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십춘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주 Apr 15. 2023

아파트 세 채, 비결은 사랑

이제 소비가 미덕인 이유도 사랑

누군가 나에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에게는 그러한 순간이 없다.


다시 돌아가서

또 치열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다.


다시 돌아가서 하라고 한대도

다시는 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쥐어짰다.  


마흔이 넘은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내가 닳아지는 것도 모르고

내가 아픈 것도 모르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만큼 나이 든 것이 고맙다.




결혼하고 몰두한 것은 재테크였다.


내 월급조차

만져본 적 없던 내가

남편과 나의 월급을

모두 관리하게 되면서

이를 어쩌나

어마어마한 책임감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편은 매달 버는 돈은 저축 없이 둘이 함께 모두 쓰자고 했으니까)


나는 먼저 재테크 카페에 가입했다.

당시에는

10년 안에 10억 모으기라는 카페가 인기였다.


카페에서 권하는 대로
첫 번째, 가계부를 썼다.


가계부를 쓸 때 중요한 것은

고정 지출과 변동 지출을 나누는 것이다.

고정 지출은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 즉 보험료, 관리비, 통신비 등을 말한다.


고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

보험을 줄이고,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 전기를 아껴 썼으며,

통신비를 줄이기 위해

가장 저렴한 요금제를 사용했다.


변동 지출은 얼마든지 아낄 수 있는

식비, 의류비, 여행비 등을 말한다.


좋아하는 비빔라면 사 먹는 돈을 아껴 소면을 사서 김치말이 국수를 해 먹었고

채소가 싼 여름에는 비빔밥을

김치가 넉넉한 겨울에는 김치 요리를 해 먹었다.


2010년 당시

일주일에 식비를 3만 원으로 고정하고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하나하나 신중하게 계산하며

장을 봤다.


급한 생필품을 담느라 3만 원이 초과되면

더 급한 것만을 담고 나머지는 다음 주를 기약했다.


간장이 떨어진 것을 알았어도 

3만 원이 초과되면 사지 않았다.


3만 원을 계산할 때 융통성 따위는 없었다.


이렇게 살았으니

기타 생활을 말해서 무엇하랴.   


이렇게 아낀 돈을 모아 카페에서 권하는 대로  
두 번째, 소득의 70% 이상을 저축했다.

월급급여일부터

매주 단위 적금을 들어 돈을 모았다.


카페에서 알게 된 재테크 고수가 적금 드는 요령.

예를 들어 월급이 300이라면 소득의 70프로는 210이다. 그렇다고 한 번에 210이 나가는 적금을 만들면 해약할 일이 생기기 십상이다.

 월급일 기준 매주 50  50 40 40 30의 정도로 나누어 적금 통장을 만드는 것이 좋다. 중간에 필요한 일이 생겨 해약할 통장생겨도 일부만 해약하게 되기에 앞에 들어둔 적금을 지킬 수 있다. 


적금을 요령 있게 만들어

남편통장을 관리했다.

그는 차곡차곡 쌓이는 돈을 보며

내게 경이를 표했다.


남편 명의 통장의 적금 만기일이 되면 

남편은 이자는 출금하여

이자만큼이라도 쓰라도

마음을 담은 글을 써서

따로 봉투에 넣어 주었다.


물론 쓰지 않았다.

그의 마음과 응원이면 충분했다.

이자는

다시 통장으로..


시아버지는

돈을 쓰지 않게 된

남편의 변화에 놀라셨다.


시아버지는

나를 칭찬하셨고

나의 생일에

매달 시어머니께 받은 용돈을 모아 만드신

거금 천만 원을 보내 주셨다.

얼마나 오랜 세월 모아 만들어진 천만 원일까.


귀한 그 돈은

다시 통장으로..


시부모님은 남편에게

앞으로도 돈관리는

철저하게 에게 맡기라 당부하셨다.


시부모님의 응원은 힘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돈은 다 쓰고 살자던 그가

나와 마음을 맞추어

따라와 주고

과한 칭찬을 해주고

둘의 사이가 말할 수 없이

알콩달콩했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

그것이

돈을 모으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3

소득의 70%를 모아 종잣돈이 모이면  
세 번째, 부동산에 투자했다.

숱하게 청약을 넣었고

서울, 경기도의 미분양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텐인텐이 넘치게

결혼한 지 10년이 안 되었는데

우리 부부는 아파트 3채를 소유하게 되었다.


행복하였느냐 묻는다면

때로는 그러하였고

때로는 그렇지 못하였다.


다만 지금 돌이키면

다시 할 수는 없겠다는 것.


무엇을 위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한다면

건강하지 않았던

나의 젊은 시절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이

그렇게 이끌었다는 것.


우리의 신혼이 지나가고

더 이상 그때와 같지 않은 그와 나는

쥐어짜는 삶이 위태로워 집을 하나 정리했다.


그리고 나는 가계부 쓰는 것을 접었다.


결혼 후 만 3년의 기간은

돈을 모은 최고의 시간이었다.


지금 돌이키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만 3년 동안

우리 둘의 사이가 알콩 달콩이 었다. 


아름다운 청춘.

그저 둘만의 파라다이스가 있고

함께 장을 보아 밥을 해 먹을 수 있으며

주말이면 손잡고 집 앞을 거닐 수 있음이

행복했기에.


결혼 당시는 남편의 취업 이후 결혼 하느라

7년의 연애 기간을 거친 탓에

데이트에 지쳐있었다.

결혼 직후 나와 그는 우리의 집이 있고

함께 요리해서 먹을 수 있음이

소꿉놀이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그에게 줄 요리를 하는 순간은 설렜고

그의 빨래를 개는 순간도 미소 짓게 되었다.


그가 설거지하는 뒷모습을 보면

역시 내 남편은 뒤태도 멋지구나

새삼 반하곤 했다.


둘이 저녁 식사 후 손잡고 거니는 공원 산책이

일상이 된 것이 그저 기뻤다.


그것이 재테크가 가능했던 이유였다.




현재.

나는 소비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러기에 충분하게 돈을 모아서는 아니다.


( 아파트 한 채는 정리 하였고

아직 빚이 있으며 두 아이가 있다.

그리고 나는 아프다.)


그러나

나는

그와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좋은 전시를 찾아다니며

아름답게 쓰며 산다.


돈을 쓰는 이유는

설렘 때문이다.


같이 산지 13년 차.


처음 그와 함께 살며 느꼈던 설렘을

이제는 그와 데이트하며 느낀다.


함께 박물관, 전시회를 거닐 때

그와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때

예쁜 옷을 골라주는 그를 볼 때


그와 함께 살며 해야 하는

빨래와 설거지, 장보기, 요리

이제 설렘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일상을 벗어나게 해주는  적절한 소비였다.

설렘을 주는 소비의 미덕.


나는 이제

소비 아름다움을 느끼며 산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메니에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