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현지인이 한국에서 말아주는 타코, 못 참지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추석 명절, 김고로의 일가친척이 모여서는 부산에 내려가지는 않았다. 부산에 가는 차표를 예매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달력을 보고 있을 때 마침 아버지께서 연락이 오셔서는
'올해부터는 추석 명절에 제사를 드리지 않으니 꼭 안 내려와도 된다.'라고
하시는 말씀에 이쁜 그녀와 협의를 했다. 우리의 명절 선택지는 매년 비슷하다. 김고로의 부산, 이쁜 그녀의 춘천, 혹은 다른 제3의 여행지.
금번에는 꼭 부산에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김고로는 이쁜 그녀의 가족들이 있는 춘천에서 추석을 지내고 싶어졌다. 길게는 아니고 한 이틀에서 사흘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었다.
"춘천? 그래 좋아, 금요일 낮에 가서 느긋하게 한 3일 있다가 오자."
"응, 가보고 싶었던 곳도 가보고 그래야겠어. 김유정 문학촌에 가보고 싶었거든."
그렇게 그들은 역대급으로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저녁을 피해, 그다음 날인 개천절의 낮에 춘천으로 출발했다. 사람들이 많이 움직일법한 교통체증을 피해 순조롭게 춘천에 도착한 그들은 마중을 나오신 장모님과 함께 점심도 먹고 공지천에서 오리배도 타며 낮 시간을 보냈다.
춘천의 이름난 브루어리인 '감자 아일랜드'에서 국내 농산물로 만들어낸 독특한 맥주들을 사 오는 길, 이쁜 그녀는 각 도시의 재래시장 구경하기 좋아하는 김고로를 위해서 남춘천역 근처 철로 아래 늘어져 있는 춘천 풍물시장으로 그를 이끌었다.
이제 막 저녁 6시가 넘은 터라 유동 인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부지런한 시장의 상인 분들은 저녁 장사를 준비하며 분주하게 굽고 지지고 끓이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시장을 뚫고 지나가던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눈과 귀에 춘천 풍물시장에서 볼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타코! 타코! 맛있는 타코 있어요!"
"따꼬스! 따꼬스!"
시장의 작은 포장마차 크기에 녹색, 흰색, 빨간색 무늬 바탕으로 독수리가 뱀을 잡아먹는 모양이 중앙에 멋지게 박힌 국기, 멕시코 국기를 걸고 철판에서 고기를 굽듯이 볶으며 아내분으로 보이는 여성분과 스페인어로 '타코'를 홍보하는 백인 남성.
굵은 흰 실에 빨래집게로 붉은색, 검은색과 음식들과 메뉴들의 그림을 걸어놓고 그 앞에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빨간 나초 과자들이 나란히 누웠다. 형광등에서 나오는 밝은 주백색의 조명 아래 하늘색 캡모자에 숯과 같은 회색의 앞치마를 두른 커플이 타코를 외치며 사람들을 불러 세우는 모습. 김고로의 눈에는 고기가 볶아지는 향연과 '치익'하는 그 소리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김고로는 'TACO BOY'라고 쓰인 간판을 보고 그분들을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아쉬운 표정으로 지나쳤다, 저녁에 이쁜 그녀의 오빠네 부부와 장모님을 모시고서 집밥을 먹기로 했던 것이 다시 기억났기 때문이다.
"음, 아쉽다. 멕시코 사람이 싸주는 타코를 언제 또 먹겠어."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지으며 지나가는 김고로를 보며 이쁜 그녀가 팔을 딱 잡고 세운다.
"그러면,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못 먹어서 후회하지 말고."
"그, 그럴까? 멕시코 현지인이 말아주는 타코, 못 참지!"
김고로는 '아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얼굴이 활짝 펴지며 몸을 휙 돌려 타코 가판대로 '돌격 앞으로'.
지나가려던 손님이 다시 몸을 돌려서 오자 무언가 어색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있으시던 사장님들 부부도 반가운 기색으로 메뉴를 설명해 주신다.
"타코는 이렇게 돼지고기, 초리조, 닭고기, 새우 등으로 조합된 메뉴들이 있고요 가면서 드실 수 있는 '도리로코'도 주문할 수 있으세요."
일반적으로 먹을 수 있는 타코 메뉴 외에도 사람들이 잘 아는 짭짤 매콤한 타코 과자에 타코 재료들을 넣어서 먹는 도리로코까지, 지나가면서 노상 식탁에 앉아 맥주 한 캔이나 주변에서 생맥주 한잔 내려서 같이 먹으면 훌륭한 메뉴렸다.
김고로는 잠시 생각하고는 결정했다, 메뉴 사진을 봐서 돼지고기는 무조건 맛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고 닭고기나 새우보다는 초리조가 훨씬 더 기름지고 식감이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돼지고기랑 초리조 타코로 주세요. 먹고 갈게요."
"네, 잠시 기다려주세요."
연두색으로 반짝거리는 노천 의자와 탁자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으니 타코 보이의 앞을 지나가며 관심을 보이거나 주문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그에 따라 경직되어 있던 표정과 몸짓이 더 여유롭고 즐겁게 변하는 사장님들을 보며 김고로는 자신이 오늘 이 집의 첫 손님이겠거니 생각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타코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김고로가 한국에서 봐왔던 타코는 최대한 현지에서 쓰는 재료를 사용한 타코들이었다. U자로 구워낸 옥수수 전병에 피코데마요, 고수, 과카몰리 등이 잔뜩 들어가고 2개에 2만 원이 가까운 저렴하지 않은 가격. 거기에다가, 김고로에게는 중요한, 포만감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김고로는 한국에서 타코를 사 먹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
재료 구성을 보니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가성비 좋은 타코를 만들어냈다. 고수나 다른 멕시코 현지 채소보다는 상추로 대체하고 피코데마요는 너무 맵거나 시지 않게 상큼함을 느낄 수 있는 토마토, 양파와 피클로만 구성했다. 그 위에 달착지근하고 투명한 칠리소스와 모차렐라 치즈로 토핑. 그 안에 가득한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초리조가 들어가면 반박 불가로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렇게 머리를 45도로 기울여서 한입..."
우적우적
또르르르륵
육즙과 기름이 흘러넘쳤다, 타코에서 미끄러져 나와 종이 그릇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고기인 듯 고기가 아닌 듯 쫄깃하고 부드럽게 씹힌다. 여러 겹 쌓인 반질반질한 닥종이가 빗물에 찢어지듯 김고로의 눈이 번쩍 떠지는 식감과 돼지고기의 훈연향이 코로 올라오며 치아 사이에서 튀어 오른다.
그 사이로 부드럽게 갈려 형성된 초리조의 짭짤함과 푹신함이 으깨지며 누구에게나 반가운 짠맛이 입안에 안개처럼 흩어진다. 거의 미끄러지듯 혀 위에서 구르는 초리조의 조각들이 아삭한 토마토, 피클, 상추와 함께 씹히며 채수와 섞인다.
한국에서 자라나는 토마토만의 짭짤함과 슴슴한 감칠맛, 거기에 새콤한 피클의 아삭함, 눅진하고 끈적한 아보카도의 식감과 맛이 돼지고기와 찰떡궁합이다.
매콤 달콤한 칠리소스와 유지방의 맛을 더하는 마요네즈가 화룡정점을 찍으며 마지막을 장식한다.
"와우! 타코가, 이렇게 맛있네!"
멕시코의 타코라는 맛의 틀 안에서, 한국의 재료와 멕시코 맛의 풍미가 합쳐져 얇은 밀전병 안에 맛과 식감이 연쇄다발처럼 터진다. 특히나 가는 실이 뭉쳐진 듯 찢겨 나온 돼지고기의 결들이 가뭄에 비 오듯 내리더니 입안 가득 육수의 저수지를 이룬다. 그 위에 채소의 상큼함과 초리조의 짭짤함이 육수 표면에 파동을 일으키며 타코를 먹으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김고로는 타코에서 흘러내리는 육즙이 아까워 혀로 연신 타코 겉을 핥는다. 그럭저럭 맛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맛이 좋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그였다.
"여기 타코 내일도 먹고 싶다. 춘천에 올 때마다 먹어야겠어. 가격도 착하고 맛도 좋은데."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가판대 앞에서 타코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 살아있는 호객 행위가 되었는지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타코 보이에 와서 타코를 주문하고 포장해 가고, 그 앞에 눌러앉아 타코를 먹는다.
"하아, 여기에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지 않는 행위는 죄악인데."
"고로야, 참아. 그건 집에 가서 가족들이랑 먹기로 했잖아."
"그래, 그래. 참아야지."
김고로는 멕시코 사장님이 그들을 흘깃 보며 반응을 살피자, 김고로는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며 스페인어로 맛있다며 'delicioso'를 외쳐준다. 사장님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목례하고 고맙다며 'gracias'로 응답해 주신다.
김고로는 두, 세입에 고깃국물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타코가 아쉬워 타코칩 과자에 타코 토핑들을 올려 버무려주는 '도리로코'를 주문해서 한번 더 비슷한 맛을 음미했다. 과자의 매콤 달콤한 양념이 이미 강하기 때문에 원래 타코를 먹던 맛보다 자극적이지만, 오히려 맥주가 한잔 있다면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도 와야겠어, 타코 하나로만 성이 안 차네."
"그래, 그렇게 하자."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사장님들께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며 자리를 정리한 후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다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