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강사, 초등학생 대상 캐릭터 글짓기 강연을 하다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인 나는 가끔 공공기관에서 초등생 대상 글짓기 강연을 진행한다. 재능 기부 봉사에 가까운 형태지만 강연자가 직접 강연 기획부터 진행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해야 하기에 봉사 며칠 전부터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강연의 타이틀은 ‘창작을 위한 캐릭터 글쓰기 클래스’다. 사실 ‘창작을 위한’이라는 수식어는 없어도 크게 상관없다. 내 강연은 어떠한 특정 목적을 가지기보다 수강생들이 자신의 최애 캐릭터를 공유하고 이와 관련하여 자유롭게 글을 써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점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최애 캐릭터는 무엇인가요?”
강연을 진행할 때마다 내가 항상 물어보는 필수 질문이다. 이 질문을 처음 마주했을 때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수강생들이 적잖이 존재한다. 살면서 나의 최애 캐릭터가 무엇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은 까닭이다. 이럴 땐 나는 나의 최애 캐릭터부터 먼저 공유한다. 이 글에서 고백하자면, 사실 내 최애 캐릭터는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당시 <미생>을 꽤 재밌게 본 기억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주인공인 장그래에게 많은 감정 이입이 됐다. 이제 막 중학교 졸업한 애가 장그래한테 감정 이입이 됐다고 하니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만약 내 동년배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장그래를 내 최애 캐릭터로 소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클래스의 수강생의 평균 연령은 많아 봐야 고작 열두 살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초년생의 대표 아이콘이나 다름 없었던 장그래지만, 초등생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뿐이다. 결국 이 강연에서만큼은 내 최애 캐릭터는 수강생 대부분이 알 법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가 된다. 수강생의 평균 연령대에 맞춘 자료 제시, 말투, 행동을 따지는 것은 강연자의 필수 덕목이다.
(다시 강연 현장으로 돌아와서) 내가 놀란 건 바로 아이들의 입에서 생각보다 다양한 장르와 매체의 캐릭터가 나왔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웹툰 물론이거니와 문학 작품, 웹소설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상상해서 만들어낸 캐릭터를 최애로 고른 친구들도 있었다. 창작과 글짓기 관련 수업이라 그런지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거나 이야기 창작에 강한 열의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괜스레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최애 캐릭터 소개를 듣는 시간에는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몇몇 투니버스 출신 만화 캐릭터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그들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텔레비전 속 만화 캐릭터 친구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언가를 깊이 애정하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늘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눈 탓에 창작 활동 시간이 줄어들어 시간 분배에 조금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수강생들과 최애 작품, 캐릭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이따금 작품 속 누군가를 떠올리며 울고, 길을 걷다가 문득 아름다웠던 장면이나 문단이 생각나서 배시시 웃기를. 이러한 작은 순간들이 학생들 삶을 더 풍요롭고 충만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어릴 적 좋아했던 작품의 주인공은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어 내 곁에 머물러 있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최애 캐릭터는 아마 아이들을 지켜주는 유년 시절의 아주 멋진 친구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