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혜원 Feb 16. 2024

음악 에세이 '첫귀에 반한 재즈' 1

긍정의 나르시시즘; 내게 재즈가 뭐냐고 묻거든

The Quintet <All The Things You are> 들어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onvLuR7E5sM


‘Jazz at Massey Hall’앨범 들어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W9PoFl3VnmQ


소개하는 곡 <All The Things You are>가 수록된 앨범 ‘Jazz at Massey Hall’은 라이브 앨범이다. 무대에서 연주한 이들은 다섯 명이다.
이 다섯 명 모두 재즈 역사에 전설로 남아 있는 거장들이다. 앨범은 그들 중 특정인의 성명을 명찰로 다는 대신에 ‘The Quintet’, 그냥 5중주단이라는 단순 명쾌한 이름 하에 세상에 나왔다.
다섯 명 모두의 공동 주연작인 것이다.

이들 주인공 5인은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디지 길레스피Dizzy Gilespy, 버드 파웰Bud Powell,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 그리고 맥스 로치Max Roach다.
모두 비밥Bebop 재즈 초기부터 그 발전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그리고 버드 파웰과 찰스 밍거스와 맥스 로치

우리가 보통 ‘재즈’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외양적*형식적 특성들은 바로 이 비밥 재즈에서 나왔다.
즉, 피아노와 베이스와 드럼에 더해 색서폰과 드럼펫 등 4-6인 정도의 재즈 연주자들이 무대 위에서 함께 테마 선율을 연주한 뒤 한 명씩 돌아가면서 그 선율을 변주하는 즉흥연주를 행하는 것 말이다.

비밥 재즈 이전에는 15-20인 이상의 대규모 악단이 보면대 앞에 앉아서 악보를 보며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서 재즈를 연주했다. 즉흥연주는 대표 연주자 한 두 명이 짧은 간주를 행할 때만 허용됐다.
이를 백밴드 재즈라고 하는데, 빅밴드 재즈는 감상용 음악이 아니라 춤곡이거나 파티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행사용 음악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빅밴드 재즈도 실용적 목적이 아닌 오직 감상을 위해서 향유하는 재즈 애호가들도 많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처럼 서양 고전음악들 중에도 무곡이 많지만 오늘날 서양 고전음악 애호가들이 이를 춤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상을 위해 예술 작품으로 향유하는 것과 같다.


한편, 외양적*형식적 특성 외에, 재즈하면 흔히 떠올리는 개념적*상징적 특성으로는 ‘자유’가 있다.
재즈를 소개하는 방송이나 신문 잡지 인터뷰 등에서 연주자나 관객에게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가장 흔하게 나오는 답변이 자유다.
지휘자의 일방적인 영도와 보면대 위 악보의 구속에서 풀려나 자기 욕망대로 연주하는 것이 즉흥연주인 만큼, 자유가 재즈의 핵심 중의 핵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재즈가 뭐냐고 묻고 자유라고 답하는 광경을 앞으로 여기저기서 또 보게 되더라도, 진부하다고 폄하하지 말자. 재즈가 자유라는 것은 진부하지만 매우 중요한 진실이니까. 


그리고 만약 누군가 내게 재즈가 뭐냐고 묻거든, 나는 나르시시즘이라고 답할 것이다.

자유에 더해 나르시시즘은 재즈의 가장 중요한 개념적*상징적 특성이다.

대규모 악단에 소속되어 짜여진 대로만 연주하는, 악단 내의 많은 연주자들 중 한 명일 뿐인 숨은 기능인으로 남기보다는, 내가 선택한 악기로 마음껏 나의 예술을 펼쳐 보이고 나의 솜씨로 청중에게 감동을 주고픈 욕망, 그래서 청중의 인식과 기억 속에 ‘나’라는 예술가의 존재를 각인시키고픈 강렬한 욕망은 자유 못지 않게 재즈의 핵심적인 특성이다.


나르시시즘은 곧 ‘자기애’이지만, 타인들과 관계 맺음으로써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 탓에 자기애는 타인과의 관계들에 투영되게 된다.
그리고 그 관계들 속에서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인정 욕망으로 굴절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자기애가 과잉될 경우 나 혼자서만 주인공이 되기 위해 타인을 착취하고 해하려는 파괴적인 열망으로 흑화된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협력 의지가 함께 발휘되면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으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발전과 성취의 원동력이 된다.

재즈의 나르시시즘은 나 혼자서만 주인공이 되려는 파괴적인 부정의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무대 위 연주자들이 모두 자기 몫의 주인공이 되는 긍정의 나르시시즘이다.
무대 위에서 연주자는 자기 악기의 솔로 즉흥연주 차례가 되었을 때는 자기가 주인공이 되지만, 훌륭한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연주자와 협력하고 소통해야 한다.
동시에 테마를 연주해야 하기도 하고 다른 연주자가 즉흥연주를 할 때에는 신뢰할 수 있는 반주자가 되어 자신의 자유와 개성을 일정부분 제약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타 연주자의 앞선 솔로 즉흥연주를 주의 깊게 감상하며 그 느낌과 기술적 흐름을 받아들여 자신의 솔로 즉흥연주에도 이를 반영해야 한다.

즉, 4-6인의 소규모 구성 안에서 연주자들이 돌아가며 행하는 즉흥연주를 통해 각자의 자유와 나르시시즘을 서로 협력하며 풀어놓는 것이 음악 장르로서의 재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버드 파웰, 찰스 밍거스, 맥스 로치,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

소개하는 <All The Things You are>를 들어보자. 재즈의 핵심인 자유, 그리고 긍정의 나르시시즘이 다섯 거장의 라이브 연주를 통해 훌륭하게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앨토 색서포니스트 찰리 파커와 트럼페터 디지 길레스피는 곡 초반 테마를 연주할 때도 테마 선율을 본래대로 동시에 연주하지 않고 각자의 색깔을 입혀 조금씩 엇박자로 변주한다.
각자의 변주가 따로 노는 듯 따로 놀지 않고 순간순간 겹쳐지며 조화를 이룬다.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의 대담한 콘트라 베이스 연주는 미드 템포로 곡에 생생히 출렁이는 물길을 형성한다. 별로 빠른 곡이 아님에도 감상자의 몸도 출렁이며 들썩거려진다.
버드 파웰은 이 출렁이는 물길에다 시종일관 우아한 화음의 빛을 뿌려댄다.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가 그 물길 속으로 뛰어들어 차례대로 춤추듯이 헤엄치는 가운데, 드러머 맥스 로치는 여유 있게 여기저기 리듬의 방점을 찍으며 순간순간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All The Things You are>가 수록된 앨범 ‘Jazz at Massey Hall’은 1953년 5월에 캐나다 토론토 52번가에 위치한 매시홀Massey Hall에서 열린 공연을 녹음해 같은 연도에 발매됐다.
무려 70여 년 전이다.
1953년 당시에는 스튜디오 녹음도 지금에 비하면 음질이 좋지 않았다. 공연 녹음의 경우에는 음질이 더 나쁠 수밖에 없었다. <All The Things You are>는 물론이고 앨범 수록곡들 모두 음질은 좋지 않다.
하지만 선율의 리듬을 따라 함께 들려오는 미세한 잡음들과 전체적으로 먹먹하게 들리는 둔한 사운드는 흠결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증명하는 징표이자 재즈라는 음악 장르의 역사성을 은은히 드러내는 효과가 되어 준다.


부록1)

앨토 색서포니스트 찰리 파커가 직접 작곡하고 연주한 곡 <Confirmation>을 스튜디오 녹음으로 들어보자. 긍정의 나르시시스트가 뿜어내는 기운이 느껴진다.

찰리 파커는 즉흥연주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미술의 기초 공부로서 석고상을 데생하듯이, 찰리 파커의 즉흥 연주를 그대로 따라서 분석하고 연주하는 게 재즈 색서폰을 배우는 이들에게 추천되는 기초훈련 과정 중 하나라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2JNFHzRzzs



작가의 이전글 음악 에세이 '첫귀에 반한 재즈' 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