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글방 마지막 모임은 5월 말, 마지막 수업은 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책방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서 하기로 했다. 수업을 빙자한 피크닉! 포트락 파티를 위해 각자 고른 음식들을 조금씩 준비해 오기로 약속했다. 그날은 즉석 글쓰기를 하기로 한 날이라 미리 써가야 할 과제도 없었다. 덕분에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양손만 무겁게 일산으로 향했다.
돗자리와 준비한 과일을 들고 약속 장소로 갔다. 글방 멤버들이 모두 도착한 후 공원이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를 펼쳤다. 7명이 두 끼는 먹을 수 있을 만한 음식들이 놓인 돗자리를 보니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른 느낌! 바쁜 아침 시간을 보내고 모이느라 다들 출출한 상태였으니 일단 싸 온 음식들을 함께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날씨도, 바람도 모든 것이 적당한 날이었다.
정말 맛있었던 그날의 음식들, 음식 사진은 크게 크게!
피크닉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글방 선생님께서 한 권의 그림책을 읽어 주셨다. 우린 모두 가만히 그림책에 귀를 기울였다. 그림책을 다 읽은 후 선생님께선 3가지 글쓰기를 제안하셨다.
1. 방금 함께 읽은 그림책 이야기
2. 나에게 글방이란?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3. 서로에게 롤링 페이퍼 쓰기
1번과 2번은 그래도 머리를 쥐어뜯으면 어떻게든 하겠는데 문제는 3번이었다. 방금까지 하하 호호 웃으며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멤버들 앞에서 편지를 써야 한다니! 롤링 페이퍼라.. 아마 대학 MT 때가 마지막 아니었을까..? 사실 MT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늘 취해서 의지와 상관없이 잠에 빠졌고, 다음 날은 뒷정리하기에 바빴으니까.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노란 종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OO 님께.라는 이름 하나 썼을 뿐인데 갑자기 손가락이 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한 사람만 떠올리며 마음을 담아 짧은 메시지를 쓰는 시간. 그 사람을 바로 옆에 두고 편지를 쓰려니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은 너무 좋았던 순간. 지금이 아니면 전하지 못할 마음도 있다는 걸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2021년 12월에 시작했으니, 21 개월 동안 2주에 한 편씩 글을 완성한 셈인데, 수치상으로 보면 마감을 지키는 일이 별로 힘들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본인의 의지로, 누가 시키지도 않는 글을 쓴다니. 매번 다음 글을 고민하며 한숨 푹푹 쉬는 사람들, 마감을 지키지 않는다고 곤란한 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한 편의 글에 마침표를 찍는 사람들, 서로의 고됨을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느리더라도 조금씩 함께 나아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신기한 사람들이 여기 있다.
책과 글로 연결된 관계들은 그동안 학교나, 사회, 혹은 아이들을 낳고 만난 엄마들의 커뮤니티와는 많이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성급하게 서로를 알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점. 이미 복잡하고 성긴 여러 관계 속에서 한참 마음 앓이를 하다 책 모임을 찾아갔던 나였다. 모임 안에서 느리지만 단단하게 쌓은 마음들, 덕분에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점차 안정을 찾았다.
야외 글방 수업을 마치고, 책방에 조금 더 머물다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서울로 돌아왔다. 아침에 서둘러 나가느라 미처 정리하지도 못 한 설거지와,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 놀다 그대로 두고 간 장난감들이 엉켜 있는 거실을 마주했다. 평소라면 한숨부터 쉬고 화풀이하듯 집안일을 시작하곤 하지만 이런 날은 뭐든 아무렇지 않다.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어린이집 가방을 휙 던져두고 아침에 어질러둔 자리만 쏙 피해 깨끗한 공간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나는 청소를 하다 말고 식탁 의자에 앉아 단톡방 속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가방에서 노란 롤링 페이퍼를 다시 꺼내 읽었다.
언제 읽어도 뭉클한 그날의 메시지들.
#이 글의 제목은 이화정 작가님의 <우리의 영혼은 멈추지 않고>를 빌려 쓴 제목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