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가 좀 말해도 될까요?
글이 쓰고 싶어졌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이루어진 대부분의 만남에서 화자보다는 청자의 입장에 특화된 인간이었다.
성격상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듣는 게 편하기도 했고 어떤 점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기 좋아했다.
하지만 평소에도 생각이 과도하게 많은 INFJ 인간이 평생을 그렇게 내 생각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감정들까지 계속 더해가며 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핀을 뽑아버린 수류탄처럼 폭발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나도 머릿속 생각들을 비워내야 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해 낸 나의 대나무 숲이 바로 ‘글’이었다.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일기를 쓰고 싶은 게 아니기에 이왕이면 다른 이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지금의 내가 다른 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
SNS와 인터넷상에서 자주 언급되던 몇 가지 주제가 떠올랐다.
‘연애, 결혼, 육아, 직장, 시월드, 반려동물...’
세상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그중에서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혼자가 편해진 지 너무 오래라 갓 튀겨진 치킨 앞에서나 뛰는 심장을 가진 내 삶에 ‘연애’ 카테고리의 흔적은 유물 발굴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결혼’ 카테고리는 생성 조차 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 하위 카테고리쯤 되는 육아나 시월드 역시 생성 불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삶이라 반려동물은 렌선 집사로 만족.
그럼 남은 건 직장인데.
직장 생활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첫 직장에서 직장생활의 매운맛(?)을 꽤 화끈하게 겪고 3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한 후 나에겐 더 이상 남들과 어울리는 직장생활을 해 본 기억이 없다.
(3년간의 파란만장한 직장생활을 늘어놓기에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일들이 대부분이라 얘기하다 보면 그저 분노로 가득 찬 울분 성토의 장 밖에 되지 않을 터.)
이쯤 되고 보니 살짝 자괴감이 들었다.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인생에서 저런 일상의 글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나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나요 나!! 그냥 나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누군가 내 이야기를 좀 들어줬으면 싶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치 않고 치킨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란 사람.
똑순이 언니와 나이차이 많은 남동생 사이에서 관심을 받으려면 똘끼라도 뿜어야 했던 나란 사람.
늘 괜찮다 말했지만 대부분은 괜찮지 않았던 나란 사람.
남들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지만 정작 내 이야기는 별로 하지 못했던 사람.
매일 남들의 이야기와 감정들로 뒤엉킨 내 마음에도 쉼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절실했다.
다만 뿌링클 치킨처럼 중독적으로 달콤 짭짤하지도 않고 땡초 치킨처럼 화끈한 불맛도 없는 인생이다.
하지만 ‘튜닝의 끝은 순정’ 이란 말처럼, 색다른 맛들을 찾아 헤매다가도 어느 날 문득 슬며시 생각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후라이드가 아니던가.
화려한 시즈닝은 없지만 별거 없어서 오히려 잔잔하게 스며들었으면 하는 이야기..
이렇게 살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그런 소소한 나의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청자’ 파업 선언!!
나도 이젠 ‘화자’가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