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학 | 칼럼
언젠가부터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지 않고 있다. 올렸다 하더라도 삭제해버리기 일쑤다. 게시물들끼리 통일성이 없는 것 같고, 내가 가꾼 선택적 표현에 위배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매사 생각하는 게 이젠 피곤하기만 하다. 자기표현의 장에 필요했던 타인의 시선이 되레 올가미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나를 꼭 드러내고 싶은 욕심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 자신과 타협하고 단 하루만 노출되는 스토리에 가끔 일상을 올리고 있는 정도다. 지인들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나아가 부계정을 이용하기도 한다. 지인들이 볼일도 없고 신상이 파헤쳐질 일도 없어 부담을 덜어준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자신만의 취미와 해시태그를 마음껏 나열할 수 있어서 여러 계정을 사용하는 추세다.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과 달리 보통 클로즈업된 이미지 하나만으로 승부를 본다. 글은 사족에 불과하다. 서너 줄의 토막글도 안 된다. 글을 세련되게 쓰는 방법은 간단하다. 단어와 이모티콘 또는 한 문장 정도면 된다. 이 정도면 글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온라인상 촌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면 따라주는 게 맞다. 더 중요한 것은 해시태그이다. 해시태그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들 즉, 지역명, 상호, 브랜드명 등으로 몇 개만 해놓는 것이 센스 있고 세련된 것이다. #즐거움, #맞팔, #길동이일상 등은 아니꼽게 보인다. 부캐 계정에서나 쓰일 것들이다. 이것이 나름의 규칙이다. 어떤 사진을 올리고 첨언하는지까지 계속 자신을 검열해야 한다. 난 이 모든 게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일절 해시태그를 달지 않는다. 게시물을 올릴 엄두가 안 난다.
MZ세대가 인스타그램을 하는 이유는 소득 양극화와 관련 있다. 사회적 배제에서 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도태되지 않음을 입증하려고 자기를 어떻게든 표현해낸다. 사회적 존중을, 가치를 하트(좋아요)와 댓글을 통해 입증하고 자아실현을 만끽한다. 하지만 이는 항상 좋게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약점이나 위로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게시물이 될 수 없다. 이미지는 직관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좋다. 바디 프로필과 호캉스 그리고 명품 Flex, 훈훈한 외모에 따른 협찬 등 모든 정사각형의 피드는 자랑으로 점철되어 있다. 나르시시즘의 향연이 펼쳐진 지 오래다. 여기서 겸손은 미덕이 아니다. 자기표현은 곧 자본주의 행동 양식으로 드러난다. 당연한 결말일 수도 있지만 슬프기만 하다. 대부분 과시적 소비가 동반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충동적인 소비를 한다. 또는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아서 동조 소비를 한다. 카드빚을 내면서까지 말이다. 우월한 것처럼 보이는 인플루엔서와의 동일시를 통해 안정을 추구하지만, 빚만 늘어나고 수치심만 커진다. 돈이 없는 내 모습이 서럽다. 스스로 또는 누군가 묻는다. 돈 괜찮아?
인스타그램은 몸이 좋든 나쁘든 자신의 신체를 못마땅하게 만든다. 검색 피드에는 이상적인 몸들로 넘쳐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몸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 동일시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매력적으로 통용되는 몸을 만들어서 동일시하고자 하는 대상과의 일체감, 만족감을 느끼고자 한다. 미디어에서 요구하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현실인데, 매일 SNS를 하다 보면 섹시한 신체는 지금 당장 매 순간 요구된다. 끊임없이 비교해야 하는 굴레에 빠지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에 불만족을 느끼게 되고 자기파괴까지 나아간다. 시중엔 다이어트약은 기본이고 지방흡입 또는 체형조각술까지 해결 방법이 다양하다. 이상적인 신체가 성공의 조건이 되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사회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은데, 남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만 커진다. 몸은 사회적 존중을 바라는 중요하고도 그릇된 수단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수많은 이미지와 짧은 동영상 릴스의 나열은 더 문제다. 알고리즘은 내가 관심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모아서 보여주는데 그 끝이 없다. 계속 스크롤을 내리면 관련된 이미지, 영상이 계속 나타난다. 이전의 것에서 다음 것으로 내려 볼 때, 눈의 초점은 흐려진다. 또는 뭉개진다. 일반적으로 게시물은 초 단위로 본다. 계속 피드를 내리다 보면 눈은 서둘러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몇 분만 지나도 피로 때문에 눈이 아프다. 게시물은 반려동물에 이어 피트니스에 이어 음식에 이어 연예인에 이어 패션 등 맥락 없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신경계는 민감해지고 집중력은 떨어진다. 매사 산만해지려고 작정을 한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인쇄 매체를 읽을 때는 한 주제에 관해서만 접한다. 일정 부분 무엇을 본다는 행위가 갈수록 퇴행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매사 연관성 없는 것들이 제시된다. 집중할 것이 없다. 자극에 이어 또 다른 자극만 있을 뿐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는 빈도가 줄었다. 들어가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었다. 오랫동안 피로가 누적된 것이다. 삶의 중심에 내가 아닌 타인을 놓으라고 강조하는 분위기 때문에 말이다. 가끔 올리는 스토리와 맛집 검색이 전부다. 기술은 항상 양면적이고 쓰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미생물들의 세계를 올리는 계정들과 나사를 팔로우했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보는 것은 마음 편하고 좋은 일이다. 거기에는 동일시할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인스타그램을 떠나지 못하고 작은 도피처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른 사람이 뭐 하고 사는지 관심 없던 사람도 기웃거리는 곳이다. 나 또한 화려한 세상이 궁금해 언제 튀어 나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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