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프로토콜의 등장
미러 프로토콜로 성장하고 있던 테라는 2021년 3월, 앵커 프로토콜을 출시하면서 성장을 가속화하게 된다. 테라 블록체인에서 블록을 만들고 검증하는 검증인(validator)들은 일정량 이상의 루나를 스테이킹(staking)하여 검증인이 될 자격을 얻는다. 이때, 루나를 스테이킹한 지분율만큼 블록을 만들고 수수료를 받을 확률이 발생하므로 검증인들은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루나를 위임(delegate) 받고 이익을 공유하였다. 이때 위임한 자산의 위임을 해제(undelegate)하고 싶으면 3주를 기다려야 했다 (루나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 중에는 3주를 기다리기 싫어서 유동화를 시키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앵커 프로토콜은 위임 혹은 스테이킹 된 자산에 대한 유동화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이었다. 유저가 루나를 앵커에 스테이킹 하면 그 즉시 bLuna라고 하는 유동화된 자산을 받을 수 있었고, bLuna를 가지고 있으면 스테이킹 수익은 받을 수 없었지만 bLuna를 과담보로 잡고 UST를 빌릴 수 있었다. 또한, 유저들은 앵커에 UST를 예금하고 연 20% 고정 이자를 받을 수도 있었다. 즉, 앵커 프로토콜은 자산 유동화 및 담보 대출 서비스였던 것이다.
테라폼랩스(TFL)의 비전은 다음 세 가지 기본적인 금융적 요소(primary financial primitives)들을 통합하는 것이었고, 앵커 프로토콜은 그 마지막 조각이었다.
(1) UST를 이용한 지불결제
(2) 앵커 프로토콜을 이용한 예금 및 대출
(3) 미러 프로토콜을 이용한 투자
이 중에서 (1) UST를 이용한 지불결제는 차이를 통해 구현하려 했으나 규제에 막혀 실현하지 못했다. 차이가 하고자 했던 것은 원화에 페깅 된 스테이블 코인인 KRT를 차이 카드에 충전해서 지불결제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앵커에는 두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대출자에게도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예금자에게 20%의 고정 이자율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전통 금융의 관점에서 보면 둘 다 말도 안 되는 금융 메커니즘이었지만 앵커는 블록체인 어플리케이션이었기 때문에 이런 설계를 할 수 있었다. 그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대출자에게 지급하는 이자
앵커 프로토콜의 대출자들은 앵커 프로토콜의 수익을 공유받을 수 있으면서 거버넌스 기능을 가진 ANC라는 토큰을 이자로 지급받았었다. 사실 이렇게 대출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블록체인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대표적인 예로, 2020년 6월에 이더리움의 컴파운드(Compound)라는 대출 서비스에서 COMP라는 토큰을 예금자와 대출자에게 공평하게 분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에서는 왜 예금자뿐만 아니라 대출자에게도 이자를 지급할까? 그 이유는 블록체인에서 과담보 대출을 할 만한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출을 통해 레버리지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과담보가 아니라 일정량의 증거금을 넣고 돈을 빌리는 무기한 선물 거래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과담보로 잡은 토큰의 포지션을 유지한 채로 급전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면 돈을 빌릴 이유가 거의 없다. 하지만 대출 서비스에서는 대출량이 늘어나야 대출 이자를 통해 프로토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프로토콜의 지분 역할을 하는 거버넌스 토큰을 발행하여 지급해서라도 대출을 일으키고 싶어 한다. 그러면 유저들은 그 토큰을 받기 위해서 과담보 대출을 하고 그 대출금을 다시 예금하고 대출하는 식의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받는 토큰의 양을 극대화시키고 싶어 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런 식으로 레버리지 대출을 하는 사람들은 담보로 잡은 코인의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큰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앵커 프로토콜에 레버리지 대출 및 예금을 했던 사람들은 루나의 가격이 폭락할 때 큰 손해를 입기도 했다. 이러한 위험과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목적으로 과담보 대출이 일어나야 하는데, 만약 루나의 스테이킹 이자를 받으면서 과담보 대출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예금자에게 제공하는 20% 고정 이자율
20% 고정 이자율, 이 부분이 바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이자율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2019년 4월 23일, 테라가 런칭되었지만 테라 생태계에는 변변한 어플리케이션이 없었기 때문에 트랜잭션 볼륨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테라 커뮤니티는 벨리데이터와 위임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기금을 모으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19년 8월 8일, 21개의 검증인들이 그 당시 잠긴 루나 물량의 1/10인 21.7M 루나를 모아서 약 10%의 연 스테이킹 이자율을 제공하는 산타 프로젝트(https://github.com/terra-money/santa)를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테라 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하자 산타 프로젝트는 2019년 12월 26일 조기 종료되었고, 높아진 트랜잭션 볼륨으로 인해 루나의 스테이킹 이자율은 여전히 10% 언저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앵커의 20% 이자율은 루나의 10% 이자율에 기반한 것이다. 앵커에 루나를 스테이킹하여 bLuna를 받으면 루나의 11% 스테이킹 이자는 앵커 프로토콜로 들어간다. 이때 유저가 bLuna를 맡기고 50% LTV(Loan-To-Value ratio)로 UST를 빌린 후 다시 예금한다면 이론적으로 앵커는 예치된 UST에 대해 20%의 이자율을 제공할 수 있다. 즉, 담보로 예치된 루나(bLuna) 가치의 절반에 해당하는 UST가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된다면 예금자에게 20%의 이자율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된 루나 가치의 절반보다 많은 UST가 예치된다면 고정 이자율 20%는 제공하기 어려워진다 (소폭일 땐 대출 이자로 충당할 수 있다). 따라서 앵커 프로토콜이 지속 가능하려면 변동 이자율 정책을 택하는 게 당연했지만 테라폼랩스는 20% 고정 이자율을 제공하는 앵커 프로토콜을 테라의 시그니처 어플리케이션으로 내세우고 UST의 사용처를 늘려서 앵커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전략을 택한다. 아무튼 앵커의 등장으로 UST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루나의 가격 역시 미친 듯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혹자는 루나의 스테이킹 이자율인 10%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기존의 금융 기관들과 달리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루나를 스테이킹한 홀더들에게 모두 나눠주기 때문에 충분히 10% 이자율을 지급할 수 있다. 블록체인 시스템에서는 벨리데이터들의 노드 유지 비용을 제외하면 인건비나 임대료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단, 트랜잭션 볼륨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루나의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게 되면 자산의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에 스테이킹 이자율이 낮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