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바이 싱글> 리뷰
인기 있는 연예인을 'star'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들은 주로 별에 빗대어진다. 빛나는 모습뿐 아니라 쓸쓸한 이면까지도 '멀리서 보면 반짝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초라하다'며 또다시 별에 비유된다.
별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대체로 사랑받고, 그 이야기엔 특징이 있다. 반짝이는 이들을 달래는 건 초능력을 지닌 외계인 혹은 재벌과의 사랑. 비현실적인 해결책은 다시 한번 이 이야기가 별들의 이야기였음을 상기하며 나와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하곤 했다.
그런데 여기 고주연이라는 배우가 있다. 그녀의 이야기엔 막장은 있어도 판타지는 없었다. 연예계 생활에 공허함을, '내 편'에 대한 갈증을 느낀 그녀가 해결책으로 남자 아닌 아이를 택한 게 신선했다. <별에서 온 그대>나 <뷰티 인사이드> 같은 마술 요소가 없다는 것만으로 고주연은 이미 나와 가까운 궤도를 도는 행성이었다.
<굿바이 싱글>
대한민국 대표 독거 스타의 임신 스캔들! 이번엔 제대로 사고 쳤다! 온갖 찌라시와 스캔들의 주인공인 톱스타 ‘주연’(김혜수) 그러나 점차 내려가는 인기와 남자친구의 공개적 배신에 충격을 받고, 영원한 내 편을 만들기 위해 대책 없는 계획에 돌입하게 되는데!
대표 독거 스타의 임신 발표는 전 국민 스캔들로 일이 커지고, ‘주연’(김혜수)의 불알친구이자 스타일리스트인 ‘평구’(마동석)와 소속사 식구들이 안절부절못하며 뒷수습에 동분서주하는데…
통제 불능 여배우! 그녀의 무모한 계획은 계속될까?!
사실 주연의 '내 편 만들기 프로젝트'는 재료만 현실적이지, 그 결과물은 폭탄과 다름없다. 중학생의 출산을 권하고, 아이를 돈 주고 산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고주연의 폭탄 만들기를 응원하게 된다. 특히 자칭 타칭 꼰대인 내가 그녀를 응원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 소름 끼쳤다.
안 될 줄 알면서도 지지한 건, 홀로 궤도를 도는 행성의 외로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간은 홀로, 오래, 특별한 존재감 없이 살아갈 거라고 한다.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트렌드 중 하나로 '스트리밍 라이프'를 뽑은 적도 있다. 영원한 내 것이 아닌 한 번 쓰고 흘려보내는 것, 개인주의에 익숙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고주연은 협찬만 넘칠 뿐 온전한 내 것이 없다고 했지만, 이는 비단 연예인만의 고충은 아니다.
존재감에 대한 갈망 역시 마찬가지다. 고주연 역을 맡은 김혜수의 드라마 <직장의 신>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닌 전구다. 트리는 홀로 빛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반짝이고, 빛나는 우리가 모여 트리를 밝힐 수 있다."
당시엔 이런 메시지가 참 감동적이었다. 모두가 주인공일 수는 없으니, 1순위로 주목받지 못해도 가치 있는 삶이라며 제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크리스마스트리가 될 기회를 준다면, 그때도 전구가 더 가치 있어 보일까? 전구 없는 트리는 허전하지만, 트리 없는 전구는 크리스마스의 상징조차 되지 못한다.
가짜 임신이라는 카드로 주연은 트리가 될 기회를 잡는다. 덕분에 이름만 주연이던 그녀가 진짜 연예계 주연이 된다. 협찬에 질렸다면서 광고를 찍고, 연예계 때문에 자칭 '진짜 내 편'인 아기는 홀대하는 게 제법 웃기다. 협찬에 질린 게 아니라 연예계를 향한 짝사랑에 지친 거였겠지. 꿈을 이루기 각박한 세상이라 그런가, 하고픈 일을 하며 에너지를 얻는 그녀의 모습이 좋았다. 녹을 줄 알면서도 기어이 눈사람을 만들듯, 망할 게 뻔한 그녀의 전성기가 짜릿할 줄이야.
보통 '싱글'은 애인 없는 사람을 일컫지만, <굿바이 싱글> 속 고주연은 애인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스스로 완전히 고립됐다고 생각한다. 주연의 가짜 임신은 연예계에서 그녀를 완전히 끌어냈지만, 사은품이 꽤 쏠쏠했다. 바랐던 아기뿐 아니라 아기 엄마 김단지, 그리고 발견하지 못했던 자기 편까지 인지했으니 말이다.
내 편 찾기는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마주 보는 사람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늘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만 보였다. 인기 많은 태양이 부러운 적도 있었고, 발맞춰 걸을 행성이 없어 쓸쓸한 날도 있었다. 근데 세상엔 내 곁을 도는 위성도 있다는 것. 이 식상한 메시지의 상기에 의외로 위로가 됐다. 고주연이라는 행성은 위성을 많이 거느린 행성이다. 소속사 대표부터 스타일리스트 평구, 매니저 미래까지 모두 고주연을 태양 삼고 줏대 있게 곁을 지킨다. 모든 건 외로운 고주연이 시작한 일이었고, 그녀는 자신을 태양 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봤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싱글 탈출'이다.
더 이상 주연은 외로운 행성이 아니다. 자기 삶을 꾸릴 수 있는 인생의 참 주연이 되었고, 혼인 신고와 출생신고가 '내 편'의 기준이 아님을 알았다. 어쩌면 근사한 마법도, 외계인도, 재벌이나 백마 탄 왕자님도 기대할 수 없는 이 현실에 가장 가능성 있는 해피엔딩을 제시한 게 아닐까.
태양만 바라보고 도는 행성은 외롭다. 나와 함께 돌고 있는 위성의 존재가 위로이길, 그래서 고주연처럼 모두가 마음속 외로움을 떨치고 ‘굿바이, 싱글’ 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