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름을 시원하게, 제호탕
수도권과 전국의 많은 관광객들과 지방살이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강릉, 이 중형 휴양도시에서 이미 산 지도 열 손가락으로 세워야 하는 년수가 지난 김고로와 이쁜 그녀.
강릉에 거주하지만 강릉이 고향이 아닌 그들이 이번 여름의 짧은 여행지로 정한 곳은 경기도와 서울. 수원에서 김고로의 어릴 적 은사님을 뵙고 나서는 말로만 듣고 시식해 본 적은 없는 음료인 '제호탕'을 맛보러 가기로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어느 미식작가님의 미식체험기를 통해 정보를 습득한 제호탕은, 조선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수원의 궁중 음료다. 김고로가 아는 바에 의하면 영조 임금과 정조 대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조선 후기 때, 사도 세자의 아내였던 혜경궁 홍씨의 저서인 '한중록'에 뒤주에 갇혀 갈증을 호소하던 사도 세자가 궁녀가 몰래 넣어준 제호탕을 마시고서 목마름과 타들어가는 목을 식히며 한숨을 돌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는 정조 대왕께서 수원 화성을 축조하던 인부들이 무더운 날 더위를 먹고 힘들어하지 않도록 제호탕을 제조하여 마시게 하고, 더위를 다스리도록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제호탕을 언급하고 있는 문헌 중에 가장 오래된 허준 선생님의 '동의보감'에는 여름날의 더위와 목마름을 그치게 한다고 하였다, 무려 그 조선의 명의 허준 선생이 그렇게 보증을 서주는 음료이다.
이 말인즉슨, 제호탕은 더위를 다스리는 데에 특효인 음료라는 것. 평소에도 몸에 열이 많아서 쉽게 몸이 뜨거워지는 김고로와 같은 체질의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음료임을, 그는 직감했다.
김고로가 초등 고학년부터 해외로 떠나던 중학교 시절의 끝자락까지 머물렀었던 영통구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 수원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팔달문으로 대중교통을 타고 건너왔다. 마침 한국의 휴가철이기에 대한민국에서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는 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눈에 담기 위해 수원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행렬도 쉽게 보였다.
현재 제호탕을 판매하고 있는 수원의 '카페 단오'는 수원 행궁동의 공방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행궁동 공방거리에서 조금만 더 발걸음을 옮기면 화성 행궁이 있지만, 김고로가 당일 수원을 방문한 목적은 은사님과 함께 점심을 먹고 제호탕을 마시는 일이라 외국인 관광객들을 따라 함께 행궁을 방문하지는 않았다.
성수기인 7월 말과 8월의 도입에 걸쳐 있는 그 한 주, 대한민국은 여전히 폭염을 지나고 있었고 수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과 차량들 사이에서 걸음을 옮길수록 체내에 수분이 생각보다 많은 사실을 증명하듯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검은 접이식 새시로 된 정문을 통해 카페 단오의 내부로 들어가면 우측에 바로 보이는 음식 전시용 냉장고와 부엌, 그리고 손님들이 머무는 공간은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온 장식품들과 패브릭으로 된 액세서리들이 매달리거나 놓여있는 벽과 천장 아래로 삼삼오오 모여 앉을 수 있는 자리.
우리가 방문했던 점심 이후의 시간에는 이미 근처의 행궁을 방문하려고 왔던 외국인 손님들도 커피를 마시며 SNS를 즐기고 있었다.
"많이 덥다, 이제 제호탕이 정말로 시원함을 가져오는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야."
"그래, 나도 제호탕 먹을래."
김고로가 읽었던 문헌에서는 제호탕은 조선시대에는 귀한 재료였던 '얼음'을 넣은 물에 가루로 제조되어 있던 제호탕을 타서 마시면 가슴속이 시원해진다고 하였다.
이를 증명하듯 카페 단오의 제호탕은 슬러시보다는 굵은 잔얼음들이 가득한 커다란 도자기컵에 기포가 없는 콜라와 같은 겉모습이다. 자세히 보면서 향을 맡아보니 상큼하고 달콤한 매실의 냄새가 올라와서 매실청을 진하게 탄 냉매실차와 같다.
실제로 제호탕의 주 재료가 맑은 꿀과 매실이고 거기에 열을 다스리는 한약재들이 들어가다 보니 달콤하고 차가운 매실음료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후루룩
사각거리는 얼음이 입안에서 씹히면서 매실의 진한 향이 입천장과 후각세포, 미각세포까지 두드리며 일깨운다. 새콤한 맛이 후욱 들어오며 과일맛만 있는가 했더니 중간부터 박하와 은단의 중간과도 같은 시원함이 입안과 목구멍에 향기를 남긴다.
"와... 새콤하면서 시원한데?"
"매실에서 민트맛이 나."
카페 단오에는 에어컨이 구비되어 있어서 누구나 여름날에 시원한 공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김고로는 알았다, 제호탕을 마시고 나서 머리 꼭대기부터 목구멍과 등줄기를 따라서 이상하리만치 상쾌하고 서늘하게 느껴지는 기운은 에어컨 때문에 생긴 감각이 아님을.
김고로는 몸 안에 내공이 순환됨을 처음 느껴본 초보 무협인처럼, 몸 안에 흐르는 냉랭한 감각에 대한 신기함에 놀라며 다시 제호탕을 한 모금 마신다.
후루루룩
사각사각
얼음들이 어금니 사이에서 으스러지며 매실 과육들이 막 터져버린 듯 매실향이 폭포처럼 입안에 용솟음친다. 그렇게 매실의 냉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음기 가득한 빙공을 맞은 자국만이 남는다.
"이게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체내가 점점 시원해져 가는 느낌이야."
체내에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가진 김고로라서 그런지 몰라도 제호탕을 마시면 마실 수록 불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김고로는 다시 한 모금을 머금으며 입에서 제호탕의 맛을 음미한다.
꿀에서 나오는 달콤함의 최고점으로 시작해 매실의 새콤한 맛이 꿀송이를 달고서 혓바닥에 투하된다. 거기서 끝났다면 제호탕은 지금도 우리가 편의점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초록색의 매실음료와 다를 바가 없겠지만, 음료가 몸 안을 적신 지점에서부터 몸 안 구석구석으로 은단과 같은 한약재 향기가 섞인 시원한 박하향이 뻗어나간다.
"새콤달콤한데 거기서 끝이 아니야."
"그렇지? 상쾌하고 기분도 좋아져."
그리고 몸 안에 퍼진 박하향은 몸 안의 중심에 똬리를 틀고 냉기로서 나의 열기를 제압한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차가운 도시 남자의 느낌이 온몸에서 느껴진다.
"제호탕의 한약 성분이 실제로 효과가 있나 봐. 에어컨 때문이 아니라 몸 전체가 시원한 기분이야. 실제로 이거 먹으면서 더운 날에 일하면 그나마 낫겠는걸."
"나도 그래, 신기하다."
제호탕이 담겼던 사기사발의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끝까지 신묘하고 차가운 음료를 비운 그들은 다시 에어컨이라는 기기는 존재하지 않는 더운 태양 아래의 행궁동 공방거리로 나섰다.
"정말 묘하네, 제호탕을 마시기 전보다 훨씬 덜 덥게 느껴지네."
"기분 탓인가? 아니면 정말로 제호탕 덕분일까."
"일단은 제호탕 덕분에 그렇다고 해두자, 그게 더 기분이 좋잖아."
"그래,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