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향한 분노와 원망에서부터 시작된 유대가 과연 건강할 것인가.
어른이 된다는 건 그렇게 계속해서 상처받고 미워하고 잊어가며 살아하는 일의 반복인가 보다.
단지 나는 떠날 이유가 필요했고, 하필 그때 그 사람이 작은 불씨를 들고 있었을 뿐.
하지만 모든 원망은 그에게 쏟아진다.
과연 그게 합당한가.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 채 누군가 자신을 그렇게나 증오하고 있다는 걸 알면 기분이 어떨까.
아니, 본인을 미워하는지 모르니까 상관없나.
그렇다면, 본인이 모른다면 내가 그를 미워하는 것에 무슨 소용이 있나.
없다. 아무 소용도 없는 짓에 감정과 정신을 낭비하는 중인 거다.
마무리가 끔찍했다고 하여 그 과정에서 보낸 시간들까지 끔찍해지는 걸까.
결말을 알고 나서 뒤집어보는 책처럼 인생은 단순하지가 않다.
관계의 종말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그저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인 것을.
시간을 돌이켜도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으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거다.
처음엔, 중간엔 괜찮았지만 마지막이 아쉬웠지. 그냥 그 정도로 끝낼 줄 알아야 해.
'스물다섯, 스물 하나'의 조연이었던 승완이의 엄마는 승완이에게 말했다.
"근데, 휘어지는 법도 알아야 해."
그 말에 승완은 눈물을 뚜룩뚜룩 쏟으며 말했다.
"나도 아는데, 그게 잘 안돼."
나도 안다.
잊고, 용서하고, 넘어가는 법도 알아야 한다.
근데 아직 그게 잘 안된다.
아직도 떠올릴 때마다 상처가 아프고 과거가 후회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좀 더 똑똑했더라면, 지혜로웠다면, 그 일들을 피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또 그건 아니다.
지적 수준이나 최선의 노력 여부에 따라 달라질 일이 아니었다.
사고처럼 닥친 일들이었고 어린 내가 저지른 실수들이었다.
피할 수가 없었고 피해지지가 않았다.
근데 나만 너무 상처받고 만신창이가 된 것 같아 억울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넌 이걸 잘못했어'라고 말하지 못한 게 나에게 이렇게 큰 짐이 되다니.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일까.
이 세상 어딘가에도 나를 그토록 미워하고 원망하며 이를 가는 사람이 있을까. 괜스레 미안해진다.
'넌 정말 나쁜 사람이야. 그것 때문에 내가 화가 나.'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떠나갈 수 있었더라면.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우유부단한 마무리는 결국 아무에게도 좋지 못했다. 특히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