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맨(2025)'
오랜 프랜차이즈를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본질에 집중해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본질은 기본기다. 변하지 않는 핵심적인 가치다. 프랜차이즈의 핵심 가치는 소비자들이 가장 깊게 공감하는 이유다. 오래된 프랜차이즈일수록 더 그렇다. 익숙해진 기억은 공동의 추억이 된다. 슈퍼맨 시리즈는 유구한 시간을 견뎌낸 프랜차이즈다. 세대가 나뉠 정도로 유서 깊은 시리즈다 보니 비교적 자주 리부트 되는 편이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모습의 슈퍼맨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슈퍼맨이 지닌 본질이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초인적인 힘이나 속도, 히트 비전과 같은 능력 요소는 아니란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슈퍼맨을 슈퍼맨답게 만드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위기에 봉착한 슈퍼맨을 보여준다. 언제나 강력한 힘으로 문제를 극복해 왔던 슈퍼맨은 패배를 경험한다. 어쩌다 패배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어쨌든 슈퍼맨은 다시 일어나서 현장으로 날아가는 사람이니까. 그는 쓰러질 수는 있어도 무너뜨릴 수는 없는 사람이다. 다시금 일어나려는 힘, 굴하지 않는 정신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 영화는 그렇게 그의 근원을 찾아간다. 슈퍼맨은 빌딩도 들고, 괴물도 막아낸다.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든다. 그러니 "왜 그렇게까지 분쟁에 뛰어들어 해결하고자 하냐"는 질문이 나온다. 속내를 파고들면 이전에 어벤져스 시빌워에도 나왔던 주제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 '자의적 판단으로 행하는 초인들의 초월적인 행위를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주제의식은 국가 간 분쟁은 정치 갈등이지 않냐는 후속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그 질문들은 올바르지 않다. 적어도 슈퍼맨의 기준에서 보면 생명을 구하는 행동은 일의 경중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자신에겐 힘이 있고,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죽어간다. 초인의 힘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세상 어딘가엔 있다. 항변은 줄곧 무의미해진다. 외계에서 불시착해 지구에서 길러진 이 사람은 타국에서는 미국 국적의 초인이라고 받아들여질 뿐이었다. 초인의 활동은 개인적이지 않고 지극 정치적인 액션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슈퍼맨은 분통이 터진다.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팬들이 생기는 만큼, 헤이터들이 생기기 쉬운 행동이다. 이런 상황에서 악당의 다음 수는 간명해진다. 슈퍼맨이 대처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힘으로 그를 견제하면 된다.
초인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게 악당의 방식이다. 슈퍼맨의 숙적인 렉스 루터는 힘으로 그와 대항할 수 없는 한낱 사람일 뿐이다. 렉스 루터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천재 발명가이자 사업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기업을 보유하고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세상에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슈퍼맨을 증오한다. 인간 아닌 존재가 인간 행세를 하며 인류의 구원자처럼 구는 꼴을 볼 수가 없다. 인류를 구하는 힘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이유, 두뇌의 힘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자신이야말로 적임자여야 하는데 웬 외계인이 와서 힘으로 갈등을 봉합하며 인기를 얻는다. 영화 내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렉스 루터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보며 연구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 흉내를 내는 외계인을 몰락시킬 수 있을지 철저히 고민했다.
비뚤어진 마음이 시기심으로 자란다.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의 발로다.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 다른 이의 능력을 부러워하여 그 힘을 무력화하려 한다. 렉스 루터는 자신의 지성으로 그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영화는 슈퍼맨이 영웅인 이유를 보여줌과 동시에 렉스 루터가 악당인 이유도 보여준다. 그는 확신범이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선악의 기준이 된다. 문제를 시선 밖으로 치워버리고 제거할 것인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피해를 부수적 피해라고 간주하는 이가 악당이다.
악행은 한순간이고, 선행의 증명에는 삶의 모든 조각들이 필요하다. 선을 이룩하는 것은 초월적인 힘이 아니다. 슈퍼맨이 지켜내는 삶에는 초인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 클라크 켄트의 삶이 있다. 선행은 방향성이다. 타고난 누군가의 덕행이 아니라 그 누구든 행할 수 있는 지향점이다. 우리가 슈퍼맨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인간의 낙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공동의 이해, 그래도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낙관주의. 그것이 히어로를 기대하는 마지막 이유일 것이다.
사진 출처 : TMDB '슈퍼맨(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