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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Feb 14. 2024

아픈 엄마를 돌보다

고향집 탐사 발굴단 

아이는 크래프터 로망스 프리미어 기타(지금은 단종됨)를,

나는 사십 년이 넘은 밀크 글라스 접시 6장과 레트로 유리컵 6개, 상태가 좋은 테팔 궁중팬과 프라이팬을,

남편은 득템의 기쁨에 헤벌쭉 웃는 모자의 즐거움을 획득했다. 

이십 년 전 버스 토큰 한 개, 상평통보인지 해동통보인지 옛날 동전 한 개와, 내게 굴욕을 주는 십 대 이하, 십 대, 이십 대 초반 증명사진들을 보는 것은 간간한 재미였다.



자신의 짐을 완벽히 소화한 사람은 남편 기준 장인어른으로, 버려야 할 신발 두 켤레만이 아버지 것의 전부였고, 

딴에는 정리하느라 힘들었다고 투정 부렸지만, 수 십 년은 수명이 늘었을 우리의 뒷담화를 들은 남동생이 프로 게을러로 낙인찍혔다.


경비실 이 O호 경비님은 각종 폐기물 값으로 11만 원을 불렀는데, 그것이 작은 건지 많은 건지 따져볼 틈도 없이 버릴 것이 너무 많았다. 영수증을 달라고 했더니 ‘그런 거는 없는디..’ 머리를 긁적이더니 A4 용지에 뜻밖의 달필로 멋진 영수증을 써서 주었다.  


맛 하면 일미! 하는 지역이라, 체인인데도 타 지역보다 더욱 맛있고, 아이는 식당에 올 때마다 여행 온 것 같다고 했다. 


걔 중 멀쩡한 여름옷들과 중복이 안 되는 쓸만한 살림살이들을 가져다주었더니, 그것들을 보고 기억이 딸려 났는지 들통, 찜통, 삶통(용도가 다 다른 세 가지 통)과 어린아이 한 명은 들어갈 다라이(재질이 다 다른)들을 왜 가지고 오지 않았냐고 묻는 엄마는 우리의 성화를 들었다. 

‘필요하다고 한 건 칠부 잠옷 바지 하나가 전부이지 않았어?’ 하고 묻고 앞서 말한 것들은 대체 언제 필요하냐고 하자

'가끔 필요해, 가끔.'이라고 말해, 

‘가끔 필요하면 다이소에서 사서 쓴 뒤 나눔 해. 공간도 비용이야’라는 나의 잔소리까지 성화와 세트로 들은 엄마는 풀이 죽었다.      


고향집에 도착한 첫날, 짐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청소도 안 되어 사람 안 사는 티가 나는 집에서, 숙소에 까탈인 내게 남편은 ‘호텔 가야지 않겠어?’라고 했는데. 

‘괜찮아. 괜찮아. ’

내가 말했다.

‘왜, 몸이 기억해?’

‘응. 그래 우리 집 가난을 몸이 기억하네. 이 궁상은 익숙해서 자도 돼. 익숙해.’

너도 웃고, 나도 웃고. 모두가 웃었는데, 뒷맛이 씁쓸하지 않았던 것은, 이보다 좋은 환경에 고향의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 ‘고향의’ 란 말은 이제 빠지겠지만. 우리 이후 세대에게 ‘고향’이 의미가 있을까. 스무 살 넘어서는 여기저기 떠돌아 살아 그런지 이후부터 고향이란 그냥저냥 이자 없는 부채 같은 느낌의 것이었다. 고향의 부모님이 늘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까지 올라오시고, 남동생마저 발령받아 타지로 떠나면, 고향은 이제 관광지로만 찾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른다. 


2박 3일의 일정을 마친 고향집 탐사 발굴단은 해체식을 가졌다.

해체식을 위한 회식은 엄마가 차린 명절 잔칫상. 

내 기준 떡국은 짰고, 잡채는 간장 물이 덜 들어 갈색 당면에 흰색 당면이 고명처럼 섞여 있었는데, 아이는 세뱃돈도 두둑이 받고 집에 와서도 할머니 고기 가득 든 떡국이 맛있었다 하고, 쪽파를 돌돌 말은 삶은 오징어 강회 또 먹고 싶다고 하니 친정부모님 가까이 모신 보람이 또 난다.      


아쉽지도 않은데 따라붙은 것이 또 있었으니, 바닥은 뜨끈하지만 우풍이 센 고향집에서 이틀 잔 뒤 세 가족은 모두 콧물감기에 걸렸다.   


고향의 낡은 집의 짐을 모두 버리기 위해 떠난 폐기물 배출 반이 아니라, 고향집 탐사 발굴단으로 내 인식을 바꿔 준 월성 박 씨 가문의 장손, 이제는 부모님 모두 여의고 고아가 된, 남편에게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린트 초콜릿으로 애틋하고 감사한 마음을 대신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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