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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Aug 30. 2024

아무도 응급실을 모른다

응급실 뺑뺑이의 근본 원인

 “어지러워요.”     


  사람은 극심한 통증이나 이상이 있으면 응급실로 온다. 이때 응급실 의사의 역할은 두 가지다.      


 첫째, 진단이다.      


  어지러운 원인은 크게 1. 뇌 문제 2. 귀 문제 3. 내과적 문제다. 뇌혈관이 터지거나(뇌출혈) 막혀도(뇌경색), 귀에 돌이 있어도(이석증), 부정맥이 있어도, 혈압이 떨어져도 어지럽다. 원인은 무수히 많다. 정확하고 빠른 진단이 필요하다. 뇌출혈이나 뇌경색인데 어지럽다고 환자가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귀 문제인 이석증인데, 신경과에서 MRI를 찍고, 심장내과에서 심장 검사를 하면, 귀중한 시간과 돈이 낭비된다.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 첫째다. 이것을 응급실 의사가 한다.      


둘째는 치료 및 연결이다. 


 어지러워서 환자가 왔고, 응급의학과 의사가 검사를 통해 뇌출혈이라고 진단을 내렸다고 하자. 그러면 응급의학과 의사는 신경외과 의사에게 뇌출혈 환자를 넘긴다. 일종의 바통터치다. 수술할지, 아니면 지켜볼지는 신경외과 담당이다. 


 물론 다리가 잘린 환자가 왔다면, 정형외과가 중심이 되겠지만, 출혈이 심하다면 가장 기본적인 여러 조치(수혈을 하고, 상처를 소독하고, 출혈 부위를 압박하는 등)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하게 된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진단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치료를 동시에 하면서, 필요한 과를 정하여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응급실 뺑뺑이가 왜 생길까? 응급실 의사가 없어서가 아니다. 응급실 의사가 연결할 신경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의사가 없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모가 병원을 돌다 구급차에서 출산했다고? 응급의학과 의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출산을 받아줄 산부인과 의사가 없어서이다.     

 

<응급실 의사는 출산 못 받는다니까>

 

 환자가 의식 저하(증상)로 왔다고 가정하자. 의식 저하의 원인은 대략 천 가지는 된다. 응급실 의사가 각종 검사를 통해 뇌 CT상 뇌출혈(진단)임을 알았으며, 수술(치료)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하자. 그러면 수술(치료)을 할 신경외과 의사와 마취과 의사 그리고 중환자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술할 신경외과 의사가 없거나 마취과 의사, 그리고 중환자실이 없으면? 수술할 신경외과 의사와 마취과 의사, 그리고 중환자실이 있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 보내면 된다. 하지만 전원이 어렵거나 안된다면? 보호자는 “뭐라도 해달라.”라고 의료진의 옷을 잡고 매달리겠지만, 응급실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화기를 들고 다른 병원에 전원 여부를 알아보는 것뿐이다.      


 결국 환자가 신경외과 수술을 못 받거나, 또는 너무 늦게 받아서 죽게 되었다면 보호자는 당장 눈앞에 있는 의사에게 “치료할 수도 없으면서 왜 환자를 받았냐?”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소송을 건다.      


 실제로 “얼차려 훈련병 사망사건”의 경우, 가혹 행위를 받은 훈련병이 의식 저하(증상)로 왔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근육이 녹아 신장이 파괴되는 횡문근 융해증, 신부전, 열사병(진단)으로 판정했다. 하지만 환자는 망가진 신장을 대신하여, 신장 투석을 해야 했고, 신장 투석은 기계는 물론이고 신장 내과 의사와 중환자실이 있어야 했다. (투석 기계만 있다고, 의사가 다 돌릴 수 있는 거 절대 아니다.) 속초의료원에는 신장내과 의사와 투석 기계가 없었기에 신장내과 의사와 투석 기계가 있는 강릉 아산 병원으로 전원 조치했고, 치료 도중 사망했다. 그러자 당시 속초 의료원 의사는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을 뿐 아니라, 의사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아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비난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살인자가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자, 담당 의사가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고 살인자 취급을 받는 꼴이었다.      


 이러다 보니, 의사와 병원은 뇌출혈(진단) 환자를 안 받는 것은 물론이고, 의식 저하(증상)가 있는 환자 자체를 안 보게 된다. 참고로 같은 의식 저하(증상)라도 단순 저혈당(진단)이었다면, 포도당만 수액만으로도 깨어난다. 뇌출혈 환자만 치료를 못 받는 게 아니라, 저혈당 환자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응급실을 찾은 경증 환자들만 소리를 지른다.      


 의식 저하(증상)만이 아니다. 흉통(증상) 또한 같다. 흉통의 원인은 1. 심장 문제(심장내과 또는 흉부외과) 2. 폐 문제 3. 위 식도 문제 4. 피부, 근육, 골격 문제 5. 정신적 문제이다. 흉통의 원인이 심근경색인 경우, 심장내과가 보게 된다. 그런데 병원에 심장내과 진료가 안 된다? 그러면 아예 응급실에서 흉통 환자 자체를 안 보게 된다.     


 응급실 뺑뺑이는 응급실과 응급실 의사 문제가 아니다.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High risk, Low and law return)으로 인한
바이탈과 의사(응급실로보면 배후과) 부족이 문제다. 

 흉부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일반외과, 내과 등 바이탈 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기과도 이미 부익부 빈익빈으로 위험한 파트(정형외과 중에서도 외상 및 소아 파트, 안과 중에서도 망막 박리나 외상 파트, 성형외과에서도 재건 파트 또는 수부 파트 등)는 의사가 없다.  


 과를 막론하고, 응급 많고, 위험한 파트는 씨가 말랐다. 그래도 정규 시술과 수술은 어떻게 버티고 있으나, 응급 시술과 수술은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게 대책이라고?>

 하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국민과 정부, 언론과 119는 당장 눈앞의 응급실 의사에게 비난을 쏟아낸다. 힘이 없는 응급실 의사는 그만둘 뿐이다. 응급실 의사가 없어지면, 119 뺑뺑이도 사라지고, 비난할 의사마저 사라질 것이다.       


<의사 대이동 예정>

 2024년 추석은 ‘민족 대이동’에 ‘환자 대이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전에 ‘의사 대이동’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번 추석 모두 아프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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