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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낮 Dec 22. 2022

고양이의 기술

정중한 솜발과 사랑스러운 몸짓

 폴의 기분은 몸짓으로 다 드러난다. 심지어 자고 있을 때에도 꼬리로 말한다. 수염의 방향, 눈동자 크기, 표정, 울음소리, 꼬리 등으로 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감정은 다 드러내면서도 욕구는 품위를 유지한 채 아름답게 표현한다.    

  

 아침마다 폴 털을 빗질해 줄 때면 폴은 정수리와 뒤통수에 빗이 지나갈 때 지긋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추켜올린다.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턱을 솔솔 빗어주다가 목덜미로 빗이 향하면 어느새 젤리처럼 스르륵 누워서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폴은 분명 턱 주변의 보드라운 털 빗질을 좋아한다. 하지만 빗질 자체는 싫어한다. 턱 주변의 빗질을 원할 때면 ‘그렇지 않은 척’ 대각선 위를 쳐다보며 턱을 슬쩍 들어 올린다. 마치 대각선 위에 중요한 무언가를 보려고 그랬다는 듯. 부드럽게 빗질이 계속되면 폴은 한동안 나에게 몸을 맡기다가 빗이 몰랑한 배로 향할 때면 정중한 솜발로 나의 손을 밀어낸다. 그러다가 획 일어나서 가버린다. 나는 매번 폴이 취하는 소통 방식에 감탄한다.      


 이런 폴도 매우 적극적으로 자기의 욕구를 표현할 때가 있다. 새벽에 나를 깨울 때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폴이 새벽에 깨면 즉시 나에게 무언가를 말한다. 새벽 4시경 솜발로 나의 입술을 톡, 눈을 톡톡 건드려 나를 깨워놓고는 계속 이야기한다.   

   

‘냐아옹’(일어나)


 나는 반 눈을 뜬 채로 폴의 뒤통수에서 엉덩이까지 천천히 쓰다듬어 준다. 폴의 몸에서 그르렁 소리가 울린다. 폴은 졸린 내 손을 머리로 밀어 올리며 쓰다듬기를 멈추지 말라고 한다. 나는 한동안 폴이 요구하는 대로 쓰담쓰담을 계속한다. 폴은 한동안 그르렁 소리를 울리며 내 주변에 머물다가 어느새 폴짝 뛰어서 제 갈 길을 간다.

      

 신기하게도 매일 새벽 나를 깨우는 폴을 향해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하는 마음이 활성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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