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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의 김실장 Feb 18. 2022

영화 '생일'을 보고

영화는 세월호 참사가 있은후 2년 뒤를 배경으로 한다. 참사 후 2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용광로 처럼 들끓는 분노와 슬픔이 가시고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귀에서 점점 잊혀질 즈음의 이야기를 아주 덤덤히 바로 이웃집 이야기 처럼 그렇게 풀어나간다.

아들의 방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놔둔 어머니 박순남... 2년전에 머물러 있는 그녀와 가족들의 삶은 그냥 쳇바퀴처럼 무의식적으로 돌아간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남편이 해외에서 돌아오게 된다. 참사 당시에도 외국에 있었던 남편이라 순남은 그를 증오한다. 아비로서, 남편으로서 한것이 뭐가 있느냐며 그를 향한 분노를 가슴속에 품고 산다. 혹시 남편이 보상금을 노리고 나타난것이 아니냐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한편, 남편인 설경구는 참사 당시 베트남 현장에서 사고사에 얽혀 현지 감옥에 갇혀있었고 그것때문에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영화는 이런 부분을 자세히 노출하지 않는다. 정말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고 그 말할수 없는 사정을 남몰래 나만 알게 된것 같은 느낌이 들게 연출한다. 여권은 있었지만 도장이 하나도 찍혀있지 않았던 아들의 여권을 들고 무작정 공항을 찾아가 도장하나만 찍어달라고 떼를 쓰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영화 전체에서 가장 압권이었던 부분이었다.

또한, 순남과 함께 아들에게 다녀온 뒤 설경구는 자신의 동생집에서 순남이 정신적으로 조금 이상한것 같다는 말을 동생에게 한다. 동생은 아들을 보고 왔는데 아들얘기는 하나도 안하는 오빠가 더 이상하다며 설경구를 몰아세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도 볼때는 그냥 그런 장면으로 봤는데... 이후 생일 잔치의 막바지에 설경구가 오열하는 장면을 통해 아빠의 묵혀졌던 감정들이 드디어 태반이 엄마 뱃속에서 나오듯 쑥 빠져 나오는 것을 보고.. 야 이 감독 참 연출 잘했다 생각했다.

이들 부부에게 유가족을 도와주는 협회 대표가 찾아와 곧 다가올 아들 생일을 다같이 치루자고 제안하는데... 처음에는 완강하게 반대하던 순남도 끝내 못이겨 같이 하게 된다. 그 자리에는 여러 유가족과 아들의 친구들이 참석하여 아들의 생전 모습들을 추억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되었고, 그 자리를 통해 순남과 남편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까지도 저 밑에까지 내려앉았었던 슬픔과 분노의 모든 감정들을 들쳐내고 오열하며 감정의 위로를 받게 된다.

영화는 이렇듯 참사로 죽은 아들의 생일잔치를 통해 2년간 쌓아졌던 맘 속에 갇어두었던 슬픔과 분노에 대한 감정을 터트리고 표출하여 결국 치유의 길로 안내해준다.

영화 중간쯤 아들의 방에 들어와 오열을 하는 순남을 그린 장면이 있었다. 아파트가 떠나가게 오열하는 장면.. 그 오열을 듣는 이웃집 큰딸은 울음소리가 이제는 듣기 싫다며 그것때문에 대학을 두번이나 떨어졌다며 집을 나가버린다.

이때 그 집 엄마가 큰딸에게 하는 말이 내 가슴을 때린다. "너도 처음에는 같이 울었잖아.."

펑펑 우는 연기는 쉬우나,, 절제된 감정선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은 더 어려운것 같다. 전도연과 설경구의 연기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다. 평소 설경구가 조금 오버스럽지 않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이런 슬픈 영화에서 얼마나 오버를 할까 약간 걱정도 했었는데... 한방에 불식시킬 만큼 딱 필요한 만큼의 연기가 아주 돋보였다. 그리고 그 연기력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만큼의 감독의 연출력이 가히 이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린것 같다. 이종언 감독의 프로필이 더욱 궁금해 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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