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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Oct 07. 2022

판권에 이름이 오르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완독 일기 / 책의 엔딩 크레딧]

책의 엔딩 크레딧 / 안도 유스케 / 북스피어

10월 13일 저녁 7시, ○○○ 작가 북토크

○○독서대 공동구매 오픈

○○출판사, 가제본 서평단 모집

디자이너가 알아두면 좋은 ‘베다 인쇄와 망점’

 

내가 팔로우하는 SNS 계정에 올라오는 글들이다. SNS는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다. 나의 취향은 책이다. 잠시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 내가 즐겨하는 일은 침대에 모로 누워서 SNS를 살피는 것이다.

‘오늘은 책 세상에 어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책을 읽는다. 몇 가지 독서 습관 중 하나다. 이런 마음이다 보니 책의 완성도가 어떻든 완독 후 만족도는 대체로 높은 편이다. 이런저런 흠결이 있어도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한다. 수많은 책 중에 고르고 골라서 읽은 책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른 책이 혹은 추천받은 책이 ‘별로’ 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치 아무것도 읽지 않은 것처럼 조용히 지나간다. 리뷰를 쓰면서 이러쿵저러쿵, 이게 별로였고 저게 마음에 안 들었고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굳이 혹평까지 해야 할까 싶은 마음이다. 조용히 시치미 떼면 그만. 또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쏙 드는 책일 수도 있는 일이니 괜한 오지랖 부릴 필요도 없고 말이다. 책을 읽기 전후에 판권면을 즐겨 보는 나에게 안도 유스케의 장편소설  「책의 엔딩 크레딧」은 저절로 손이 가는 제목의 책이었다. 애서가로서 편애의 마음이 가득 담긴 선택이라고 할까.


주인공 우라모토는 ‘각 공정의 진행을 관리하고 연락을 조정(420쪽)’ 하는 도요즈미 인쇄회사의 영업맨이다. 작가, 편집자, 교정교열자, DTP오퍼레이터, 인쇄소 담당자, 제본소 담당자, 서점 직원, 서적도매상까지 출판과 관련된 전 영역의 사람과 협업을 하는 멀티맨이다.

인쇄 회사의 직원이 작가를 만난다고? 그런 경우도 있나 싶었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 위에 언급한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사람은 편집자다. 그런데 인쇄 영업 담당자가 왜? 책의 편집자 후기에 따르면 인쇄소 영업맨이라는 포지션은 한국 출판계에는 없다. 주인공의 포지션은 낯설었지만 그가 하는 일은 평소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 흥미롭게 읽었다. Writer와 Editor 그리고 Maker를 연결하는 출판 업계의 멀티맨.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짠하고 나타날 것만 같은 전방위 플레이어다.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한 권의 책이 발행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출판계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소개한다. 인쇄 후 치명적인 오타를 발견했을 때, 최근 집필한 책이 잘 팔리지 않으면 은퇴를 하겠다는 작가와 편집자의 밀고 당기기, 인쇄 직전 표지 사양을 변경하는 노작가의 고집, 스러져가는 종이책 시장에 대한 고민과 안타까움, 전자책의 역할, 인쇄 공장의 1호기가 영구결번이라는 명예와 함께 역할을 다 하고 물러나는 이야기.


“이 가느다란 선 좀 봐, 죽어 봐라 이거지. 어떡하나.”
1호기 기장 시바타가 다리를 꼬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113쪽)


파주 어딘가에 있는 인쇄소에서 누군가가 방금 내뱉었을 것 같은 대사다. 직업의 세계 시리즈가 있다면 안성맞춤일 것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다. 책을 읽다 보면 출판 과정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책의 만듦새에 대한 상식은 덤.


직업의 세계를 언급했듯이 이 책은 비단 출판 업계에만 국한해서 읽을 필요는 없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일’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인쇄 영업맨 우라모토와 나카이도가 대표적인 예다. 우라모토는 인쇄는 장인 정신이 깃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상론자다. 반면 나카이도는 하루하루 작업을 실수 없이 마치는 것이 꿈인 직장인이다. 두 사람이 일을 해 나가는 방식은 다르다. 높은 이상을 설정해 두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이상과 긍지도 생긴다는 두 주장이 맞선다.

무엇이 옳을까. 정답은 없다. 이에 대해 저자는 ‘높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하나씩 가시화해 가는 것은 결국 하나의 길로 이어져 있다’(465쪽)고 말한다.


일의 방향이 이상에서 구체성으로 나아가든 구체성에서 이상으로 향하든 하나의 목표(출판)를 가진 사람들은 만나게 된다. 그 결과물이 지금 내 옆에 있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니 판권에 이름이 올라있지는 않지만 그 이면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볼 일이다. 안도 유스케가 이 책을 쓴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책을 읽으며 오타를 몇 개 발견했는데, 판권에 적힌 편집부 이메일에 관련 내용을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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