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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낮 Jan 05. 2023

공손한 요구

말 많은 고양이의 성장기

 폴은 말이 많은 고양이다. 3개월 때 창원의 한 가정에서 데리고 왔는데 집에 온 첫날부터 밤새 울었다. 그때 난 집사가 처음이어서 아기 호랑이처럼 울어대는 이 고양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폴과 첫 만남 이후 몇 달간은 한마디로 좌충우돌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이 작고 말 많은 생명체랑 살아갈지 앞이 캄캄했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아파트 베란다 맞은편에 나 있던 자동차 전용도로의 차 소리 때문에 폴이 많이 불안했던 것 같다. 옛날 아파트라 창이 얇아서 밤이 되면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렇게 몇 날 밤을 설치고 6개월 정도 흘렀을까? 폴은 집에 점점 적응해 나갔다. 차 소리, 복도에서 나는 사람 소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관리소 아저씨의 목소리. 하지만 유독 다른 집 이삿날에 베란다 앞을 지나다니는 사다리차 소리는 한참 뒤에 적응했다. 사다리차가 지나 다닐 때면 귀를 한껏 뒤로 한 채 포복 자세로 안방에 숨고는 ‘끼야아아옹’하고 소리치곤 했는데, 이마저도 몇 개월이 더 지나니 조금씩 나아졌다.     


 6살이 된 폴은 다양하고 부드러운 톤과 몸짓으로 말하는 고양이가 되었다. 이제는 폴도 나에게 적응하고, 나도 폴의 언어를 많이 배웠다. 그리고 서로의 섬세한 제스처에 반응하기도 한다. 내가 새벽에 뒤척이기라도 하면 폴은 자다가도 누가 깨우기나 한 것처럼 ‘으응?’ 하고 소리내며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출근할 때 ‘갔다 올게’ 하고 인사하면 ‘응냥’ 하고 복식으로 짧게 답하거나 ‘으~응’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깜빡이기도 한다. 졸리거나 귀찮을 땐 꼬리만 좌우로 들썩이기도 한다.


 폴은 가끔 앞발을 모으고 무언으로 눈만 끔벅이며 앉아서 나를 응시할 때가 있다. 나는 저 멀리서 폴에게 ‘이리 와’ 하고 말하며 바닥을 톡톡 친다. 폴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르아르릉’ 하는 소리를 내며 망아지처럼 뛰어와 쓰다듬을 받는다. 또 책상에서 서류 작업을 할 때면 가볍게 뛰어 올라 A4용지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리고는 내가 닿는 시선에 자리를 잡고 두 발을 모은 채 가만히 기다린다. 나는 자주 폴의 귀여운 공손함에 지고 만다.   





좀 더 가까이 그렇게 말고

이렇게 포근하게

작은 내 심장 소리에 감동하게

함께 좀 더 있자

- 선우정아, ‘고양이’ 노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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