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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Mar 13. 2022

상처받은 며느리들에게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지난 몇 년간 겪었던 고부관계에서의 상처들을 하나씩 꺼내어 쭈욱 늘어놓아보았다. 나름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에피소드들만 모아놓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실제 내가 겪은 것보다 농도 짙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물론 누군가에겐 별것 아닐 수도, 혹은 모르는 척 무시하고 넘어가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억지로라도 지우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라, 다시금 그때 떠올리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그간 시어머니, 남편, 지인들의 말만 듣고 스스로가 할 말 다 하는 당돌한 며느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글을 쓰면서, 또 댓글들을 보면서 나 역시 고구마 같은 며느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세대는 양성평등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남자 형제와의 차별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인 여성이 겪는 삶에 대한 학습은 엄마를 통해 이루어졌다. 무의식 중에 엄마가 해내는 아내의 역할, 며느리의 역할을 보고 배우며 자랐다. 결혼 후 갑자기 맞닥뜨린 세상에서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좀 이상한 것 같은데. ' 하는 생각이 들지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못한다. 나만 빼고 여기 사람들은 모두 이게 맞다고 생각하니까, 심지어 나 조차도 결혼 전엔 그랬으니까, 용기 내 맞서 봤자 결국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며느리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남편이 나서서 해결해 준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런 남편을 유니콘이라 부른다. 현실에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입 다물고 참기만 하면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부당함을 표현해야 한다.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그만두라고 말해야 한다. 그동안의 고부갈등에서 내가 후회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부당한 대우와 상처되는 경험을 겪고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 하고, 되려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했던 것. 두고두고 생각나며 나를 괴롭혔던 것은 시어머니의 행동이 아닌, 무력했던 나의 반응이었다. 시어머니에게 대든 직후에도 후회가 밀려오긴 했다. '아, 괜히 대들어서 문제만 키웠네. 그냥 참을걸. '하고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래. 그때 그렇게 대들기라도 했으니 속이라도 시원하다. '로 바뀌었다. 제 때에 표출된 부정적인 감정은 가슴속 응어리로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며느리들에게 좀 대들어도 된다고, 부당함에 대해 표현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100번 참고 한 번 터트리든, 한 번에 바로 터트리든 어차피 시댁에서는 똑같이 '싸가지 없는 며느리'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머릿속에 있는 어휘 없는 어휘 다 짜내 예쁘게 돌려 말해도 어차피 시어머니에게 반기를 드는 순간 '싸가지 없는 며느리' 되는 건 똑같으니 너무 애쓸 필요 없다. 두리뭉실 좋은 어투로 표현해봤자 잘 알아듣지도 못한다. 내가 느낀 바와 원하는 바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하자.


 며느리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했을 때, 바뀌는 시어머니도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때는 더 이상 고부관계에 미련을 갖지 말고 거리두기를 하면 된다. 연락이나 만남의 횟수를 줄이거나 아예 차단시켜도 좋다. 일단은 나를 보호해야 한다. 거리두기를 하다 보면 시어머니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애가 타는 쪽은 아무래도 시어머니 쪽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달라진 시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면 나름 해피엔딩이 아닐까. 물론 어느 정도 관계가 회복된 이후에도 일정 선은 유지해야 다시 갈등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부갈등이 생길 때마다 나 자신을 탓해왔다. 고부갈등의 시작은 언제나 나를 향한 시어머니의 지적, 비난, 질책 등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런 행동을 안 했더라면, 좀 더 신경 써서 잘했더라면 혼나지 않았을 텐데. '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면서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칭찬받을 거라 기대했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꼬투리 잡아 며느리 혼내고야 마는 모습들을 보며 내 잘못이 아님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시어머니가 원하셔서 계획에도 없었던 아이 두 돌 파티를 준비했는데 다음날 내가 했던 말 한마디를 지적하며 문제 삼으신 일이나, 아이 어린이집 입학 3일 뒤 전화드렸더니 왜 당일에 전화하지 않았느냐며 역정 내신 일 등등을 겪으며,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 시어머니의 비위는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며느리들은 고부갈등의 탓을 본인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며느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시어머니를 만족시켜 칭찬과 인정받고 싶어 했던 것, 그것 밖엔 없다. 더 이상 시어머니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을 지켜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믿어라. 반복되는 상처 속에 나를 방치하지 말자.


 시어머니가 밉다면 마음껏 미워해도 좋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하는 점은, 시어머니 때문에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망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종일 시어머니에게 받았던 상처들을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일은 그만 두자. 나의 소중한 하루를 미워하는 사람 생각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물론 그때를 떠올리며 내가 받았던 상처들을 돌아보는 일은 필요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몇 날 며칠이 지나도시어머니 생각만 하며 내 삶을 낭비하는 것은 곤란하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시어머니 생각으로 하루를 망치거나 밤새 잠을 못 이룬 적 많다. 미워하는 사람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상처 줬다는 사실, 지금 내가 시어머니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고 앞으로 행동 방향을 명확히 설정한 뒤에야 생각과 고민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면 몸이라도 바삐 움직이자. 혼자 생각할 시간을 만들지 말고 밖으로 나가거나 사람들을 만나자.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다. 스스로가 당당해져야 남편과 시댁을 대할 때도 자신감이 생긴다. 


 이 땅의 모든 며느리들이 더 이상 상처받는 일이 없었으면, 상처에서 벗어나 행복한 생각으로만 하루하루를 채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글이, 나의 아픔과 고민들이, 누군가에겐 위로로 가 닿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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