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맛본 동해발 한국식 패스트푸드, 고기부터 국수까지 완벽한 코스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하자면 김고로는 최근에 동해에 간 적이 없다, 노포 중화요리인 덕취원과 오리불고기로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입맛을 사로잡은 도시이며 그 외에 아직 경험하지 못한 더 많은 미식당들이 있기에 언제나 시간과 환경만 만들어진다면 자주 가는 도시이기는 하나 잘 갈 수 없는 점이 그저 아쉬울 뿐. 하지만 먼 옛날부터 만들어진 '체인점' 혹은 '프랜차이즈'라는 시스템 덕분에 동해에서 시작된 '장군시오야끼'의 맛을 강릉 1호점에서 맛볼 수 있기에 동해 본점까지 직접 갈 수 없는 그 아쉬움이 완화가 됨은 반갑다.
오래간만에 강릉을 방문한 고양시 일산구에 거주하는 바리스타 곰군이 대학교 시절 자주 갔었다는 추천에 따라, 김고로도 궁금하던 차에 '장군시오야끼' 강릉 1호점이 있는 시내로 향했다. 장군시오야끼는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동해가 본점이 있고 영동지방에는 강릉에만 서너 군데, 속초에도 분점이 있는 영동지방의 인기 프랜차이즈다. 광고나 취급하는 음식만 봐서는 체인점인지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을 해보면 바로 동해가 본점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사랑하는 피자집인 샌마르가 있는 문화의 거리로 나서서는 강릉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대로의 뒤편, 주차장들이 모여있는 뒤편의 먹자골목으로 들어가면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마라샹궈, 양꼬치와 풍미가지를 맛있게 먹은 중국미도의 좌측에 '장군시오야끼'가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릉에서는 택지와 포남동에도 같은 프랜차이즈가 자리를 잡고 있지만 김고로가 이 앞을 지나가면서 봤던 모습은 저녁에 이 가게가 술손님과 밥손님으로 가득 차있는 풍경이기에 여기가 괜찮은가 짐작했다.
"저는 여기 단골이죠, 강릉에 있을 때 뭐만 있으면 친구들 데리고 자주 왔었죠. 대학 졸업식 때도 왔었고 어머니가 강릉에 놀러 오셨을 때도 왔었고... 저녁을 밖에서 먹어야 하는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으면 오고... 여하튼 자주 왔었어요."
강릉에서 대학교와 직장 생활을 포함 10년을 거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간 곰군은 이미 가게 안에서 자리를 잡고서 나와 이쁜 그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쩐지 바깥에서 기다리지도 않고 미리 안에 들어가서 익숙한 손님처럼 앉아있는 모습이란, 단골 가게는 손님에게 심적인 안정감마저 선사하는구나.
"그래서 망설임 없이 여기로 오자고 했구나, 나는 네가 추천하는 집에서 먹었던 적은 잘 없으니까, 무한 리필 고기구이집 아니면 말이야."
"그런데, 여기 '시오야끼'라면서 메뉴들이 다 붉은색이네?"
사실 '시오'라는 말은 일본어로 '소금'을 뜻하는 말이라 고기에 소금간만 해서 담백하게 볶아먹는 요리인줄 알았건만 (처음 동해에서는 그렇게 시작했을지도 모르지) 매콤 달콤한 풍미를 열기와 함께 뿜는 파절이볶음을 얇은 대패삼겹살 구이에 함께 넣어서 비벼 먹는 철판요리음식이었다. 아직 저녁 6시도 되지 않은 이른 저녁의 시간이었지만 2, 3팀 정도가 주변에 앉아서 식사를 하며 술자리를 갖고 있었고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그리 일찍 온 사람들은 아니었다.
"네, 여기 매콤한 고기랑 파랑 볶아 먹어요. 형, 매운 음식 잘 드세요?"
"아니, 나는 잘 못 먹어, 아내는 잘 먹지."
"응, 나는 잘 먹는데. 너는?"
바리스타 곰군은 이미 더운지 이마를 물티슈로 쓱 닦으며,
"저도 매운 음식을 매우 못 먹는 '맵찔이'에 속해요."
"그럼 기본 맛으로 주문해서 먹자. 그거 먼저 먹고, 추가적으로 더 어떻게 먹을지 결정하자."
"네, 그래요."
곰군이 부엌 쪽으로 몸을 돌려 종업원 선생님께 주문을 하는 사이, 주변을 쓱 둘러본다. 이전에 이곳을 지나갔을 때는 바닥이 모두 좌식을 된 다리가 짧은 식탁들이었는데, 입식 의자에 앉는 다리가 긴 식탁으로 깔린 테이블로 10팀은 조금 넘게 앉을 수 있었고 들어오는 입구의 우측에 바로 보이는 전처리 식탁과 음식 제조대에서는 배달 및 포장으로 들어온 시오야끼를 조리하기 위한 불판들과 배달용기들이 쌓여있고 그 너머 주방에서는 또 다른 음식들이 만들어지고 끓여지는 모습들이었다.
"여기는 철판들이 한 40도 정도로 기울어져 있네?"
"네, 삼겹살을 볶고 나서 기름 빼기에도 좋고 볶기도 편하고, 우리가 먹기도 편해요."
받침다리의 한쪽이 다 빠져서,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간이 가스레인지(부르스타) 위로 시오야끼를 식탁 위에서 즉석으로 볶아내기 위한 철판이 올려져 있고, 음식을 주문하자마자 주방 뒤켠에 무시무시한 칼날을 보이며 자리 잡고 있는 육절기에서 바로바로 썰려서 나온 대패삼겹살들이 한 움큼 철판 위로 올라와서 익어가기 시작한다.
치이 이이익
역시 잘 익어가는 삼겹살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냄새, 그리고 구워지는 모습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고기의 작은 오케스트라는 사람들의 눈, 귀, 코와 입을 자극하며 침샘이 입안에서 호수를 이루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
"안 그래도 배고픈데, 이거 보니까 돌아버리겠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형, 이것만 다 구워지면 금방 다 되어요."
곰군이 말이 끝나자마자 부엌에서 스테인리스 사발에 울긋불긋한 파절이 무침이 가득 담아 오신 점원 아주머니께서 철판에 내용물을 붓고서는 센 불에 지글거리는 철판 위의 고기와 함께 볶는다, 그렇다, 붉은색의 고기는 진지한 파괴력을 가졌다, 제육볶음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잘 익은 대패 삼겹살과 파절이를 가위와 집게를 이용해서 무자비하게 조각조각 낸다, 사각사각 소리와 지글지글 소리가 또 다른 음악을 연주하며 질풍과 같은 여사님의 손놀림에 삼겹살과 파절이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가라앉아서 서로를 꽉 붙잡고는 불판 위에서 구르며 파절이 양념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입가에 군침이 싹 돈다.
"형님, 누님, 먼저 드시죠."
"그래, 너도 어서 들어."
집게로 고기들과 파절이를 휘감아 집어 들고 개인접시로 덜고서 젓가락으로 고기부터 일단 먹어본다, 김고로에게는 처음 보는 방식의 조리법과 음식이기에 천천히 접근한다.
쫄깃쫄깃
삼겹살은 누가 생각해도 맛있는 고기다, 얇게 썰려서 쫄깃한 육질에 고소한 비계가 함께 씹히는데 거기에 매콤한 고춧가루가 함께 팍 터지면서 신맛과 단맛이 순차적으로 혀 위로 안착하며 굴러들어 온다. 고기에 매콤과 달콤이 섞이면 조건 없이 맛있다, 고기 한 점에 손이 바빠지는 식탁의 3인이었다.
파절이를 볶으면 누가 맛없다고 했는가? 나는 아직 들어본 적은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파채를 썰어서 매콤 달콤한 양념에 삼겹살과 함께 볶는다는 생각을 한 '장군시오야끼'의 창업주는 천재임에 분명하다. 고기에 아삭하고 알싸한 파채가 있는데 매콤 달콤한 양념이 섞이면 왜 안 맛있겠는가. 삼겹살이나 고기에 파절이나 양파절임을 함께 곁들여 먹을 줄만 알았지 왜 볶아먹을 줄은 몰랐을까, 멍청한 김고로.
아삭하면서 치아 사이로 튕기는 파채들이 씹히며 기분 좋게 얼얼하며 알딸딸하기까지 한 매움을 주지만 거기에 은근한 달달함과 고춧가루의 한층 톤이 높은 매운맛이 입안에서 씹힐 때마다 팍팍 터진다. 매운가 싶더니 거기에 부드럽고 고소한 육질과 기름의 삼겹살이 혀와 입안으로 흐르면서 다시 파의 식감과 어울려 씹힌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새콤한 맛이 가미된 얇고 고소한 제육볶음을 먹는 기분이라고 묘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제육볶음에게나 시오야끼 서로에게 실례 혹은 모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육은 제육, 시오야끼는 시오야끼니까. 다시 한번 젓가락을 들어 아작아작 거리면서 파절이와 고기를 후루룩 흡입한다.
"후우, 하아..."
매콤하고 달콤한 이 뜨거운 고기와 채소의 볶음을 씹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먹으니,
"형, 이거 좀 더 시켜드릴까요?"
처음 먹어보는 새로운 시오야끼의 세계에 몰입하여 풍미를 만끽하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를 보는 곰군, 흐뭇하게 바라보며 추가 주문을 언급한다. '아니'라고 절대 답하지 않는다, 이렇게 처음 맛보는 신세계에서 더 질펀하게 뒹굴고 싶다. 김고로는 곰군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보이며 '진행시켜'라는 몸동작을 보인다.
"이게 고기요리인데 가볍고 매콤하고 상큼해, 거기에 섬유질인 파절이까지 얹어지니까 굉장히 가볍게 느껴져. 왜 이걸 여태까지 안 먹고살았을까."
"나도 이거 몇 번 안 먹어봤는데, 처음 먹는 느낌이야."
그들의 추가 주문에 다시 육절기에서 나온 대패삼겹살에 미리 볶아진 파절이가 어우러지면서 한판을 다시 먹는 그들. 오후 5시가 안 되어서 들어왔는데 메인 메뉴인 시오야끼를 다 끝낸 시간은 오후 5시 20분, 거의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마치는 시간과 같으니 이건 한국식 패스트푸드가 아닌가.
"빨리 나오고, 맛있고, 구미를 강하게 당기는 맛. 한국인의 ㅁㄷㄴㄷ네."
"그러게요, 우리가 진짜 빨리 먹기는 했어요. 여기 치즈볶음밥이 맛있으니 같이 드시죠."
"그래, 우리 밥 2개만 볶자."
"여기 치즈볶음밥을 먹으려면, 파절이랑 고기를 세 숟가락 정도만 남겨놓으면 좋아요."
"그렇지, 볶음밥을 먹으려면 메인 메뉴의 흔적들이 조금 필요한 법이니까."
고슬고슬한 밥에 김치, 콩나물, 김가루가 함께 휘리릭, 촥 볶이다가 밥으로 바닥이불(?)을 깔고 그 위에 분쇄된 모차렐라와 체다치즈가루들을 얹고 다시 밥으로 얌전히 덮어준다. 그리고는 약불로 유지하면서 기다리면 볶음밥의 완성.
"밥은 생각보다 간이 세지 않네."
"응, 그냥 심심한 김치볶음밥에 치즈를 넣은 맛이야."
"자극적인 시오야끼에 반해서 담백한 맛이라서 더 맛있네."
"여기서 치즈볶음밥을 안 먹으면 아쉽거든요, 덜 찬 배도 채우고요, 히히."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그 이후 그 옆을 지나가는 김치말이국수의 자태를 보고서는 다시 홀려서 김치말이국수까지 시원하게 흡입하고 식사를 마쳤다. 그렇게 많이 먹었음에도 불구 한국인의 패스트푸드인 장군시오야끼에서 보낸 시간은 30분이 채 지났을 뿐이었다.
"곰군, 고마워, 덕분에 처음 오는 식당에도 와보고 맛있다는 사실도 알았으니까."
"맛있게 국수까지 드시니 제가 다 뿌듯하네요."
이제는 강릉에서 떠날 시간이 다 되어가는 곰군을 배웅하기 위해 그들은 뜨거운 불판 앞을 떠나서 다시 또 뜨거운 강릉의 늦여름 거리 위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