평선에서 솟아오른 오름들이, 잔뜩 찡그린 관광객들의 인상 속으로 찍혀 들어갔다. 나는 배에서 내리는 인파 사이로 몸을 숨기며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응, 아들. 잘 지내지? 지금 어디냐?"

  "이제 퇴근해요, 그리고 저 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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