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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Mar 07. 2022

내가 지켜줄게 12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열두 번째 이야기 : 노랑이와 탄이 -


정확한 계절의 변화만큼 조합의 공사일정도 정확했다. 골목길은 악취로 뒤덮여 갔고 고물상 업자들이 훑고 지나간 집들은 앙상하기 그지없었다. 마을 입구부터 철거는 시작되었고, 포클레인의 엔진 돌아가는 소리 중간중간 들리는 건물 무너지는 굉음은 이제 곧 이 마을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하고 있었다.

보호소에는 구조된 아이들로 가득했지만 마을에는 아직도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몇 있었다. 노랑이는 찡찡이가 구조된 이후 함께 있던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여전히 얼굴만 내밀고 있을 뿐 포획틀을 멀리하고 있는 중이고, 사람들을 멀리하지 않는 노르웨이숲 탄이 또한 늘 그렇게 학생들과 숨바꼭질 중이다.


노랑이의 새로운 거처는 미장원으로부터 멀지 않은 집이다. 감나무가 지키고 있는, 마당이 아름다운 2층 집이다. 포획팀 학생들은 이 집을 지나갈 때마다 조심스레 마당을 들여다본다. 혹 노랑이가 보이지 않으면 재빨리 들어가 틀을 설치하고 나온다.


틀 안에 넣어두는 먹이도 매번 바꿔준다. 고급 캔부터 참치캔에 심지어 냄새로 유혹해 보기 위해 사람들이 먹는 치킨에 이르기까지 안 써본 음식이 없을 정도였다. 노랑이는 매번 틀 주변에 앉아 마당 바깥쪽 길을 쳐다보며 있을 뿐 틀에 놓인 음식에는 관심도 없다.


사실 노랑이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검은 철망으로 된 포획틀이 절친이자 보호자였던 찡찡이를 데려가는 것을 보았고 그때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상태일 텐데, 같은 철망에 들어가 구조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인간적 오만이자 무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이문냥이 사람들은 이 틀을 노랑이가 본 적 없는 하얀색의 커다란 틀로 교체했다. 하지만 이 틀은 단점이 있었는데, 사람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고양이가 들어가면 재빠르게 손으로 줄을 잡아당겨야 한다는 점이었다.


100% 수동이기 때문에 이 틀로 노랑이를 구조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계속 숨어서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학생 넷이 둘씩 조를 나눠 돌아가며 지켜보기로 했다.


하루가 지나가고 다른 날이 오고도 해는 다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그 무렵이었다. 냄새로 유인하기 위해 강한 생선 향을 지닌 싸구려 캔을 집어넣고 기다리던 때였다. 과기대 남학생 둘이 대문 바깥에 숨어 앉아 문틈 사이로 틀을 주시하던 그때였다.


노랑이가 집안에서 어슬렁거리며 마당으로 나왔다. 늘 그러듯이 틀 옆에 앉아 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름 직전 무너지는 마을의 독특한 쾌쾌함이 어물거리며 골목길을 감싸고 있을 때 갑자기 노랑이 시선이 새로운 틀로 향하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 썩어가는 냄새 속에 파묻혀 조금씩 꼬리를 내밀고 있는 그만의 향기로운 생선 냄새 때문이었을까? 노랑이의 엉덩이가 들어 올려지고 포획틀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한다. 포획틀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한 참을 머뭇거리던 노랑이가 킁킁거리는 코를 앞세우며 한 발씩 틀 안으로 향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탁!'


숨 죽이고 있던 학생들이 줄을 당기고 드디어 플라스틱 문이 내려앉았다. 갇혀버린 노랑이는 버둥거리지도 않았다. 체념하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현관 앞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노랑이가 구조되었다는 소식은 보호소에 알려졌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노랑이와 그의 수호천사 찡찡이가 다시 만나게 되다니...

보호소에 온 노랑이는 온순하고 밝기까지 했다. 원래 성격이 그랬지만 무엇보다 노랑이를 기다리는 찡찡이를 만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은 같은 케이지에 머물도록 했는데, 이전처럼 노랑이는 찡찡이에게 밥을 양보했고, 찡찡이는 노랑이를 감싸주고 지켜주었다.


보호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더운 여름날,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동안 이문냥이 입양 사이트를 통해 노랑이와 찡찡이에게 줄곧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입양하고 싶다고 했다. 본인이 외국에 나갈 수는 있지만 그러더라도 반드시 데려갈 거라는 약속도 덧붙였다.

입양 갔을 때의 노랑이와 찡찡이


동반 입양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둘 중 한 아이를 데려간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 한 아이라도 입양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에스펜도 이를 모를 리 없었지만 처음부터 동반 입양을 강하게 추진했던 아이들이 있었다.


남매인 바둑이와 하양이, 모녀인 코코와 미미, 그리고 친구 사이인 노랑이와 찡찡이다. 이들 중 노랑이와 찡찡이는 가장 먼저 너무나도 운이 좋게 그렇게 동반 입양을 갔고, 모든 것이 진한 우정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세상 일을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입양을 간 후 근 1년이 지나가던 어느 날 입양자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장거리 여행으로 노랑이와 찡찡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며 아무래도 입양을 포기해야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힘들까 봐 다시 보호소로 돌려보내겠다는 말이다.


아이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집사들과 함께 사랑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이지만 이 입양자는 이 부분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키우기 어렵다고 하는 반 강제적인 파양을 받아 든 이문냥이 사람들은 한 동안 편할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온 노랑이와 찡찡이

노랑이와 찡찡이에게 주어졌던 행운의 유효기간은 겨우 1년을 지나면서 종료되었다. 하지만 노랑이와 찡찡이의 우정은 보호소에 돌아온 이후에도 여전히 최고다. 노랑이가 위험에 처하면 찡찡이가 반드시 복수를 한다. 온갖 일에 다 참견하는 바람에 보호소 소장으로 불리고 있는 태평이도 노랑이를 혼냈다가 찡찡이에게 그렇게 당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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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이가 구조된 후 이제 남은 아이는 탄이 밖에 없다. 탄이의 거처 주변이 철거되고 있는 사정을 고려하면 당장 구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탄이는 소위 말하는 품종 묘이고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누군가 이곳에 버린 것이 분명한 아이다. 지금도 탄이는 학생들이 포획틀을 들고 지나갈 때면 언제나 담장에 올라앉아 이들을 바라본다. 그러다가도 누군가 다가서기라도 하면 한 발짝 물러선 뒤 사라져 버린다. 사람들이 다시 갈 길을 가면 그에 맞춰 탄이도 담장 위에 다시 나타난다.


절대 잡히지 않는 탄이, 마지막 남겨진 아이 탄이, 숨바꼭질의 대가 탄이. 하지만 이대로라면 오래지 않아 포클레인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당장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하는 긴급상황이었다.


결국 민과 은, 두 학생이 자원을 했다. 탄이의 숨바꼭질 놀이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이기 때문에 며칠 밤을 새더라도 반드시 구조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포획작업은 다시 원점부터 시작되었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되었지만 탄이는 그대로였다. 포획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밥과 물을 주지 않고 있는데도 탄이는 도대체 어디서 무얼 먹으며 이리도 힘들게 견디고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포획을 다시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는 저녁, 두 학생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지만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 믿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본다. 하필 밤이 되면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 내리면 포획틀을 설치하는 것도 힘들 뿐만 아니라 음식 냄새도 멀리 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구조가 어렵다.


하지만 둘은 힘이 들더라도 마지막까지 해보자고 서로를 격려하며 포획틀을 들고 탄이가 있는 집 근처로 향했다. 장마도 아닌데 비가 제법 세차게 내렸다. 우산을 쓰긴 했지만, 이미 둘의 몸은 젖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불빛도 없는 쓰레기 더미 골목길을 헤치고 탄이 옆집에 도착했다.

일단 포획틀이 비를 맞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버려진 철제 의자를 뒤집어 한쪽을 계단 위에 놓아 공간을 만든 후 위에는 쪼개진 큰 합판을 덮고 그 밑에 포획틀을 넣었다.


지금 탄이의 배고픔은 아마도 극에 달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장 냄새가 강한 캔을 꺼내 포획틀 안에 신문지를 깔고 올려놓았다. 시간은 밤 10시 25분. 이제는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틀을 설치한 후 두 학생은 일단 젖은 몸을 말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로 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고양이들이 주로 움직이는 시간이 새벽이고 지금까지도 동이 터갈 즈음 구조된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단은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둘은 컵라면에 소시지를 곁들여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민)'어쩌다가 내가 길고양이 구조에 이렇게 헌신하게 되고.. 이것도 운명인가? 나 원래 고양이 좋아하지 않았거든.'

(은)'나도 그렇지.. 근데 사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지금 이렇게 우리가 시간 낼 수도 없었을 것이고, 이것도 운명이겠지. 지금까지 구조한 아이들만 봐도 이문냥이도 대단하고.. 우리한테도 이런 열정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참 웃겨'

(민)'그래서 탄이 까진 반드시 구조하고 싶어 졌던 거야. 오기가 생기더라고. 내버려 두면 결국 죽을게 뻔하기도 하고.. 이번에는 꼭 잡아야 할 텐데..'


시간은 어느덧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비는 멈추질 않고, 골목길마다 빗물은 굵은 시냇물이 되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몸을 녹인 후 다시 포획틀에 가 보지만 탄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숨어 지켜보지만 보이는 건 빗줄기, 들리는 건 물소리뿐이었다. 결국 둘은 잠시 보호소에 가 있기로 했다.


보호소는 그래도 따뜻했다. 공간을 꽉 채운 아이들의 온기가 한몫했다. 둘은 차가운 바닥에 종이박스를 겹겹이 펼쳐놓고 그 위에 앉았다. 잠이 들면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벽에 등을 기댄 채 연신 커피를 타 마시며 온갖 이야기로 서로의 잠을 깨우고 있었다.


새벽 4시 50분. 보통 같으면 고양이들이 활동을 시작하기 좋은 시간이다. 이젠 가봐야 한다. 두 학생은 다시 옷을 단단히 여미고 플래시를 챙겨 일어났다. 비는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그칠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포획틀 가까이 도착했을 때는 거의 5시 3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발걸음을 조용히 놓아가며 조심스럽게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플래시로 포획틀 근처를 비추어 본다. 그때였다. 포획틀 위에 올려놓았던 합판이 움직이며 안에서 소리가 난다. 둘은 직감했다.


민은 서둘러 포획틀 가까이 가서 안을 비춰보았다. 눈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는 검은 탄이가 맞는 것 같았다. 더 잡힐 아이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확신을 해도 무방했지만,  그래도 밝은 불빛 아래에서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보호소로 돌아오는 내내 둘의 얼굴은 차가운 빗방울에도 불구하고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흥분의 감정이 머리 위를 뚫고 나갈 기세였다. 


'만약 탄이라면... 탄이를 잡다니.. 이건 정말.. 오 마이 갓..'


보호소로 돌아오는 길에 은은 에스펜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6시 가까이 되고 있었다.


(은)'여보세요.' 

(에스펜)'여보세요... 은이구나..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야?'

(은)'선생님, 저 은인 데요.. 탄이를 잡은 거 같아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 보호소로 가고 있어요.'

(에스펜)'응? 탄이를 잡은 거 같다고? 그럼 나도 지금 보호소로 갈게'


보호소의 밝은 불빛은 포획틀 안의 아이가 탄이가 분명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검은색 장모를 가진 노르웨이숲의 자태 그대로다.

에스펜과, 민과 은은 그렇게 비로소 구조의 일단락을 안도하며 아무도 없는 새벽 보호소 바닥에 앉아 모닝커피 한 잔으로 지난 여정의 소회를 환한 미소로 함께 나누고 있었다. 마지막 고양이, 탄이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학생들의 열정이 보호소의 새로운 아침을 열어가고 있었다.


- (예고) 보호소 매뉴얼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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