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에스프레소가 아메리카노가 되듯이..
규칙적이라는 것은 같은 시간과 방식을 반복한다는 뜻이다. 이 단순한 반복은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 삶에 안정과 익숙함을 선사한다.
대학교 3학년 겨울, 나는 단골로 다니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항상 손님으로 앉아있던 자리에서 서서 직접 커피를 만들게 된 것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메뉴판의 수많은 옵션을 보며 고객의 취향을 맞추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커피를 배우는 동안 나는 단순히 맛을 내는 기술을 넘어, 작은 차이가 어떻게 결과를 바꾸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 카페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학교 근처에 있어 자주 찾아오는 의리 있는 단골손님들이 많았다. 그분들은 사장님과 친근하게 대화도 나누시고, 카페에 대한 솔직한 의견들도 건네주셨다. 특히 커피의 맛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들은 사장님이 직접 내린 커피와 아르바이트생들이 만든 커피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는 미각의 소유자들이었다.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다른 커피맛을 낸다고 하시며, 체육 전공생인 내린 커피는 “힘 있고 균일하다”며, 특별히 나를 찾는 손님도 생겼다.
“당신이 내린 커피는 깊이가 다르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한마디는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분의 말에 호기심이 생겨 우리는 사장님의 허락 아래 실제로 맛을 자주 테스트해 봤고 실제로 몇 개월 간 연습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균일하게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나는 같은 에스프레소로도 완전히 다른 음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에스프레소는 모든 커피의 기본이며, 작은 변화로 다른 맛을 낸다. 원두를 갈고, 템핑(원두를 다지는 과정) 한 후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면 진하고 농축된 커피가 된다. 여기에 물을 더하면 아메리카노, 우유를 더하면 라테가 된다. 얼음을 넣으면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되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된다. 커피 음료의 시작은 모두 이 처럼 에스프레소 추출까지는 같은 방식을 반복적으로 진행하고 어떤 것들을 어떤 비율로 섞는지에 따라 다른 메뉴가 된다. 이 단순한 원리는 내 삶의 패턴과도 닮아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매일 아침 7시에 함께 식사를 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지켜진 이 습관은 나의 일상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배꼽시계’라 불리는 생체 리듬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형성된 규칙적인 생활은 대학시절, 그리고 직장 생활에 이르기까지 삶을 지탱하는 기본 ‘습관’이 되었다. 이 습관은 34살이 된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밥을 먹고 그날 해야 되는 것들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회사로 출근하면 일이 되고, 운동하러 가면 취미가 된다. 같은 패턴에서 시작되어 어떤 것을 섞는지에 따라 다른 일상이 되는 것이다. 아침을 먹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몸에 배었다. 이 습관은 직장인이 된 후에도 평일, 주말, 공휴일 가리지 않고 유지되었다.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 덕분에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건강 관리의 기본이 되었다. 규칙적인 건강 관리 습관은 9년 간의 직장 생활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가져다주었다.
덕분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첫 회사의 경영 악화로 이직하게 된 ‘두 번째’ 회사는 성실한 태도를 매우 중요시했다. 지각 두 번이면 권고사직을 받을 만큼 규율이 엄격했고, 출근 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 먼저 나가는 것이 문화였다. 업무 또한 규칙적인 패턴에 따라 진행되었다. 만약 내가 성실하고 규칙적인 습관을 지니지 못했다면, 두 번째 회사에서 만 4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과 함께, 나를 지탱해 준 또 다른 요소는 배드민턴이었다. 매일매일 회사의 스트레스와 광고주와의 잦은 술자리는 엄청난 체력을 요구했다. 조금만 게을러지면 쉽게 지치고 건강이 악화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주 주말은 배드민턴을 치러 갔다. 대학교 1학년 때 배드민턴 동아리를 가입해, 배드민턴을 배우고 취미로 시작한 배드민턴도 ‘14년’ 간 꾸준히 이어졌다. 3시간 동안 배드민턴만 집중해서 즐겁게 치고 나면 모든 걱정과 어려움이 잊어지고 즐거움과 건강함이 남았다. 이렇게 취미는 오랜 시간 직장 생활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평생 바꾸지 않아야 하는 요소들을 나는 ‘인생의 닻’이라고 표현한다. 바다 위의 배가 거센 파도 속에서도 닻을 내리고 중심을 잡듯이, 배드민턴은 내 삶의 강력한 스트레스들로부터 표류하지 않도록 단단히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기에 꾸준히 약속을 잡는 것을 좋아한다. 남들보다 뛰어난 체력과 습관을 가지고 있기에 소수의 인원은 매일매일 약속을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에서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기에 나는 그 콘텐츠로 배드민턴을 선택했다. 인생의 닻인 배드민턴을 계기로 사람들과 매주 정기적으로 모이는 규칙을 정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어떤 활동이든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볼링, 등산, 양궁, 롤러장 등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며 즐거움을 나눴다. 다양한 활동은 자연스럽게 모임 사람들 간의 이성 간의 만남과 관심이 따라왔고 모임장으로서 삼각관계, 사각관계의 상담을 해주느라 회사와 취미로 하루에 4시간도 못 잘 만큼 숨 가쁘게 뛰었다.
3명 이상이 모이면 모임이 되어 다양한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이 시기에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100명이 넘어가는 모임 내, 모임장을 욕심 내어 모임장과 회원 간의 분란을 조장하여 새로운 모임으로 40명의 인원을 데려가는 경험도 했다. 이 시기에 모임에 대한 현타가 오게 되어 모임 운영을 중단했다. 흔히, 도파민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고 하는데 너무 자극적인 자극은 통증을 유발하는 것 같다. 나는 즐거움과 고통이 동시에 오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처럼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할 때 큰 고통도 같이 오기에 가끔은 소소한 행복과 소소한 불행을 선택하여 잔잔한 일상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럼 서서히 나의 고갈된 에너지가 차올라 다시 큰 도전을 시도하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만 4년’. ‘48개월’의 시간은 4계절을 4번 반복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나의 라이프 시간은 그렇게 정해진 시간과 패턴을 반복하며 습관화를 통해 꾸준히 나아갔다. 때론 절망적인 목표와 일정으로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그런 순간에는 내 인생의 닻인 배드민턴과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흔들림 없이 이겨내고 꾸준한 성과로 만 4년을 견뎌낸 것이다.
첫 해에는 기본적인 패턴을 배우는데 집중했다. 회사에 출근하면 1층부터 2층까지 모든 회사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항상 밝고 기분 좋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빼빼로 데이가 되면 빼빼로는 10만 원 치 사서 직원 한 명 한 명 나눠 드렸다. 조직도를 보고 모든 조직도의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이름을 외웠고, 생일이 되면 생일 축하 연락을 드렸다. 광고는 어떤 단가의 금액과 조항으로 계약되었는지 세부 사항들이 중요하다. 그래서 모든 광고 계약서를 꺼내서 외우고 엑셀로 정리했다. 그래서 반드시 지켜줘야 되는 사항들을 우선순위에 맞춰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고,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채워진 성과는 앱 푸시와 이메일 추가 광고와 잔여 지면을 활용해서 노출 수와 클릭 수를 챙겨 드렸다. 이런 데이터로 보이는 세심한 챙김은 내가 있는 4년 동안 꾸준히 재계약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두 번째 해에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데 힘썼다. 매년 설정되는 KPI(핵심 성과 지표)는 전년도 대비 ‘최소 10% 이상’ 초과 달성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KPI를 초과 달성하지 못하면 성과급이 적게 들어와 연봉이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되기에 거의 무조건 지켜져야 했다. 그래서 기존에 계약된 업체는 기본적으로 유지되거나 같은 조건의 다른 업체로 유지되어야 했고, 반드시 10%는 새로운 계약을 준비해야 되었다. 그래서 지난 1년 간 쌓였던 업체와의 관계와 더불어 거기서 나왔던 반복 패턴에서 우수한 점만 요약하여 새로운 광고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했다. 그렇게 두 번째 해도 KPI를 13% 초과 달성 하였다.
세 번째 해에는 새로운 시도와 생각의 시간으로 집중했다. 3번의 초과 달성 된 업체와 실적이 기본으로 깔렸다. 기존 실적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기에 매월 같은 문구, 같은 이벤트, 같은 사람과의 반복되는 회사 생활이 필요했다. 반복된 생활은 안정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내 한계에 부딪힌 것 같은 불안감도 가져왔다. 매년 설정되는 초과 실적 목표는 다르게 표현하면 올해 내가 작년보다 10% 더 잘했다면, 내년에는 그보다 또 10%를 더 잘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지면과 광고 상품은 기존 업체들의 실적을 맞추기 위해 가득 찼고,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리워드 광고만을 활용할 수 있는 신규 앱을 기획하고 이벤트의 등록 및 활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고도화 기획을 진행하게 되었다. 다행히, 운영 효율성이 효과를 발휘하여 세 번째 해도 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있었고, 버티기에서 더 나아가 승진도 할 수 있었다.
마지막 해에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4년을 이겨냈지만 다섯 번째 해는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반복된 패턴과 끊임없는 성장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6년간의 ‘새로운 도전’과 ‘규칙적인 패턴’ 속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결심을 했다.
삶은 한 잔의 커피와 닮아 있다.
에스프레소라는 기본 위에 어떤 재료를 더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이 완성되듯, 우리의 일상도 규칙 위에 작은 변화와 선택을 더하며 만들어진다. 나는 앞으로도 이 기본을 지키면서 나만의 특별한 커피를 계속 만들어갈 것이다.
두 번째 회사에서 만든 커피 다음 단계로 나아갈
그 결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