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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Jun 06. 2022

내가 지켜줄게 25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고양이들이 위로해 주고 -


"당신의 죽음이 존엄하길 원한다면,

먼저 삶이 존엄해야 하지 않겠는가?(게랄트 휘터)"


삶이 무료해서도 아니었고,

삶이 넘쳐나서도 아니었다.


그저 또 다른 생명체에 대한 공감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 때문이었다.


이문냥이를 시작했을 때 에스펜의 상황은

차분히 앉아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마치 공사장에서 입고 있는 드레스처럼

어울리지 않는 사치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죽음 앞에 내동댕이쳐진 고양이들을

구조해야겠다는 마음에 더해

절대 갑 인간으로서 자연스레 갖게 되는

미안한 마음밖에 없었다.


겨울의 마지막 무렵에 시작해서

여름이면 끝마칠 것이라고 하는 막연한 희망이

유일한 용기의 원천이었다.


함께 하겠다며 시간을 같이 했던 사람들도

에스펜의 이런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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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을 구조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고,

생각했던 6개월은 2년 반을 넘겨버렸다.


많은 아이들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입양을 갔지만,

아직도 30여 마리 고양이들은

보호소에 남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풍전등화 같은 상황만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을 뿐

희망이라는 용기는 빛을 잃어가고 있고

인간이 행하고 있는 갑질에 대한 미안함마저

이젠 무뎌져 버린 감각의 터널로 들어가고 있다.


넘어야 했던 산도 여럿이었고

건너야 했던 계곡도 셀 수 없었지만,

인간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던

시기와 의심과 거짓의 강물은

견디기가 가장 힘들었던 고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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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과 다른 한 가지는

배신의 욕망을 갖는다는 것이다.'  


'실수한 자는 용서해 줄 수 있어도,

신의를 저버린 자는 용서하기 어렵다.'


'거짓에 대한 무책임한 동조는

개구리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 어디선가 읽었던 글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던 에스펜은

늘 그러하듯이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나갔지만

보호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아직도 채 새벽 6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호소 문을 열면 언제나 마중 나와 있던

초롱이와 치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서야

아직 새벽이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전등을 켜면서 에스펜은 자신도 모르게 말한다.


'아... 미안해. 내가 요즘 정신이 없네..

아직 5시 45분이구나. 미안해...

초롱, 옥상아, 태백이도 미안... 더 자'


불을 끄고 다시 나가려는데

눈을 반쯤 감은 초롱이가 어느새

에스펜 앞에 다가와 다리를 비비며 말한다.


'야옹.. 야~~옹.. 야옹..'


'그래.. 초롱아 미안해.

아직 잘 시간인데,

내가 시계를 잘못 봤어.

더 자. 이따 맛있는 거 줄게.'


아직 잠이 덜 깬 다른 아이들도

미안해 하는 에스펜을 오히려 보듬어 주는 듯

괜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덜 뜨인 눈꺼플을 움직여

눈인사를 건낸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에스펜은

가슴 한쪽 깊이에서

무언가 강하고도 뜨겁게

물컹거리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던져놓은 상처를

남아 있는 고양이들이

위로해주고 있다는 감동이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 새벽 계단이었지만

에스펜은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

걸음을 재촉하여 공방으로 내려왔다.


눈가에는 이른 아침부터 촉촉이

따뜻한 이슬이 맺혀 흘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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