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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Mar 02. 2022

시어머니가 원하는 고부관계란?

가족, 근데 이제 상하관계를 곁들인.






 시어머니는 대체 어떤 마음이셨을까. 항상 궁금했다. 나에게 상처만 준 것은 아니었다. 더러는 친정어머니 이상으로 마음을 써주시곤 했다. 요즈음 대부분의 고부갈등은 대개 이런 식일 것이다. 시어머니는 잘해준다고 잘해주는데, 어쩌다 한 번씩 머리와 다르게 며느리에게 상처 주는 말이 툭툭 나가버리고, 며느리는 '그래도 평소에는 잘해주시니까. '하고 그 별것도 아닌 몇 마디 말들을 꾸역꾸역 참고 넘기다가 결국은 폭발해버리는.


 결혼 전, 어머니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언제 시간 될 때, 같이 쇼핑을 가지 않겠냐는 전화였다. 옷을 한 벌 사주고 싶은데 직접 가서 같이 고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며. 낯을 가리는 것뿐만 아니라 어른 공포증이 있던 나에게, 그것도 예비 시어머니와 단둘이 쇼핑을 간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예비 시어머니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예비 며느리랑 빨리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에,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을 뒤로하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백화점 매장 곳곳에 나를 데리고 다니며, 옷을 입혀보셨다. 꼼꼼히 이 옷 저 옷 골라주시며, 옷걸이가 좋아서 뭘 입어도 태가 난다며 칭찬셨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다행히 둘 모두의 마음에 든 옷을 고를 수 있었다. 시어머니에게 받은 첫 선물이었다.


 결혼을 며칠 앞둔 시점, 예비 시댁을 방문했다. 시부모님은 나와 남편을 앉혀놓고 꾸러미를 한가득 들고 오셨다. 남편 명의로 된 집문서와 땅문서, 그리고 시아버지께서 평생을 일 한 직장에서 공로상으로 받은 묵직한 금열쇠였다. 남편 명의의 집이긴 했지만, 그동안 한 번도 아들에게 문서를 쥐어주신 적은 없었다고 했다. 이제 결혼을 앞두었으니, 예비 며느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주고 싶었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싶으셨던 것 같지만 철없는 어린 며느리는 그저 속으로 '우와, 집문서. 우와, 금! '이라고 외치며 물건의 표면적 가치만 따지며 기뻐했다. 물론 겉으로는 조용히 "감사합니다. "라고 했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결혼 후 시어머니께 받았던 관심과 도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집 이사, 리모델링, 계약 관련 일 등등에서 어머니는 항상 우리 부부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일 처리를 해주셨다. 아기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도움을 주겠다 말씀하시곤 하셨다. 신혼 초 시댁과 멀리 떨어져 살 때 왕복 3시간 거리를 반찬만 전해주고 가신 적도 많고, 언젠가 내가 총각김치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신 후로는 매년 나를 위해 총각김치를 담가주신다.


 시어머니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셨던 것 같다. 첫째는, 며느리를 진짜 가족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 며느리를 새 가족으로 맞아 친해지고 싶고, 자신의 사람으로 품고 싶으셨을 것이다. 처음 만난 며느리가, 어머니라고 어찌 안 어색하고 안 불편하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다가가 소중한 것들을 내어주는데, 그런 마음을 며느리가 몰라주고, 어머니가 준 만큼을 내어주지 않았으니, 어쩌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며느리는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되었는데 시어머니 혼자 일방적으로 관심을 퍼붓고,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요구하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마음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충족되지 않은 마음이 간섭, 집착, 강요, 폭력으로 표현되고 며느리의 마음을 병들게 해, 결과적으로 처음 의도와는 정반대로 관계를 망쳐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는, 고부간 상하관계 정립 및 경, 대접받고 싶은 마음.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했지만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것을, 새로 들어온 가족인 며느리를 통해 보상을 받고 싶으셨던 게 아니었을까.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밑으로 누름으로써 본인의 자리를 높이고자 하셨던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예의 기준에 어긋나거나 요구에 수긍하지 않을 때마다 '네가 나를 무시하는구나!'라고 지레짐작하며 불같이 화내기, 며느리의 작은 행동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사사건건 트집잡기, 시어머니의 일은 자식이 아닌 며느리가 도와야 한다는 억지 주장, 주기적 막말을 통한 며느리 기 죽이기 등 많은 사건들이 같은 맥락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안부전화의 경우, 첫 번째 마음과 두 번째 마음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며느리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사실, 이 두 마음은 애초에 공존할 수가 없는 마음이었다. 며느리를 가족으로 만드는 일만 해도 쉽지 않은데, 거기에 수직적인 관계를 곁들인 가족이라니. 며느리 아닌 그 누구라도 이런 이상한 관계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고부관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헷갈려하며 이리저리 나부끼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어머니의 양날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욕심을 버리고, 한 가지 노선만 추구하셨다면 성공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두 가지 마음 모두, 며느리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거나, 불쾌하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만. 가장 베스트는 역시, 며느리와 수평적인 가족 관계를 만들 되, 서로가 마음을 열 때까지 천천히 시간을 가지며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혼을 하기 전에, 결혼을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고부관계가 지금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시어머니도 고부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 텐데, 그래도 며느리랑 잘 지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셨을 텐데 말이다. 시어머니도 건강한 고부관계를 경험하지 못했고, 처음 겪는 관계에 대한 지혜도 없으셨을 것이다.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상처가 많고 무지했기 때문인 것이다. 어쩌면 정말 '시어머니 학원'은 필요할지 모르겠다. 며느리 상처 주는 유명 대사 따위나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고부관계, 건강한 가족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학원 말이다. 물론, 시어머니 외에도 시아버지, 친정부모님, 남편, 아내, 형제자매 온 가족 모두 필수로 이수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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